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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Feb 19. 2024

왜 쓰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뭘 쓰고 싶은 거야?

독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내면의
은밀한 것들을 드러낸다.



나는 왜 뭔가를 쓰려고 하는가?

왜 사람들은 글을 쓰는가?

몇 천년을 써왔고  21세기에도 글쓰기는 여전히 가장 귀한 인간의 행위로 존재한다.


오직 인간만은 왜 글을 쓰는가?  인간은 내 몸을 스스로 지탱하며 서고 걷는 것 다음으로 사람의 관계를  알아가는 동시에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능력을 배운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기시대가 지나 철기시대가 도래했고 이어 문학의 시대가 찾아왔다. 아주 오래전엔 신분에 따라 교육의 기회도 제한되었다. 전문직일수록 글을 접하는 기회가 많지만 오늘날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교육환경이 부족하더라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은 인류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하는 일이 되었다.


왜 사람들은 보상이 없는 글쓰기를 그것도 자발적으로 해오고 있는가? 그것은 자기를 살아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일수록 사명과 목숨을 다해 해온 것이 글쓰기라는 사실도 우리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글과 글로 전해진 이야기들은 사람을 살리는 비문이 되고, 치유가 되고, 의지와 희망이 된다. 힘들다고 해서 모두 글로 써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키지 않아도 쓴다.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은 거의 대부분 그런 부류였다. 지식을 전하려 애쓰기보다는 지식마저 관통한 정신을 보여주려 했다. 



몸은 비록 감옥에 있고, 인격적으로 바닥의 대우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글만은 쓸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글쓰기는 있었고, 암에 걸려 마지막 날을 생각하면서도 글을 써간다. 패배하지 않음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말들은 이런 것이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이 가진 마지막 자유다.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쓸 수 있는 것은 글이다.

살아 있다면 써야 하는 것도 글이다.


글쓰기는 개인적 자유를 얻고자 하는 소망이다. 사춘기의 불안으로부터,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 거라는 걱정으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하는 강력한 소망이다.


어딘가에 갇혀 있다면 글쓰기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이다. 독립이 그렇게 왔고 역사가 그렇게 쓰였다. 자기 과거의 어두운 지하실을 열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아닌 글쓰기이다.


얽힌 감정을 언어화하는 논리적인 과정을 통과한 글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높은 차원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쓰면 달라진다. 나 역시 그것을 과정으로 느꼈고 믿는다.


써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써본 사람들의 공명이 써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 상처받은 자의 치유력은 그렇게 시작된다.


여성들의 수명이 남성보다 긴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말하거나 써보는 경험이 더 많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 노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드리며 내가 효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들어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엄마 화병 나서 큰일 나셨을 테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서 쓴다.

하루하루가 우리 인생의 중요한 시간이다.

한 인간으로서 계속 나를 살기 위해 쓴다.

일기, 독서리뷰, 잡글, 필사 감상, 책 귀퉁이 메모



기왕이면 다시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써두고 싶다. 도서관에서 열린 재능기부 글쓰기 강연에 용기 내어 참석했다. 평소 같으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저울질만 하다가 '그래 말자' 하고 하지 않았을 일인데 이번엔 직진했다.


[당신이 잡은 다섯 줄]

모든 글의 시작은 비슷합니다.

도입 다섯 줄만 이해한다면

어떤 글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간이었다. 배움의 기회도 좋았지만 글을 쓰고 싶어 하시는 분들과의 만남이라 더 설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멘토가 되어주신 정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글쓰기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내면적으로는 선생님이 가진 글 쓰는 이로써 의 기품과 고상함이 내가 가진 결핍의 베이스와 많이 달라서 기가 죽기도 했다. 괜찮다. 내겐 결핍이 나의 순수 재료니까.



첫 문장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더욱이 내가 쓴 글의 첫 문장이라니, 생소해서 좋은 긴장감이 흘렀다.

첫 문장이 담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간결하고, 궁금증이 일어나고, 이어질 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야 했다. 막상 그렇게 쓰자니 어려웠다. 어려움과 마주한 경험은 내게 아주 중요했다.


강의 시간 말미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써두었던 글 하나를 모두의 앞에서 읽었다.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지만 나는 재고 따질 이유가 없었다. 처음 한글을 깨치는 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차마 내가 읽지는 못하고 옆에 분께 읽어주시길 부탁했다. 글을 읽어 주시는 동안에 나는 저절로 손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었고,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보니 내 글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선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는 부분시 많아서 읽어주시는 분이 힘들어하셨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기란 더 힘들었다. 부끄러워서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너무 아프다. 아픈데 개운하다.

내가 쓴 글을 소리로 만나니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글은 대체로 정신이 없다.


도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거야? 너의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야? 누구와 얘길 나누고 싶었던 거야?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굳은 어깨를 마사지한 기분이다. 너무 아픈데 시원하다. 잘못을 알고 나니 창피하지만 너무 개운하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사실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나의 결핍을 치유하고 보상하는 작업이라는 것에서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발표 울렁증이 있어서 말로는 1분만 얘기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말은 빨라지는데 맥락은 사라지는 것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더더욱 빨개진다.  말로 하지 못하는 것을 글로라도 써서 말하고 싶었다. 막상 글로 전달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을까. 잘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 방법인 글로 남기고 싶어서 읽고 쓴다.


한 번의 피드백으로 만신창이가 된 토막글은  완전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 다른 글 하나를 더듬어 보았다. 이상한 습관들이 많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의 지난 글을 첨삭해 본다. 모든 것이 뚝뚝 끊어져 있고 뭔가 쓰다가 만 느낌으로 알맹이가 없이 겉돌다 끝이 났다.  이런 얘기를 꺼내놓고서 그 이야기는 나라져버리고 어느새 딴 이야기를 하고 있다. 퍼즐 조각도 아니고 숭숭 구멍이 나있는 글을 읽자니 나부터 피곤해졌다. 분명 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썼을 테지만 앞뒤가 맞지 않거나 설명 없이 쓰인 글들이 모호하기만 하다. 글을 쓴 내가 읽기에도 혼란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게 쓰인 글들을 뒤늦게나마 수정해 보지만 애초에 그 글을 왜 썼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나조차 알 수 없는 글로 바뀌고 있었다.



아~ 글이란 또 저만치 멀어져 가는구나. 쓰다 보면 코앞에 있어서 잡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멀다. 덜컥~ 쓴다는 게 무서워지기도 하는데 그보다 강했던 내 마음의 소리는 '더 써보자'라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잘 읽고 싶고 잘 쓰고 싶다.



'첫 생각'을 놓치지 말라. '첫 생각'과 만나서 거기서부터 글을 퍼낼 때 당신은 싸움에 나선 전사가 된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질려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생각의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 손을 계속 움직여라. 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 편집하려 들지 말라. 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가라.


# 철자법이나 구두점 등 문법에 얽매이지 마라. 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 생각하려 들지 말라. 논리적 사고를 버려라.


#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 두려움이나 벌거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 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뼛속가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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