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쇠책방 Feb 09. 2024

나의 사막과 오아시스

오아시스를 꿈꾼다면 사막을 걸을 수 있어야지.


오아시스, 사진의 저 멀리에 호수 같은 물이 보인다. 분명히 보이는데 그것이 신기루란다. 금세라도 닿을 것 같기에 더욱 목마르게 한다. 좋은 책 많이 읽어서 뭐가 좋은지는 조금 알겠는데 그게 현실에서 적용이 안되면 되려 힘들다. 어설프게 알아서 병이 나는 것처럼 마음은 힘들고 지치곤 한다. 분명히 눈앞에 있고 바다 같은 호수가 보이는데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이 있다.


 안 되는 것에 목을 매는 것보다 저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겠지...  나아갈 다른 방향을 바람과 달과 별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찾아야겠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랑하고 있어서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가봐도 좋을 것이다.  '끝이 끝나지 않더라도 좋아.' 저것이 신기루라 해도 가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두려움 에 더 강할 수 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하는 반문을  때면 왜 써야 하나? 싶어서 문을 닫고 도로 나온다. 무언가 썼다면 뭔가 일관성도 있고 맥락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쓰는 것에 주춤했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내 경험 안에서마저도 써놓은 날들이 적다. 이제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글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단순하고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단순한데 그 안에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수 천 가지 마음이 들어있다. 오늘도 잠에서 깨어 일어나 무엇을 했고 무엇을 듣고 보며 느꼈는지, 어떤 생각이 스쳤는지를 기록하면 분명 변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평범한 시간들이 왜 소중한지를 알았다. 그날들의 기록 덕분에 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 쓰지 않았다면 기억에서도 추억에서도 꺼내 쓰지 못했을 이다. 사진, 글, 영상, 그림 무엇이든 자기의 기록이 있다면 보물상자를 발견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지루한 반복이었던 일들마저도 쓰고 나면 나와 타인의 관찰지가 된다. 그것이 자연스러워질수록 미세하게 달라지는 나와 주변까지 만나게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선물 같은 것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다. 자기의 보물상자가 이미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읽은 것의 얼마간은 토해내야 순환이 될 것 같았다. 받아들이는 대로 가지고만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똥이 되고 그나마도 잘 비워내지 못하면 병이 생길 수도 있다. 묵혔더라도 잘 익었다 싶어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은 잘 받아 적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아주 없는 것보다는 좋다. 다만 억지로는 하지 않는다.


 아침에 써둔 글을 저녁에 다시 읽어보며 무언가는 추가하고 수정해 보는 정도의 삶, 그런 삶이 되어보자. 근사하고 행복한 삶이다. 책을 읽으며 기대하고 바랐던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인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 써둔 몇 줄의 글귀가 감동스러워 코 끝이 찡한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기억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서툰 손글씨가 더 좋은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라서이다. 있는 그대로 쓰자. 지금 이 시간을 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기록이 되어줄 것이다.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하는 부탁이 있다면 그저 써서 남겨 달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 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라


-헤르만 헤세





헤세는 무의미한 다독과 뜻 없는 글쓰기를 걱정한. 시간 때우기나 기분전환을 위한 교양의 독서가 아니라 감동받고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조금이라도 확장해 주는 독서여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에 들이는 시간도 일만큼이나 신중하고 체계 있게 이득을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내가 가장 뜨거워지는 시간에 대해 헤세는 알고 있다. 독서를 통해 불꽃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서를 통해 나를 재발견해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책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단단히 부여잡기 위한 독서여야 한다고 헤세가 말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중에서



어떤 책을 읽노라면 사소한 뉘앙스나 지극히 내밀한 암시, 아주 자잘한 느낌까지 내가 속속들이 다 알아듣고 있다는 특별한 행복감을 줄 때가 있다. 나만의 착각이라 해도 그때의 교감은 잊을 수 없다.


내 안에만 있던 것을 언어로 말해준 시인이 있다. 잊고 있다가도 어디선가 익숙한 울림이 느껴져 돌아보면 류시화 님이 전해주는 시와 글,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 류시화


누군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할 말이 없거나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말하는 것의 의미를 잃었을 수도 있고 

속엣말이 

사랑,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에서

머뭇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안에서 홀로 견디는 법과

자신 안에서 사는 법 터득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겨울이 그 가슴을 영원한 거처로 삼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 봄이 또다시 

색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노래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새들이 그 마음속 음표를 다 물고 갔다고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외로움의 물기에 젖어

악보가 바랜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동행 없이 혼자 걷는다고 해서

외톨이의 길을 좋아한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길이 축복받았다고 느낄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었으나

가슴 안에 아직 피지 않은 꽃들만이

그의 그림자와 동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음 봄을 기다리며


류시화



‘나는 나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럼에도 삶을 견디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헤르만 헤세


"나는 내 꿈을 꾸며 살아요" - 헤르만 헤세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는 단 한 걸음, 단 한 단계입니다. 바로 고독해지는 것, 그대 자신이 되는 것,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 이것이 바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이죠.


자신의 길을 가는 모든 이는 영웅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며 사는 자는 모두 영웅이지요. 설사 그 과정에서 어리석은 일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일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희생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상을 그저 말로만 떠들어대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로 사는 법> 중에서


헤르만 헤세, 류시화, 알베르 카뮈

내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고독한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 역시 고독을 즐기기 때문이 아닐까.  


by 열쇠책방



이전 12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