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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y 05. 2023

찔레꽃 떡을  아시나요?

어제부터 약통을 챙기며 장화를 찾던 남편. 결국 새 장화를 사 오더니 비닐옷을 입고 나섰다. 얼마 전 아이들까지 동원해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나무 등걸을  모아 태우고,  비닐조각들을 가려내어  하우스 뒤쪽  놀던 땅을 제법 밭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황토을 환삼덩굴(껄껄이 풀)이 쫘악 덮고 있었다. 장화를 찾은 이유였다. 잘못하다간 껄끄러운 풀과 잔가시가 다리에 옴싹 생채기를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포실포실한 땅에서 호박모종은 빼곡하게 자라나 이사 갈 준비가 다되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그 자리에서 다투듯이 호박꽃은 피어날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점심 무렵부터 비 올 확률이 삼사십 프로라는 걸 알면서도 풀약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차일피일 미루던 검은 차광막을 하우스 위에 덮어씌웠다.


게으름뱅이 칠팔월에 애달플세라  뒤늦게  부지런을  떨다가 늦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쌈밥집 마당 한쪽에 찔레꽃이 피었다. 허겁지겁 달려가 밥보다 먼저 퍼왔다.  이 하얀 꽃을  담노라니  찔구꽃떡이 먹고 싶어졌다.


고향에서는  찔레꽃을  '찔구꽃'이라 불렀다. 찔레를 '찔구'부르면  여리여리하고  애잔하던  꽃이 산비탈 메마른 땅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찔레꽃의  이미지로 스르륵 탈바꿈하는 듯하다. 그래서 때로는 찔레꽃이 좋고,  때로는  찔구꽃이  찰떡일 때가  있다.


부슬부슬 봄비가 온 다음날이면  엄마는  고사리를 끊으러  산으로 다. 먼저 가서  꺾는 사람이  임자이므로 한 발이라도  앞서가야 했기에 골목길을  나서는  엄마의  발걸음은 이미  산에 가있었다.

 

반나절이  지났을까?  고사리를 한 보따리 머리에 이고 돌아온 엄마는 하얀 찔레잎을 앞치마 자락에서 풀어냈다. 희고 얄포름한  이파리가  하늘하늘 쟁반 위에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찔레꽃은 안중에도  없는 우리들은 고사리 보따리를  풀어  그 속에서  오동통하게  살진 찔레순을  찾느라 바빴다.  보드랍고 연한 찔레순 껍질을 벗겨가며 오독오독 씹으면 단물과 풀냄새가 섞여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마침 시간이  나는  날이면 엄마는 빻아놓은 찹쌀과  맵쌀을  반반 넣은 쌀가루에  물에 살살 헹궈낸  찔레꽃잎을  섞어  시루에  안쳤다. 그것은 하얗고 하얗고 또 하얀 가루들의 모둠이었다. 무쇠솥 위에  시루를  걸치고  그 틈새를  밀가루  시루빈을  들어  붙인 후 물을  흘려가며 을 땠다. 검은  무쇠솥뚜껑 틈새로  하얀 김이 오르고  엄마 눈에도 , 솥단지에도  눈물이  나면  얼추 다되어 가는  중이었다

 

시루를  쟁반 위에  꾸로  엎어놓으면  설설 김이 피어오르고,  우리는  엄마  손에서  떼주는 하얀 떡을  제비새끼가  먹이  받아먹듯  오물거렸다.

"요 찔구떡을 묵어야 여름 안 탄단다. 얼릉 따땃할 때 묵어봐라."


한입을  먹어도  살찌게  먹는 녀석이  있다면  먹고 있는 것도  빼앗아버리고  싶을 만큼 깨작거리는  녀석이 있었다. 전자는  원래  육덕이  좋았다고  엄마가  말하는  나와  둘째  남동생이었고,  후자는  첫째 남동생과  둘째  언니였다. 엄마가   찔레떡을  한  이유는  딸 셋 다음으로  귀하게  얻은  장남,  나의 첫째  남동생이  더위 먹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게 하기  위함이  주된 이유였지만 그 덕은 육덕이 좋은 아이들이 보았다. 즉  먹성 좋은  아이들  몫이었다.

 

봄이면 보리순을  베어  삶은 팥과 섞어  찐 보리개떡과 쑥과 쌀가루를  버물려  보슬 보슬 쪄낸  쑥버무리. 그리고  찔구꽃떡.

여름이면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켜 감잎 위에 쪄내던  기정떡(증편).

가을에는 호박곶이와  감 말랭이를  섞어  은 팥을 둘금둘금 놓아 만든 호박떡.

겨울이면  봄에  말려놓은  쑥과  분대(절굿대)로 만든  쑥떡과 분대떡.

이 모든 것들은  쌀가루만  방앗간에서  빻아왔을  뿐 모두  집에서 엄마 손으로  직접  만들어  주던 것 들이다.


 나는  이제 그다지 떡을  먹지않는다. 그런데  가끔  생각이 난다. 그럴 때면  시장 보는 길에 떡을  한 팩정도 사곤 한다. 하지만  먹을 때마다  이건  아닌데  싶다. 단맛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만 뭔가  없다.


"동생아, 내가  쑥 뜯어  데쳐놨다. 와서  쑥떡해 먹어라!"

언니의  전화였다. 며칠 전  언니는  이 바쁜 때  무슨  쑥을  뜯느냐고  묻는  형부에게  처제가  쑥떡이  먹고  싶다는데? 하고  말했더니  처제를  뻐하는  형부라  아무 말  않더라는 것이었다.

 

'아하! 이런 과정이,  떡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맛이었구나. '

찔레꽃떡 안에는 가시 돋친  찔레나무 사이를 한참을  오갔을  엄마의  굵고 거친 손맛이  들어있다. 한참을  따 담아도  뽈깡 쥐어 한 줌 되기 힘든 바스락 꽃잎을 따 담았을  엄마의 오래된 손맛이 들어갔다. 그리고 떡가루를  빻기 위해 십리를  걸어갔을  떡 방앗간까지 걸음걸이가 들어있다.  떡을  쪄내기 위해  흘린 솥단지와  시루의 눈물이 들어있었다. 이 모든 게 어울렁 더울렁 모인 맛이었나 보다.


 그 모든 과정은   알게 모르게  내 몸에 인이  박이게 되었고, 어느 날 문득 지나가는 계절의  바람이  불쑥 마음에 들어오는 날, 나는 한입 베어 물고 싶어 진다. 그때 먹었던  그것들을.


사실  그  하얀 찔레꽃떡은 꽃잎도 삶아져 누렇게 변하고 쪼그라들어  웬만큼  넣지 않고서는 꽃도 보일락 말락, 꽃내음 날락 말락, 심심한 맛이었다.

그런데  그 무던하고  그  평이한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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