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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30. 2023

꿈이어야...

 

어젯밤에 말이다 솔찬히 좋은 꿈을  꾸긴 꿨는디  말이다  아긍께  그 거시  꿈이어야,,,

  

아리대미 회관 앞에서  현천떡이  담박질로  한 바쿠를  돌더란  말이다. 배수떡은 쪼금   뛰다가  집으로 가길래  왜 가요? 허고  물었더니 그만할라요 험서  집으로  들어가 불더란  말이다.

그래도  나는 달음질을  시카리 했단 말이다. 오메  날랍게도  허길래  하도 오져서  막   웃었는디  말이다.

깨고 본 게  꿈이어야,,,


엄마는 재작년  봄 3월 , 흉추 압박골절로 우리 집에  오셨다.  두 번째 흉추  압박골절이었다. 그전 이미  두 차례의  갈비뼈  골절과  한차례 흉추 압박골절로  골성형술을  하신 상태였다. 엄마 표현을 빌리자면   뼈가  바근바근 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타향살이는 시작되었다. 잠깐 우리 집에  다녀가곤 했지만 방하나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건 처음이었다. 우선 침대를 정리했다. 등이  배긴다고 해서 침대 매트리스  위에  다시  좀 더  말랑한  매트를  하나 더 깔았다.


  이미  한차례의  압박골절 경험이  있었던  엄마는  거북 등껍데기 같은 보조기를  보는 순간부터  지긋지긋해했다. 크고  마른  엄마  체형에  딱딱한 보조기 생활은 쉽지 않았다. 거북등껍데기를  이제  벗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데  3개월이  걸렸다.

 

 그래도  그때까지  비록  빠릿빠릿한  걸음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칠월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우리는 일터로  향했다 출근 후 두세 시간이  흘렀을까?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엄마는   놀라게 할까 봐 별일 아니면  절대  전화하지 않는 분이었다.


지금  집에  올 수  있겄냐?  아이고-


힘겨운  목소리였다. 아이고-가  들어 삼키는  고통이었다.  심상치 않았다. 차로  십 분 거리를  정신없이   달렸다. 엄마는  방바닥에 눕듯이  앉아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별 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에는  고통과, 바쁠 텐데  나를  불러들였다는  미안함이  섞여   일그러져있었다.


화장실갈라고  일어섰는디-

오른  다리가  매가리 없이  삐끗하더니  그냥 넘어져부냐-

디가 분질라져불었는지  징허게 아퍼서  기어기어 침대까지 와서  너한테  전화를  했당게-

엎어지먼 코 닿을 것을 한시간은 기어갖고  전화를  했는  갑서야-

이런  정확한  대화는  다음날에야  가능했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CT 촬영결과 오른쪽  고관절 골절이었다.

토요일이어서  서둘러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 준비가  끝나고  혼자  보호자대기실에  있는  내게  의사는 말했다.

할머니 골밀도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척추마취가 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할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전신마취는  피하고  싶은데  척추마취가 안되면  할 수 없거든요-


다행히  척추마취로 수술은  잘 진행되고 있으며, 단지 출혈이  심해 수혈을  해가며 진행 중이라고  수술 중간에 나온  마취담당 의사는  말했다.


동생들은 서울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토요일이라  바빴다. 언니들에게는  수술 끝나면  연락할 테니  걱정 말라고  전화했다. 보호자  대기실에  나  혼자였다.

이러다  저 안에서  혼자 가시는 건  아니겠지?-

겁이 났다.  노인 고관절  골절 환자 30퍼센트  이상이 2~3년 내  사망이라는  검색창을  바라보며  이미  엄마를  잃어버린 듯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그렇게  엄마의   병원생활이  이어졌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병원에  들러 아침과 저녁을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입이  짧은  엄마는  처음에 거의  병원밥을  뜨지 않아 애를 먹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감자를  에어프라이기에 노릇노릇 구워  가져가면 좋아하셨다. 뒤척거리며 몸을 돌리기도 힘든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고 할머니! 딸이  오니까  목소리가  좀  나오네-

옆침대에서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환자가 말했다. 제일 젊은  환자였다. 4인실이었는데  60대가  2명, 70대가 1명, 그리고  80대  후반  엄마였다. 모두  다리 골절과  고관절 골절이었다. 60대  젊은 늙은이는  회복이  빨랐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아녀! 내가  화장실 갈 수 있단 말이여! 지난번에  수술했을 때도  내 발로  갔당께!-

아니요! 할머니! 아직  의사 선생님께서  걸어 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냥 기저귀 채워드릴 테니  그냥  누워서 싸세요!-


마주 보는  침대에  70대 할머니는  쩌렁쩌렁하게  간호사와  실랑이 중이었다.   엄마는 수술직후  마취가  덜 깬 상태로  소변줄이 꽂힌 채 누워 진통제를  맞고 있었다.  엄마도 소변줄을  빼자 70대 할머니와  똑같이 실랑이를  벌였다.


 왼쪽다리에  보조기를  차고 있던 70대 할머니도,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를 찬 엄마도 결국  화장실에 갔다.  70대  할머니는  휠체어를  당신 발로  내려와 타고 갔고, 엄마는  가장  건강해 보이는  간호사에게 안겨 휠체어에  올라  화장실에 갔다. 다음 날은  내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휠체어로  들어 올리고  내려가며  화장실을  다녀왔다. 요령 있게  옮기는데  며칠이  걸렸다.


여름에  입원해서 가을에  퇴원한  엄마는  2년이  지난 지금도  타향살이 중이다. 날마다  고향을  그리며 보행기를  열심히  밀고  계신다.


울 집이  최고여야-

지팡이만  짚고라도 걷기만 허먼  우리 집에  가겄구만,,

삼시세끼 내가  밥만 챙겨 먹을 수 있음 가겄구만,,,


 나는  그해 겨울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래서 현재 요양보호사다. 가족요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엄마가  읊조리는 말을 쫓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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