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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Sep 30. 2023

친정 가는 길

달을  똑  따다  드립니다^^

이번  추석에는  큰형님네 가지 않아도  된다. 우선 기쁘다.

'그럼 뭘 하지?'

 어쩌다  내게 온  기쁨은  안타깝게도 잠깐이다.  '어떻게  놀아볼까?'

 나도  모르게 새 나오던 웃음은 짧다. 추석연휴  엿새, 그 많은  날들을  어떻게  지내나  반갑지 않은 걱정이 덥석 안겨온다. 6일 동안  6명이  먹고  지내야 하나 아득해져 온다. 2주 전부터  메모장에  메뉴를  적어가며  무엇을  사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미리 장만해야 하는지 손가락만  바쁘다.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운 맘은 어느새  엿새 중  이틀은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그리워한다. 지나고  봄은  늘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속성이  있나 보다.

 나는 여행에게  쉬운 사람이다.  30분이  걸리는  거리이든,  하루종일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든,  발 붙이고  있는  바로 이곳만  떠난다면 나는  이를  여행이라  이름 짓고  꼬리를 치며  졸래졸래  따라다닌다. 심지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시댁 가는 길도,   폴짝 가볍게  한번  뛰는 정도의 작은  여행이라  이름 짓는다.  올라가  만나게 될  사람들보다 오고 가는  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7인승 차량  뒷좌석까지 펼치고  여섯 식구가  앉아 경기도로  올라가는 길은  하행선에  비해  막히지 않아  가족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창밖으로 싸리나무  붉은 꽃  무더기가  뒤로  물러나고  왼쪽 저 멀리  서해안 낙조를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마침  제일 뒷칸에  실려 함께 가던  전냄새가  명절이라는  그 기분에 느낌표를 찍는다. 가끔 행담도휴게소에 들러  야물거릴 수  있는  핫도그나 꼬치  하나씩 입에 무는 날에는 아이들 머리 위로 느낌표 두 개 정도는 거뜬하게 둥둥 떠다녔다.

"우리는  명절 쇠러 간다!"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불이 들어온 지 한참이건만 나는 눈을 떴다 감았다 머릿속이 텅 비어 가고 쉼표 몇 개쯤 달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전을 부치고 내일까지 비워놓을 가게일을 마무리하느라 부산했던 몸을 이제 등받이에 걸쳤다. 밖으로 보이는 가을 들녘과 차 안에 꽉 찬 전냄새 그리고 창밖으로 같이 달리던  아직 피우지 못한 회색빛  몸을 일으키는 억새와 싸리나무 꽃을 그저 눈에 담았다. 후다닥 지난 하루를 누여놓고 나도 누워 가는 그 길, 그 작은 여행이 그저 한가롭고 여유로워 좋았다.


그날 아침,  평소보다 서둘러 일어났다. 전날  미리 봐놓은  전감을  펼쳐놓고,  거실바닥에  신문을  깔고,  전기  프라이팬과 파란  플라스틱 채반 위에  키친타월을  깔고,  식용유와 키친타월 한 뭉치를  옆에  놓고 그제야 시작한다. 이미  한참을  동동거려가며  손작업을  마쳐놓은 것들이  하나씩 밀가루옷을  입고  달걀물속에  담궈진 다음  지지직  고소한  기름 냄새를  피우며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남편이  좋아하는  동태포, 딸과  내가  좋아하는  새송이버섯, 아들이  좋아하는  동그랑땡, 모두  두팩씩이다. 차례를  지내고  돌아와 우리가  먹을 것도  남겨놓아야 했기에  넉넉하게  모두  두팩씩이었다. 그리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돼지고기김치꼬치가 있다.  비계가 찰랑찰랑하게  달린  두툼한  돼지고기와  대파와  묵은지를  꼬챙이에  차례로  끼워  한소끔 쪄낸 다음  다른  전들과  마찬가지로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지져낸다.


솔직히  전은  따뜻할 때  외에는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차례상에  한자리  차지하고  올라가 '오늘  명절입니다!' 하고  외치는 전시용 음식이다. 명절 전날  전냄새는 '암행어사 납시오!'라고  암행어사  행차를  알리는  방자처럼 '오늘  한가위입니다!'라고  알리는 전령사일 뿐이다.( 하지만  그  외침이  없으면  춘향전 클라이맥스가  김이  빠지듯, 추석날  콧구멍 들락거릴  전냄새가  없으면  서운하다.)


하지만  이  돼지고기김치꼬치는 차례상에서  시댁식구들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씹는 순간  도톰한  돼지고기 고소한  기름과 대파의  푸른 물에  매콤한  묵은지의  개운한 맛이 따로따로  때론  같이   씹히고  맛을 낸다. 여기에  아주버님이  막걸리  한 사발씩을  돌린다. 잔치가  따로 없다. 이런  음식들은  부치면서  바로 손으로  들고  먹으면  그  맛이  껑충 뛰어오르는  것들인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입맛이  다셔진다.


이젠  아이들도  모두  자랐으니  명절은 각자  집에서  보내고, 제사 때만  한번  모이자는  큰 아주버니 전화에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긴 휴일이  엿새다.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 동안의  재미를  대신할  뭔가를  찾아야 한다.  적어도  이틀정도는  어디론가  떠나 줘야  명절 느낌이  날듯하다. 그래서  친정집으로 떠나기로 했다. 명절임에도  가게를  닫을  수  없지만  시간은  만들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가는  우리는  추석 하루쯤은 문을  닫기로 했다. 남편은  아쉬워하는  얼굴이지만  내 고향에  간다는  생각에  몇 푼 안 벌면  그만이라고  큰소리를  쳐본다.

코스모스 줄지어 선  국도를  따라  친정 가는 길,  누가  질세라  목소리  높여  부르던 동요는  서해안고속도를  달리는 가요로 바뀌고,  앞 좌석에  앉아  운전하던  세  아이 아빠는  이제 뒷좌석에  등 대고 눈을  지긋히  감은채  아들의 들썩이는  운전실력을  느껴본다. 세월이 20여 년을  훌쩍 넘어 같은 날, 다른  모습으로  달린다. 친정 가는  길.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보름달  똑  따다  드리며  넉넉한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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