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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익균 May 09. 2022

한용운 대 칸트

본론

2장 근대인이 대면한 이율배반으로서의 「인과율」     

근대전환기 청년 지성으로서 한용운의 진보적인 태도는 당대에는 가장 선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님의 침묵』이 나온 1920년대에 한용운은 40대의 기성세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20년대의 문화 청년들에 비해 보수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근래의 문화사적 연구는 이러한 상식적 추정에 근접하는 해석을 보여준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1910년대 중반에서 1920년대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연애에 관한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제기된 시기이며 자유연애 담론과 근대적 독자층의 형성은 『님의 침묵』이 집필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한용운의 문학활동은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근래의 문화사적 해석을 대표한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연애와 결혼 특히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그리고 자유이혼을 근대적으로 학습해야 할 내용으로 인식했다. 근대적 사랑은 다른 어떤 기준에도 의존하지 않는 열정을 요청하며 이러한 열정이 근대적 주체를 탄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문학활동을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할 때 “관건은 평생토록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으며 이것은 한용운의 시가 근대적인 개인의 상호적인 계약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연애의 이상보다는 “전통적인 반려애”와 유사하다는 다음의 비판으로 연결된다. “한용운은 전통적인 사랑의 정서와 새롭게 유입된 사랑의 방식을 접목시켜 우리 나름의 근대적 사랑의 윤리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도로서의 의미는 컸지만, 그 귀결점은 전통적인 반려애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화사 연구의 흐름 속에서 「인과율」은 구체적인 비판점을 노정한다. 아래에서 한용운의 시 「인과율」과 최근 문화사 연구 안에서 「인과율」이 맥락화된 텍스트를 확인해 보자.     

당신은 옛 맹세(盟誓)를 깨치고 가십니다

당신의 盟誓는 얼마나 참되었습니까?

그 盟誓를 깨치고 가는 이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참 盟誓를 깨치고 가는 이별은 옛 盟誓로 돌아올 줄을 압니다.

그것은 엄숙(嚴肅)한 인과율(因果律)입니다

나는 당신과 떠날 때에 입 맞춘 입술이 마르기 전에 당신이 돌아와서 다시 입 맞추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시는 것은 옛 盟誓를 깨치려는 고의(故意)가 아닌 줄을 나는 암니다

비겨 당신이 지금의 이별을 영원(永遠)히 깨치지 않는다 하여도 당신의 최후(最後)의 접촉(接觸)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男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     

“한용운은 정이 인격과 결합된 방식으로서의 사랑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한 것은 불교적 인과율이다. “참 맹세를 깨치고 가는 이별은 옛 맹세로 돌아올 줄을 압니다 그것은 엄숙한 인과율입니다”(「인과율」)에서처럼, 상실의 현실이 낭만주의적 사랑의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사랑의 맹세를 지키는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라는 종교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교이든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이든 한용운에게 있어서 근대는 일방적인 서구적 근대의 추수가 아니라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변화로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세계였다. 사랑을 고백하는 주체의 자율적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제도로서의 결혼 혹은 사랑의 맹세를 지킴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인간의 존엄과 연결시키고자 한 것이 한용운이 인식한 사랑의 근대적 존재방식이었다.”     

위의 인용에서 한용운의 시  「인과율」은 “불교” 또는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이 “낭만주의적 사랑의 파국”을 막는 데 기여하는 “사랑의 맹세를 지키는 균형감각”을 주고 있다는 방증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지나간 업보에 따른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불교 교리에 대한 상식적인 해석과도 부합한다. 선행 연구에서 한용운의 시 「인과율」에 대한 문화사적 이해와 불교 교리에 근거한 이해는 공히 제도로서의 결혼 혹은 사랑의 맹세를 지키면 “당신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신념”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러한 선행연구는 ‘최초의 근대 청년’ 한용운의 불교 이해를 동양 전통으로 수렴시킨다는 문제를 갖는다. 하지만 한용운이 1910년대에 불교의 근대화에 헌신해 왔다는 상식에 기대지 않더라도 『님의 침묵』이 발간된 다음 해에 신여성을 향해 “녀성해방 운동은 녀성 자신의 운동이라야 함니다 남자에게 피동되는 운동은 무의미하게 되며 또 무력하게 됨니다.”라고 하여 1920년대 문화청년에게 오히려 더욱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한용운의 사상과 실천에 주목해 보면 유독 한용운의 문학은 신여성의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작용, 사랑의 맹세를 지키는 균형감각, 옛맹세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 등의 다소 소박한 보수성(‘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본고는 한용운의 불교 이해의 근대성에 주목하겠다. 「인과율」에 대한 선행 연구는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의 진보성을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의 불교 이해에 영향을 미친 량치차오에게서 불교는 근대에 재발명된 ‘신종교’였다.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은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불교를 중국의 종교로 선택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종래의 불교에 가해졌던 비판들, 가령 미신이라거나 염세적이라는 등의 내용을 거부하면서 불교가 국민정신을 통일하고 문명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종교라고 본다. 량치차오의 이러한 관점은 불교를 통한 근대화의 가능성을 만해에게 열어준다. 만해의 「조선불교유신론」에는 량치차오에 대한 언급이 5번 나온다. 당시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을 읽는 일은 그 자체로 근대적인 체험이었는데 이는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개화운동의 실천의 일부로 중요시되었다 

