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 S
Alt + S*, 어느 봄날
벚꽃이 흩날린다. 아이의 마지막 항암 날이다. 항암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눈부신 봄날이다. 지난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유난히 차갑고 혹독했다. 누구보다 아프고 힘들었을 우리 아이. 봄 햇살보다 빛나는 아이에게 오늘은 선물이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열이 나고 동네 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의사들은 아이가 면역력이 약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명열이라는 말뿐 제대로 된 병명을 잡아내지 못했다. 약의 용량을 점점 늘려도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우리는 답답하기만 했다. 주변 지인들은 괜찮을 거라며 아이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라고 위로를 건네주었다. 나 또한 ‘그럼, 금방 괜찮아질 거야’라고 답하며 하나도 안 괜찮지만 괜찮은 척을 했다. 사실 나는 ‘혹시’와 ‘만약’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목구멍 안으로 꿀꺽 삼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힘든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날이 조금 덜 힘든 쪽이고 더 힘든 쪽으로의 생각은 나를 무섭게 했다.
더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큰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골수검사까지 하고 나서야 ‘HLH 혈구 탐식성 림프 조직구증’이라는 병을 진단받게 되었다. 이름도 길고 낯선 병명을 듣고도 나는 현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이는 천진난만했다. 희귀 질환이라는 말에 뭔가 특별한 주인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질 독한 약의 그림자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강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으면서도 고열이 올랐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당장 입원해서 치료받지 않으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병이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친절하고 살벌했다. 응급실에서 서로를 안고 눈물을 쏟으며 우리의 병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입원환자와 보호자를 받는 기준도 엄격했다. 병실로 올라가는 데까지 하루가 꼬박 걸렸고 응급실에서는 밥이 나오지 않고 출입제한도 있어 쫄쫄 굶으며 병실이 나기만 기다렸다. 밤이 되어서야 병실에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무서운 상황들을 마주했다.
동네에서 폐렴, 장염 정도로 입원한 아이들은 봤지만, 크론병, 골육종, 백혈병 등 무서운 병명으로 투병하는 아이들과 같은 병동, 병실을 쓰게 되었다. 우리 아이도 그중 하나라니 말도 안 돼. 밤마다 들려오는 아픈 아이들의 신음과 울음소리, 응급상황이 발생해 처치하는 다급한 의료진 소리, 조용해지면 어디선가 훌쩍이는 부모들의 눈물까지. 내 상황도 감당하기 힘든데 다른 아픈 아이들의 사정을 알아가게 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뇌척수액 검사와 정말 검사를 통해 다행히 추가로 발견된 나쁜 병은 없었다, 가슴 쪽에 관을 넣는 케모포트 삽입 수술을 하며 그곳을 통해 항암제가 투여되었다. 열은 점점 잡혀가고 혈액 수치들은 점점 나아졌지만, 항암의 부작용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동의서에 서명 할 때 다정한 목소리로 상냥하게 설명해준 내용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 사이 바깥세상에서는 여전히 코로나가 유행했고 차가웠던 사람들의 마음은 동계올림픽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을 보내고 멀리서 오는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겨우내 숨죽여있던 나무들은 작은 새싹을 틔워내고 예쁜 꽃망울을 터트렸다.
살아가다 보면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꽃처럼 활짝 웃으며 여러 장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다. 올해는 봄꽃 앞에서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다만 꽃이 피었다 봄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이 기억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건강한 모습으로 봄을 맞이하는 날이 오겠지? 여느 다름없는 엄마와 딸이 되어 자그락거리는 평범한 그런 날. ‘우리 그런 날도 있었지.’라고 기억 속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비록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지만 힘들게 버텨낸 우리의 겨울 그리고 한 걸음 다가온 봄. 아이는 이제 엑스트라를 꿈꾼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벚꽃 길 수많은 사람, 그 안에 아이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느 봄날, Al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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