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ug 29. 2023

아들의 유전자검사

검사를  받은 지  2주가  지났다.  지지난주  월요일  검사를 받았으니  이제 결과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아침  출근길  아들에게  물어보니  아직  연락이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떠도는  후기를  보아  2주가 지나면  연락이  온다고  하니  아마도  오늘내일즈음이면  소식이  올 거라고  기다려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20여분  지났을까?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락이 온 것이리라.

"엄마,  종료래요."                   

유전자검사결과  불일치로  지금까지  진행해 오던 모든 것이  종료되었다고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70% 정도 일치확률을 보인다고 했는데..."

기증희망등록할 때 데이터베이스화된 아들의 유전자 대푯값을 토대로 찾은 환자와 유전자 확인검사를 통한 상세값도 모두 일치할 확률은 70% 정도. 그동안 이곳저곳 들쑤셔가며 알고 있던 지식이었다.  그런데 그 나머지 불일치 확률 30%에 해당되었나 보다.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7월 중순경쯤이었다.

"엄마, 조혈모세포 기증이라고  들어보셨죠?"

뜬금없었다. 하지만 아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촉이라고 할까?  


몇 년 전 12월, 이상한 우편물이 집으로 왔었다. 꼼꼼하지 못한 내 눈에도 보낸 곳은  가톨릭조혈모세포 은행, 받는 이 아들의 이름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학교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로 물어보았지만, 자기도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등록에  감사드립니다.'

궁금한 마음에 뜯어보니, 이런  글과 함께  2019년 탁상용 달력이 들어있었다.

"엄마, 별것 아니에요..."

"별것인 것 같은데?  골수기증신청한 거잖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들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아무 일도 아닌 듯 무심하게 말했다.

사실 그때 그 일은 녀석에게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녀석은 문화상품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날은

 조혈모세포 기증희망 등록신청서를 작성하고 채혈을 했고, 홍보팀으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는 대학 신입생에게  많고 많은 그런 날들 중 하루였던 듯하다. 그랬다. 녀석은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기증신청서를 작성한 것은 아니었다.

탁상달력을 받고 아들과 통화한 후 검색을 해봤다. 아들 말대로 별거 아닌 것은  아니지만  기증신청해 놓은 혈액이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 환자들과 맞을  확률이  너무  낮아서,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나도 무심하게  해마다 연말이면 집으로 찾아오는 탁상달력을 받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나와  유전자가  맞는  사람이  있대요.  기증할  의사가  확실한지  물어와서  전화드렸어요."

그 낮은 확률이 아들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우선 아들도 우리도 어찌 우리에게 그런 최종의사를 물어오는 일이 생겼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 아무렴... 네 몸은  너의 것이지만 너를  있게 한 우리  의견은  들어봐야지. 일단  생각 좀 해보자."

이렇게  아들과  전화를 끊은  우리는 몇 년 전 탁상달력을 받았을 때와 달리 꼼꼼하게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홈페이지와 여기저기 올라와 있는 기증후기를  찾아보았다.


흔히 드라마에서나 보아오던 '골수기증'이라 불러오던 '골수'가 바로 '조혈모세포'였다.  조혈모세포를 채집하는 부위에 따라 말초혈액에서 채집하면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 엉덩이뼈에서 채집하면 골수 기증, 제대혈에서 채집하면 대혈 기증으로  용어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은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남편은 아들 의견대로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지만 평범한 엄마인 나는 우선 내 아들이 소중했다. 아프지 않아야 했고 위험하지 않아야 했다. 글로, 아들의 설명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던 부분을 배워나갔다. 지금까지 엉덩이뼈에서 골수를 채집하던 방식으로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말초혈 조혈모세포 기증은 기증 3~4일 전부터 촉진제를 맞은 후 2박 3일  간 입원, 입원 2일 차에 좀 더 굵은 바늘을 이용한 헌혈과 같은 형식으로  4~6시간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행히 기증 후기를 보니 생각만큼 아프지 않고, 기증자에게  위험하지 않는 듯했다.

부모와 일치할  확률은 5%, 형제와 일치할  확률은  25% 일만큼 가족 간에  맞을  확률도  낮다는 유전자가 혈연관계를  떠난 사람과  일치할  확률평균 이만 분의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작은  확률이  딱  내  아들이라는데, 아들의 선택으로 환우의 생명에 희망의 싹이 돋을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는 확답을  내렸다. 기증의사가  확실하다고 전달했다.


2주 전 정확한 유전자검사(조직적합성항원형 재확인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한 곳은 아들 학교 근처  보건소였다.  혈액  채취 전  혈압을  재야 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온 덕분에  광복절날 우리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혈압을 재고  그  수치를  사진 찍어  보냈다. 최종기증 의사를 밝힌 후 지금까지 아들이  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수증자는  외국인이라고 했다.  9월 중  이식이  이루어질 예정으로 외국인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는 곳은  한양대병원뿐이라서 그곳까지 아들은  움직여야 했고, 조혈모세포 기증이 이루어지는 2박 3일간 학교 출결에  문제가  없도록  통지를  해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코디네이터를 거쳐 아들로부터 들을 때  우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불일치였다. 뭐랄까? 종료라는  말의 무게가  잠시 아무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머릿속의  공백은  기증자의 유전자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상대방의  맘에 가 닿았다. 수천 분의  일에서 수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로  일단  연락이  된 아들에게  동의하는지  확약을  받고, 다시  정확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보름이  걸렸다. 잠시  희망을  품었을  환우와  그  가족들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들에게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했다.

"어떡하겠어... 유전자가 맞지 않다는데..."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거라..."

유전자검사 결과가 나오고 9월 중 기증 일정이 잡히면 술도 마시지 말고 몸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네 몸은 그때부터 네 몸만이 아닌 것이라고 웃으며 휴가지에서 건네던 농이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다만 얻은 것이 있다면, 다시 유전자 일치 환우가 있다고 기증 의사를 재확인해온다면 바로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라고.

(이 글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는 조혈모세포 기증이라는 한 과정을 접하는 물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표지사진  올해도  김없이  찾아온  탁상용 달력


작가의 이전글 강릉 2박 3일, 그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