량치차오는 1903년 2월부터 1904년 2월까지 『신민총보』에 「근세 최고 철학자 칸트의 학설」을 4회 연재하며 이후 량치차오의 『음빙실문집』에 수록한다. 량치차오식으로 전유된 칸트는 한용운의 사상에도 흔적을 남기는데 이 점은 한용운의 『불교유신론』의 「불교의 성질」 편에서 확인된다.     

“우리의 일생의 행위가 다 내 도덕적 성질이 겉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인간성이 자유에 합치하는가 아닌가를 알고자 하면 공연히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으로 논해서는 안되며 응당 본성의 도덕적 성질에 입각하여 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니, 도덕적 성질에 있어서야 누가 조금이라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겠는가. 도덕적 성질은 생기는 일도, 없어지는 일도 없어서 공간과 시간에 제한받거나 구속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항상 현재뿐인 것인바, 사람이 각자 이 공간, 시간을 초월한 자유권(본성)에 의지하여 스스로 도덕적 성질을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그러기에 나의 진정한 자아를 나의 육안으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나 도덕의 이치로 생각하면 엄연히 멀리 현상 위에 벗어나 그 밖에서 있음을 보게 된다.”     

위의 인용에서 보듯 한용운은 불교의 성질을 칸트의 초월철학을 전유한 자유의 문제로 해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용운에 대한 지성사적인 이해를 전제로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문학활동은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라는 각도에서 조명”하거나 “그 귀결점은 전통적인 반려애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는 평가와 다른 접근을 시도하겠다. 

권보드래, 이선이가 대표하는 문화사적 접근의 요점은 한용운의 시가 ‘연애의 시대’의 자유연애론에 대한 반명제로서 전근대적(동아시아적) ‘반려애’로 수렴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한용운의 시에서 불교적 ‘인과율’을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의 원리로 해석한 것은 ‘근대 사상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누락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대전환기에 보여준 한용운의 도덕적 우위를 ‘옛 맹세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소박한 인과율 이해와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를 근대사상으로 정초하려 한 동아시아 근대 전환기 지성의 한 전형인 한용운의 구체성은 간과할 수 없다. 한용운은 량치차오를 매개로 하여 칸트 철학을 이해하는 한편 불교 사상을 통해서 량치차오와 차별화된 방식으로 칸트 철학을 개조하려 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먼저 한용운이 주목한 칸트 철학이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고에 어떤 자극을 줬는지 확인하겠다.      

“이에 비겨 주자의 명덕설 같은 것은 (...) 이 명덕이 기품의 구애와 인욕의 가림을 받는다 하며,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에 있어서 한계가 명료치 않았으니, 이것이 칸트에 비겨 미흡한 점이다.”     

위의 인용은 성리학에 비해 칸트가 “자유로운 진정한 자아와 부자유스러운 현상적 자아의 구분”을 명료하게 한 점에 주목한다. 칸트의 자연필연성에 속박된 현상적 자아와 자유로운 초월적 자아의 구분을 량치차오-한용운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지식인은 불교에서의 무명과 진아의 구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칸트 철학이 “존재 영역에 대한 이분법적 조망” 즉 “이 경계 설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천의 당위성”을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과 대응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선행 연구에서는 낭만적 사랑의 열정이 근대적 주체를 생산하는 계기인 데 비해서 한용운의 ‘인과율’은 서구적 근대의 수용과정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전통’에 비견되고 있었다. 이는 현상계와 본체계에서 무명과 진아가 분리된다는 한용운의 인식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본고는 칸트적인 인과율 개념과 한용운의 시 「인과율」이 만나는 지점을 제시하여 한용운이 대면한 근대의 이율배반을 드러내겠다. 먼저 인과율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에 따르면 인과 이론은 발생인과론과 계기인과론으로 나눌 수 있다. 발생 인과론에서는 원인은 결과를 발생하게 하는 능력으로 간주되며, 원인은 그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계기 인과론은 원인이 어떤 사건이나 상태의 앞에 오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 뒤에 그런 종류의 결과가 오리라고 기대하는 심리적 경향을 획득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원인이라고 단지 불려진다고 본다. 따라서 발생인과론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사건이나 상태들 사이의 관계는 그것 안에 내재해 있고, 원인과 결과는 서로 독립적이 아니며 결과는 원인없이 일어날 수 없는 데 비해 계기인과론은 인과관계를 그 관계를 맺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본다. 계기인과론의 관점에 따르면 원인과 결과의 결합이라는 사건은 원인과 결과라고 불리우는 사건을 아무리 분석해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비슷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관찰한 후 생기는 일종의 정신적인 습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한용운의 「인과율」에 대한 선행연구는 ‘인과율=불교=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이 ‘지나간 업보에 따른 결과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는 한 ‘발생 인과율’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하지만 흄과 함께 칸트 철학은 ‘계기 인과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제 칸트 철학이 계기 인과론에 근거한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이 개념이 순수이성의 이율배반에서 맡은 역할을 파악해 보자. 칸트는 변증론에서 순수한 이성이 네 개의 범주-양,질,관계,양상-에서 완전성의 이념에까지 사고를 계속해 감으로써 부딪치게 된 네가지 이율배반을 다룬다. 여기서 양, 질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수학적’이라 하고 관계, 양태 범주에 따른 이율배반을 역학적이라고 한다. 칸트는 수학적 이율배반이 형이상학적 우주론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그 대신 역학적 이율배반은 서로 이율배반이 되는 정립과 반정립이 각각 이종적인 세계에 대해서 타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정립과 반정립은 일정한 관점에서는 다 같이 참일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에 정립은 사물 자체의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고, 반정립은 현상의 세계, 곧 감성의 세계에 대해 타당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의 관계 범주에서 확인된다.

