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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30. 2023

분홍색 수건을 치우는 일

미안해서 흐르는 눈물

샤워하고 습관적으로 수건을 꺼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수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여사 팔순기념


핑크색 수건에 곱게 박힌 기념 문구에 잠시 멈췄다가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핑크색 수건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한달이 채.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는데 친정 엄마가 우리집에 다녀가기로 하셨기 때문이다.




외갓집과 걸어서 5분 거리에 가까이 살아 오며가며 많이 뵙긴 했어도 내가 살가운 편은 아니라 징례 이후로 계속 울기만 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슬프고 마음아팠지만 그 순간순간 눈물이 온전히 할머니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감히 고백한다.

때때로 올라오는 남겨진 할아버지와 우리 엄마에 대한 걱정, 그리고 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나와 엄마의 미래의 모습이 겹쳐보여 더 눈물이 났다.



매번 생각한다.

'나는 엄마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벌써부터 미안해서 눈물이 흘렀던 것은 아닐까.


핑크색 수건을 보면서 나중에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수건 앞에서 갑자기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것 같다.




어려서는 모르겠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예쁜 딸은 아니었다.

무뚝뚝했고 말도 없었고 방문도 닫고 들어갔다. 내가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다.

그때부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해하면 할수록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뭐가 그리 미안한지 잘못한것만 생각이 나는데 아빠엄마는 다 잊었다는듯 늘 고맙다고만 하신다.


떠올려보면 할머니도 엄마에게 온갖 투정을 부리시면서도 늘 고맙다 하셨다.

그 말을 들을때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할머니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도 후회와 아쉬움이 남을까? 이만큼 하는 엄마의 마음도 이런데 나는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할까....



겉으로는 엄마를 걱정하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미리 슬플거라 생각하는 것도 내 기준, 내 걱정이다.



이제 더는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를 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볼 일은 없다.

내가 할 일은 할머니가 그러셨듯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며 늘어날지도 모르는 투정을 들어주고 마음 써주는 일, 그리고 엄마가 제법 무뎌질때까지 분홍색 수건은 치워두는 일...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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