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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pr 06. 2023

불쑥불쑥 끼어드는 내편과 살고 있다

넌  어찌 쌓아놓을 줄  모르냐? 퍼주기만  좋아하고,,,


이사하는 언니네  갈 때  가져가야 할  것들을  혹시나 잊어버릴까 봐  미리  챙기는 내게  엄마는  싫지 않은 기색으로  지청구를 했다.

감말랭이, 찹쌀가루, 고구마, 쌀 2포대 또,,,-

모두  엄마가 계신 덕분에  시골에서  올라온  물건들이지만 우리 집에  머물고  있으니  내 것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나는 또  그런 것들을  퍼주는  재미를  쏠쏠이 보고 있다.


째깐했을 적부터 그렇게 누구 뭐 해준다면 앞장을 스던 마는...

엄마의 타박 아닌 타박이었다.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주는 사람이  느끼는 뿌듯함을 일찍 깨달아버린 그런 시절, 약간  스스로  괜찮아 보이는 그 우쭐한 느낌을  일찍  알아버린  그런  시절, 하지만  아주  촌스럽기만 한,,,

 

5학년이었다. 열두 살, 우리 동네에서 여자애들만 열명이었다. 남자애들까지 하면  거의 스무 명 정도  되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 동네는 한집 걸러 한 집꼴로  일 년 내내 숯, 고추, 솔가지가  엮인 새끼줄이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금줄이 쳐져있었을 것이라고.


그중 같은 반이 대여섯 명이었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도 책상정리를 하거나 , 그날 치렀던 월말고사 시험지 채점을 하거나, 학교 강당 행사장 정리를 하거나 그런 잡다한  일들로  교실에  머물렀다.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우리들  스스로 남아있기도 했다. 집에 가면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농사일과 집안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우리들의 잇속과는 다르게 기특해하는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하며  우리는 제법 으쓱거렸다.


1학기가 마무리되거나,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성적통지표 받을 무렵에는 더욱 그랬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성적을 미리 알고 있었다. 방학 며칠 전 우리들 손에는 반전체 아이들의 성적이 적힌 한 장의  종이가 쥐어졌다. 선생님이  먼저 작성해 두신 것이었다. 우리는  선생님 책상 주변에 옹기종기 앉았다. 그리고 돌아가며 친구들의 과목별 교과학습 발달사항 '수우미양가'와 행동발달사항 '가나다'를 보고 적힌 대로 읽었다. 선생님은 반아이들에게 나눠 줄 성적표 한 장 한 장에 우리가 읽은 대로 바르고  또박또박한 정자체로  옮겨 적으셨다


우수수수수수수-

우수수수수수수? 낙엽이 떨어진대?

가가나가나-

가가나가나? 어디로 나간대?

양가양가양가양-

양가양가양가양? 양가집규수구만!

선생님과  우리들은  서로 뒤질세라  아이들의 성적에  입말을  달아 장난을 쳤다.


어느 날은 교실 한쪽 어항에서 던 금붕어가 배를 내놓고 떠올랐다. 선생님은  장례를 치러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농담 삼아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금붕어를  두 손으로 감싸듯이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학교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탱자나무 아래였다.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개구멍을 피해 나뭇가지로 땅을 파고 흰 종이를 깐 위에 고이 묻어 주었다. 우리들은 조회시간에  했던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듯 고개를 숙이고 물고기가  저 세상에 가서 평안하기를 빌었다. 


커튼도  갖고 왔어야-

한 번은 흰색이고 또 한 번은 퐅색을 갖고 왔드만-

 불쑥 들어온 엄마의 말이었다.


어느 날은 교실 커튼을 빨아서 갖고 가겠다고 들고 온 모양이었다. 아마도 '이 커튼 빨아올 사람' 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손을 번쩍 들었던 것 같다. 집에서는 양말 한 켤레도 직접 빨지 않았던 우리들이었는데 말이다.  

결국 비누칠도 하지 않은 채 냇가에서 빨아온 커튼은 엄마 손으로 다시 빨아서 반듯하게 접어 학교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5학년때 반 그대로 6학년에 올라갔다. 담임선생님은 바뀌었다. 그런데 6학년 담임선생님은 아프셨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간이 나쁘다고 했다. 우리는 간이 나빠 배가 부어오른 채 돌아가신 동네 어른을 보았다. 우리는 겁이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간에는 미나리즙이 '겁나게 좋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마을 입구에 흐르는 개울가에서 고막손으로 대궁이 붉은 돌미나리를 뜯었다. 미나리를 채취한 도랑에서 제일 가까운 친구 집 확독에 씻은 미나리를 넣고 빻았다. 짓이겼다. 금세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 물이 나왔다. 바구니에  받쳐 가라앉은 찌꺼기를 버리고 소주 됫병에 담았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릇이었다.


원 참 별것을 다 해서 갖고 간다 해서 내가 다시 깨깟히 해갖고 담아줬재-

다시 엄마가 내용을 정정했다.

선생님이 그것을 드셨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만든 과정만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선생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취해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은 요양을 갔다는 소문만 있었다. 선생님들께 물어봤지만 확실한 대답은 들은 기억이 없다.


엄마는 기억력이 좋다. 우리가 놓쳤을뻔한 이야기들을 거의 모두 가둬두고 있다.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옮기며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는 내 유년시절 속에서 내내 불쑥불쑥 끼어들었다. 마무리는 엄마가 지었다. 지금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옆에 앉으면 내가 듣건 말건 지나간 일들과 TV속 이야기를 연결 지어 당신 말을 늘어놓는다.  나는 제법 잘 듣고 있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용도 모르는 채 ' 어 그랬어?'로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그런데 엄마는 늘 내 말을 잘 듣고 있다.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핸드폰 챙겼냐?  아까 본께 약을 안 먹드만 챙겨 먹고 가라-

비 온다고 테레비에서 글드만 그 옷이 뭐시다냐? 따숩게 입고 가라-

잔소리한다고 할까 봐 참었는디 장갑 끼고 일해라이-


지금도 불쑥불쑥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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