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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Apr 10. 2023

할머니, 안녕히가세요

남겨진 사람의 아쉬움과 그리움

"아이고, 고생했다. 넘의 나라 가서 얼마나 힘들었노~?"

5년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와 남편을 외할머니는 정말 반가워하셨다.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얼마나 힘들었냐며 이제 다시 안가는거냐고 몇 번을 확인하셨다.

편찮으신데는 없는지 여쭤보니 맨날 아픈거 똑같다며 늙으면 다 이렇다고 하신다.

식사 때가 아니라 인사드리고 일어서려고 하자 뭐라도 먹고 가라며 냉장고에서 곶감을 꺼내주셨다.

아이들과 남편은 맛있게 먹었는데 나는 입맛이 없어 먹지 않다가 남편이 맛은 보라며 한입 베어 먹었다.


맛있는거 사 드시라고 용돈을 드리고 나오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쌈짓돈을 꺼내어 외증손주인 우리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셨다. 

"새 학교 가서 친구들 잘 사귀고 필요한거 사라."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pixabay


어느 날 저녁,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 돌아가셨다...."

겨우 2주만에 갑자기 무슨 일인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엄마에게 차마 전화를 걸 엄두가 나지않았다. 엄마를 잃은 내 엄마를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친정 집과 5분거리에 살고 계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뵜다. 

한 해 한 해 거동이 조금씩 불편해지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에 들러 식사를 챙겨드렸고 컨디션이 괜찮은지 살피셨다. 

저녁이면 우리집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경로당에 할아버지 할머니 유모차가 있는지, 집에 들어가셨는지 확인하곤 했다.

여느 딸과 엄마차럼 엄마도 할머니에게 밥 잘 챙겨 드시라, 필요없는 것 좀 버려라 잔소리 해가면서도 살뜰하게 챙겼다.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저렇게 해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할뿐더러 여전히 나는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나는 엄마처럼 저렇게 정성으로 대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도 컸지만 나는 남겨진 할아버지와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매일 오가던 그 집에 할아버지만 계시는 모습을 봐야하는 엄마, 창문을 열면 매일 있던 유모차가 한 대밖에 없음을 인식할 때...

무의식중에 오늘은 왜 엄마 유모차는 없지?생각했다가 할머니의 빈자리를 깨달을 때...엄마의 마음이 어떨까...

할머니를 잘 챙겨주셨던 할아버지는 본인의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시고 마음이 흐려지시진 않을까...

타국에서 고생했다고 안쓰러워하던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나는 따라갈 수 없나보다. 

떠난 할머니보다 남겨진 내 엄마 걱정을 하는 거보면...그리고 내 마음이 편해질 생각이 먼저 든다.

할머니가 주신 곶감을 한입이라도 먹길 잘했구나, 내가 중국이 아닌 한국에 있을 때 가셔서 그나마 다행이구나....

엄마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엄마만큼 정성을 다해도 눈물이 쏟아지는데 그 절반도 못한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까 그런 생각이나 하는 못난 딸, 손녀다.


유난히 맑았던 하늘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치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담담히 말씀하셨다.

"느그 할머니는 경로당 갔다 오는 길에 대문을 열쇠로 여는 게 귀찮아서 맨날 내가 먼저 와서 열어두면 나보다 5분 뒤에 늦게 출발해서 집에 왔다. 그게 뭐 귀찮다고... 근데 이제 내가 문 열어놓고 있으면 뒤따라 올 사람이 없는데 한참은 기다려지지 않겠나...."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모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연세가 드셔서 병원에서 오래 고생하시지 않고 가신 할머니를 보고 모두가 호상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호상일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는 아쉬운 일만 마음에 남는다.


 

따뜻한 봄날에 하늘로 가신 할머니...

벚꽃이 피고 지고 몇 주 후면 벌써 49재다.


할머니,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도 지켜주세요....

감사했어요 할머니... 

마지막까지 저는 받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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