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rl + Z
시간을 거슬러
Ctrl+Z
나는 낯가림이 있는 편이다. 서비스 직업상 첫 만남의 어색함을 깨보려고 아이스브레이킹을 시도하는데 가끔은 무리수가 되기도 한다.
새로 등록한 수강생과 첫 수업이다. 수강생분은 상담하시며 컴맹에 가까운 생초보라고 고백하셨다. 첫 시간부터 딱딱하게 수업을 나가면 어려워하실 것 같다. 이럴 땐 수업을 나가기 전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지. 살짝 아줌마스러운 오지랖을 발동시킨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 같아 보인다. 그녀는 벙벙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식사는 하셨어요?” (날씨나 안부를 묻는 정도가 적당하다.)
“네.”
“결혼하셨죠?” (갑자기 웬 호구조사?)
“네.” (와~ 나 촉 좋아.)
“혹시 임신하셨어요?” (키보드가 배에 닿아 불편에 보이는데 배려해 드려야지~)
“아니요. 출산한지 2년 됐는데 살이 안 빠져요.” (띠로리)
“아...”
아이스브레이킹은 고사하고 짧은 정적과 함께 우리 사이는 얼어붙는다. 지금 필요한 건 Ctrl+Z! 딱 3초 전으로 되돌리기.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을 다시 담고 싶을 때 간절해지는 단축키이다.
Ctrl+Z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단축키이다. 직전 실행 취소, 되돌리기 기능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초보자들은 뭔가 실수를 했을 때 이 단축키를 순간 떠올리지 못한다. 당황해서 이것저것 다른 키들을 눌러보다가 어쩔 수 없을 때 ‘선생님’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한다. 어린아이들이 엄마 몰래 사고를 치고 혼자 수습하다가 더 크게 일을 벌여놓는 것과 비슷하다. 이럴 땐 지우고 다시 하는 게 최선!
나는 컴퓨터 앞에서는 자신감이 넘치지만 살림에 있어서 젬병이다. 요리에는 재능이 없다. 식재료를 구분하는 게 가장 어려운데 그중에서 비슷하게 생긴 고만고만한 양념병을 자주 헷갈려 한다. 하얀 가루의 양념들은 요리의 화룡점정, 마지막 ‘간’을 맞추는데 꼭 필요한 아이들이다. 굵은 가루와 곱게 갈린 가루의 용도가 어떤 차이로 다른지 잘 모르겠다. 모르면 신중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얀 가루들을 한 숟갈 떠서 ‘이거 맞겠지?’하고 일단 넣어본다.
계란 프라이를 하려고 프라이팬을 달군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신선한 계란을 톡 깨뜨려 넣으면 완성되는 가장 쉬운 요리. 기름병에 들은 용액을 한 바퀴 두르니 ‘치이—’. 예상치 못한 소리가 아침의 덜 깬 잠을 깨운다. 내가 넣은 것은 식용유가 아니고 올리고당이었다. Ctrl+Z!
옥수수를 삶을 때 뉴슈가를 넣으면 더 맛있어진다고 한다. 처음으로 옥수수를 삶던 어느 여름날. 옥수수를 넣고 팔팔 끓을 때 뉴슈가를 솔솔 뿌려주었다. 다 삶아질 즈음 뚜껑을 열어보니 이거 색이 왜 이러지? 찰옥수수 색깔이 샛노랗게 변해있다. 내가 넣은 가루의 정체는 뉴슈가가 아닌 과일을 씻거나 그릇을 세척할 때 쓰는 베이킹소다였다. 이 정도면 Ctrl+Z로도 돌이킬 수 없겠지.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적인 요리는 안타깝게 쓰레기가 돼버린다. 지구야 미안해.
사소한 실수는 누구나 한다. Ctrl+Z로 되돌리기가 상책은 아니다. 실수를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서 실수에 대처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혼자 한 실수들은 뒷수습을 하면 그만이지만 말의 실수는 다르다. 내가 저지른 말실수들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버렸다. 잘 알지도 못한 얕은 알은체로 상처를 준 것은 나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선을 넘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서로의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실수를 하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실수를 인정하는 건 그보다 더 심장이 뜨거워져야 한다. 마음에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속에 Ctrl+Z를 장착한다면 되돌리기보다 실수를 인정하는 불씨로 사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