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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더분한 버마재비 Apr 28. 2023

송전탑 위에 사는 가족

지난 삼월 초였다. 아침  출근길,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느 날 같으면 송전탑을  에워싸고 있는 녹색  휀스에  바짝  붙여  주차를  하고 후다닥 가게로 들어갔을 터인데, 그날따라 햇살은 그리 좋은지 봄볕에 눅눅한 마음을 말리기  딱이었다. 둘레둘레 주위로 통통통 시선을 옮겨가며 봄볕을 주워 마음속에 저장 중이었다. 내 발걸음에 길고양이들이 주차된 차량 밑으로 달아났다. 나도 '냐-옹' 흉내를 내며 쪼그리고 앉아 차량 밑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고양이는 '아침부터 왜 이래?'라며 슬금슬금 나를 피해 건물뒤로 달아나 버렸다. 그런 고양이  뒷모습을 바라보고 배시시 웃으며 일어나려다 보았다. 송전탑 아래 나뭇가지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쫘악 널브러져 있는 것을. 마치  산가지놀이를 시작할 것처럼.


'뭐지? 바람이  밤새  불었나? 아니  바람이  불어도 저런  잔가지들이  날아올 곳이  없는데?  아님 뭐지?'

이곳은 원룸이나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저런 가지가  날아 올곳도, 있을 이유도  없는 곳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위쪽에서  나뭇가지가  떨어져  내렸다.


'하늘이었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찌르는 햇살에 얼굴에  오만상을  써가며  어느  하늘  구멍에서  나뭇가지가  내려오나  살피는데  언듯 까맣고도 하얀  날갯짓이 보였다.  한참을  날갯짓을 따라다니고서야  알았다.


'까치였구나!'

까치 한 마리가  철탑에  앉아 있었다. 까치는 송전탑 밑 하얀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를  바라보더니, 다시  날갯짓을 하고  옆에  있는  교회건물  옥상으로  날았다. 그리고  다시  원룸 지붕으로  날았다. 그 후  큰 도로변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잠시 멀리 날아가버린 까치 뒷모습을 쫓아가는데 또 다른  녀석이  나뭇가지를  물고  송전탑  중간쯤에  앉았다. 몇 걸음  총총총 걷더니 다시  위로  날았다. 내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아하, 저곳이구나!'

녀석이 날아 올라간 곳에는 삐쭉빼쭉 솟아난 나뭇가지가 보였다. 너무 높은 곳이라서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아직은  얼기설기 엮어진  바닥 기초공사에 불과했다.


'까치부부였다!'

녀석들은 오십여 미터가  넘을법한  높이, 철탑 이음새들이  모인  귀퉁이 한쪽에  집을  짓고 있었다. 까치집을 짓는 곳  아래에  나뭇가지들이  많을수록  초보 건축가일  확률이  높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 부부는  '집 짓기는  처음이라서' 커플로 신혼부부일  가능성이  컸다. 녀석들은  송전탑아래  한 곳이 아닌  사방팔방에  고만고만한 나뭇가지를  뿌려놓았다. 고개가 아프도록 송전탑을 훑어보았더니 철탑이음새  부분  세 곳에  더  기초공사를 하다 그만둔  흔적이  있었다. 까치가  한 채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800개에서  1000개의  나뭇가지가  필요하다는데  녀석들의  신혼집은  이미  천 개가  넘어버렸다.  분명 신혼이었다.  녀석들의  러브하우스 건축공사는 아직도  한참 진행 중이었다.


며칠 전 가게 주변이 요란했다.  소음의  진원지는 송전탑이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이었다. 기웃기웃 현장을  살피던  남편이  들어와 배수시설을  만드느라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 빠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웃주민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넣은 것이라고.

'글쎄... 배수시설을 해야 할 만큼이었을까?'

우리도  송전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우리 건물과는  차 두대정도는 지나갈 수 있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송전탑과 바로 붙어있는 건물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민들레  초원이  사라졌다.  출근길만 해도  송전탑을  빙 둘러  홈을 파고 물길을 내는 배수시설이 정리된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퇴근  무렵 나가보니 점점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노란  민들레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3월 말쯤이면  그 점찍어놓은 듯한 노랑이  햇볕을  머금고 수채화물감  번지듯 쨍한 노랑으로  바뀌어 있을 텐데... 송전탑이 서있는 지상 1층은 지천으로  깔린  민들레가  사라지고  햇볕을 온몸으로 반사시켜 버릴 듯한 시멘트로 덮여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이  보였던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맘때쯤 분명  저 녀석들이  아닐지라도  어떤  까치부부가  그들만의 러브하우스를  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노란 민들레를  품고 있던  흙이  녀석들이  진행하고  있던  공사의  흔적을  덮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민들레를  무지르고  깔아버린  시멘트로 인해  녀석들만의 비밀공간인 러브하우스  위치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다.


일하다 말고  밖으로  나간  우리  부부는  가끔씩 그 녀석들의  러브하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집  모양은  어제와  별 다름없어  보이지만  바닥에  나뭇가지는  늘어만 갔다. 우리는 그 새내기 부부의 건축에  몇 마디라도  해줄 량으로  눈 마주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들 참견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나뭇가지를  물고 와  쪼아가며  열심히 기초공사 중이었다.


4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 ,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공사가  다 끝나고  입주한  모양이다.  바닥에  널려있던  러브하우스 건축공사의  흔적은 휀스  바깥쪽  풀베기  작업을 하러 왔던  한전직원이  치웠는지  깨끗해졌다. 가끔  한 마리가  날아들어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암컷은  알을  품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해 본다. 5월쯤이면  새끼들과  비행연습을  하는 까치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담장너머 참견하고 싶어 안달 난 이웃처럼 오늘도 송전탑 러브하우스를 목을 빼고 기웃거린다.

매년 높은 나무 위에 새로운 둥지를  트는 습성이 있는 그들에게 도심지 한가운데서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 된 송전탑 위에서  행복한 일가를 이루기를 바라며.

새끼를 낳고 비행연습을 나오걸랑 그들이  사는 러브하우스 1층은  민들레  밭이 아니라 시멘트이니  조심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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