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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Mar 24. 2023

밥은 잡쉈어?


'아이고, 강프로!  식사는 잡쉈어?'


 우스웠다. 대뜸 전화기를 들자마자 최창호(배우 박해수)가 강인구(배우 하정우)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댄다. 어느 시대쯤을 발판으로 그려내고 있기에 저런 고리타분한 대사를 남발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조용필의 '꿈'이나 윤수일의 '아파트'가 삽입곡으로 흐르는 걸 보니 내 세대의 이야기인가? 알고 보니 그렇다.

주연인 강인구(배우 하정우)가 1968년생 설정이라니 나와 동시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저런 대사를 남발한다고?  


 며칠 전 한가함을 달래기 위해 대낮부터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수리남'을 보았다. 우리 드라마를 한글 자막으로 시청했다. 아들 녀석 말에 의하면 이렇게 설정을 해놓고 보면 더 낫다고 한다. 그럴듯하다. 영화관도 아닌 도로변에 위치한 우리 집 사정상 지나쳐 버리기 쉬운 대사도 문자로 잡아둘 수 있으니. 이럴 때는 역시 젊은이의 생각이 반짝거린다고 칭찬을 했다. 가을바람이 넘실거리는 거실에서 6부작을 이틀에 걸쳐 봤다.


 유튜브에  박해수 대사인 '식사는 잡쉈어?'를 모음으로 담아놓은 것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나만 귀에 쏙쏙 박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워낙 자주 나와 감독의 일종의 밈이 아닌가 할 만큼이라니.  박해수와 하정우의 진짜 관계(국정원 팀장과 민간인 국정원 협력자)를 덮기 위한 대사가 필요했는데 가장 적절한 우리 한국인의 대사였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대사였다.


 그런데 그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물음을 내가 하고 있다.

'밥은 먹었어?'

'저녁은? 아침은? 점심은?'

'뭐에다?'


엄마에게, 아들, 딸에게 묻는다. 없어서 못 먹는 시절도 아니건만 꼬박꼬박 밥을 드셔야 기운을 차리시는 노인이기에,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청춘들이기에 전화기 너머 숨소리가 들리기 바쁘게 묻는다. 묻는다고 해서 안 먹던 밥을 먹을 것도 아니고, 마땅히 반찬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건만 상대방의 식사 유무가 대단한냥 묻는다.

 물론 상대방들도 마찬가지다.

 '밥은 먹고 허냐?'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를 해서 늘 묻곤 하시던 엄마의 말이다.

 '오늘 저녁은 뭐야?' 매번 저녁마다 싱크대 주변을 쭈욱 훑고, 냉장고를 열어보며 물어보는 아들의 말이다.

  '점심은 먹었어? 먹고 해!' 내가 아이들이 챙겨 먹지 못한 밥 한 끼를 걱정하듯이 아이들도 일하랴 놓치거나 늦어질 밥 한 끼를 걱정한다.


'밥은 먹었어?'

'잘 잤어?'

나는 오늘도 밥 한 끼와 잠 한 자락을 가장 촌스럽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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