관계 범주에서 이성은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하고 그때 이성은 이율배반에 부딪친다. 이를 정립과 반정립으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정립: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과성은, 그로부터 세계의 현상들이 모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에 의한 인과성 또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반정립:자유는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법칙들에 따라서 일어난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란 자연 경험 중에는 있을 수 없는, 기껏해야 공허한 사고의 산물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세계가 오로지 감성의 세계인 자연뿐이라면, 그 안에 ‘자유’가 있을 자리는 없다. 그러나 생각 가능한 세계, 곧 예지의 세계에서라면 자유의 원인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유의 개념을 구출하여 도덕의 세계가 가능한 ‘희망의 세계’를 열고자 했다.

이처럼 인과율은 칸트의 이율배반 개념에서 형이상학이 불가능한 근대를 ‘희망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이는 한용운이 주목한 무명과 진아의 구분과 연결된다. 한용운이 ‘근대 사상으로서 불교’의 인과율에 대한 한용운의 사유는 시 「인과율」에서 그 단초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과율」은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사랑은 무명(에 빠진 중생)이 휘둘리는 감정을 대표한다. 칸트는 사랑과 같은 감정을 경향성(Neigung:기울어지는 성질,성향, 애착) 개념으로 다루었다. 칸트에 따르면 ‘감정’은 시간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무명의 사랑은 감정인 이상 “옛 맹세”를 통해 영원성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이성은 관계 범주에서 ‘현상의 발생의 절대적 완벽성’을 생각할 때 이율배반에 빠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아는 예지의 세계에서 자유의 원인성에 의해 영원불멸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논문은 한용운의 인과율을 “동아시아 문화 일반이 지닌 전통”의 원리(이선이), 혹은 전통적인 불교 교리 이해(남정희)로 해명하기보다는 량치차오-칸트를 경유한 ‘사상으로서의 불교’로 보려 한다. 한용운의 시에서 표상되는 사랑의 갈등은 무명과 진아로 분할된 근대인이 대면해야 하는 역학적 이율배반을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용운의 시 「인과율」은 역학적 이율배반과 관련한 개념적 사고를 ‘자유로운 유희 속에 있는 상상력과 지성간의 조화로운 관계’로 표현한 것이었다. 현상계에서 “당신은 옛맹세를 깨치고 가”고 있다. 현상계의 인간인 ‘무명’은 자유의 원인성이 아니라 경향성에 휘둘리는 감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지계에서 옛맹세는 자유의 원인성에 따라 지켜질 수 있다. 따라서 시적 자아는 인간 이성의 역학적 이율배반을 대면하면서 무명을 따르지 않고 진아를 따르는 선택을 “당신의 최후의 접촉을 받은 나의 입술을 다른 남자의 입술에 대일 수는 없습니다”라는 싯구와 같이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절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인과율」의 시적 원리는  『님의 침묵』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의 실마리인 ‘자유’의 비밀을 함축한다. 가령 「군말」에서 제시되고 있는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라는 테제는 자유 연애에 대한 단순한 반명제가 아니라 자유 연애의 이율배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무명의 사랑에 대한 초월, 반성이 가능하다면 인간의 이성은 자유의 원인성이 있는 예지계를 열어제칠 수 있다는 시적 사유가 1920년대의 한용운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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