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쇠책방 Feb 12. 2024

평범함에서 나오는 위안

제목을 검색하면 내가 쓴 도서 리뷰도 어느 틈에 끼어 상위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기분이 아주 묘했다. 나의 닉네임을 검색하면 어쨌거나 내가 나온다니 기분은 좋은데! 나무위키도 아니고 내 이름을 검색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유일한 나였다.


책을 검색하다가 내 닉네임을 알아보고서 캡처해 반갑게 인사 나눠주시는 분들도 왕왕 있다.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네가 쓴 리뷰를 봤어. 낯선 여행길에 네가 서있어서 반가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생각해 본다. 책이 내게 그랬듯이 어떤 형태로든 '발행된 글'이란 거리도 시간도 상관없이 이렇게 사람들과 만날 수 있구나. 오늘 쓴 어느 책의 리뷰가 10년 후에도 살아 있고, 언제든 누군가와 다시 연결되게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5년 전의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통해 과거의 나를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만날 수 있다. 5년 전의 내가 나를 써두었기 때문이다.


뇌과학에서 말하길 어제의 기억 90% 오늘 잊는단다. 실제로 나는 더 많이 잊는 사람이라서 기록이라는 행위는 특별히 더 생존수단에 가깝다.


리뷰에서 책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 책 덕분에 발견한 나도 함께 남겨두었다. 이 책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분에게도 분명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만은 항상 말하고 싶었다.

 



배우들이 처음 무대에 오른 날을 잊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들었다. 꿈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지만 꿈의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름을 알리는 것은 포기 직전에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블로그라는 매개체로 시작한 온라인 노출은 내게 첫 연극무대나 다름없었다.  연기나 공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연습한 대로 해내고 뿌듯하게 내려오던 유치원 재롱잔치 같았던 시간이다. 수련회나 동아리 행사 때 멋모르고 진심을 다했던 5분을 위한 열정의 시간이다. 무대 위에서  내 숨소리마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순간들이다. 그렇게 블로그에서 독서리뷰를 해왔다. 같은 책을 읽으신 분들을 찾아다니기도 다. 서로의 배경을 말하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얼마간의 고독을 조금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써보는 일.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나 자신에게 매우 필요했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른아이이던 내가 많이 자랐다. 책을 읽고 뭐라도 써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나에 대해서 많은 발견을 했. 나를 재해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단점이나 결핍은 나만의 특성이 되었다. 과정을 통해 변화를 겪는다. 여전히 나의 단점으로 남아 있는 부분도 많지만 나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더욱 끌어안게 되었다. 나는 나를 수용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가족관계, 그리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라는 정체성만 있던 내게 새로운 정체성들이 생겨난 시간이다. 5년의 시간 동안 어딘가에 나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나는 그 흔적들을 통해 처음으로 나를 본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비친 내가 아니라 온전한 나였다. 게다가 의지를 가지고 지우지 않는다면 사라지지도 않는다. 뭔가를 만들면 그것이 세상에 남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서야 내 도움이 되는 흔적들이란 것도 알았다. 나를 응원해 주는 지원군으로써의 내가 거기 있었다.


그즈음에 기왕이면 좋은 생산자가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쓰다 보니 이달의 블로그가 되어 있었고 인플루언서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는 많은 작가님들과 글이라는 매개체로 만나게도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묘한 설렘을 다. 내가 만들어온 이름이지만 동시에 읽어주신 분들 덕분이다. 



아직 망하지 않은 것, 포기하지 않은 것 말고는 내게 특별한 성과는 없다. 그럼에도 한 번도 주인공이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느새 내 인생에서만큼은 주인공이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 주체성이었다.


 책과 글이라는 매개체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것은 항상 신기하고 기쁜 일이다. 나는 그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취미나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전념을 다하는 일. 일만큼 열심히 하고 싶은 일. 그거 아니고는 안 되는 일. 나는 글로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목적 없고 순수한 열정이다. 무엇보다 나를 알고자 하는 열정. 그 열정이 세상과 나를 연결해 주었고 내 안에 숨어 있던 본래의 나를 인식하도록 이끌고 있다. 


분기 정산 같은 마음으로 지난 5년의 시간인 나의 독서 전반전을 돌아본다. 왜 정산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내가 다시 전환기를 맞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더 깊은 몰입을 필요로 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몽돌 해변, 수많은 돌 중의 하나. 몽돌.


책을 읽으며, 내가 좀 다듬어진 몽돌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 주변의 몽돌들과 잘 어우러지는 크기와 모양과 색을 가졌다고 느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기억하지만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내가 주변의 몽돌들과 비슷한 평범한 몽돌이라는 것이 좋다가 유독 자기만의 독특한 색을 가진 돌을 만나면 감탄다.  난 왜 그와 다른가? 하고 나를 돌아보며 특별할 데 없는 나를 라하게 생각하던 때도 많았다.  동화 속의 뻔한 스토리 같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또 어느새 내의 개성을 찾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자.




자기 개성의 비밀은 오직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답니다. 당신은 결코 일개 군중 속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거예요. 당신이 지금 개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당신이 평균 이상으로 개성적인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 헤르만 헤세



세상과 이질감을 느끼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범해지고 싶었던 나인데 이상하지. 비슷하고 싶어서 안달했으면서 이제 또 다르고 싶은 마음 생긴다. 어쨌거나 나는 평범함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고 힘을 받았다. 상엔 절망, 고난, 가난, 아픔이 너무나 평범해서 슬프기도 했지만 그 평범함에서 태어난 비범함과 탁월함도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서 희망을 본다.



이쯤에서 꼭 되새기고 싶은 책이 있다.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을지 모르겠다'라는 문장 하나가  위안이 되었던 이다.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P 51, 52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을지 모르겠다.

당신도 나처럼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기게끔 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삶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하고 가치 있는 도전 중의 하나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모습을 가지게 한 씨앗이 언제, 어떻게 뿌려졌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씨앗을 바꿔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반박할 수 없는 법칙이 하나 있다. 우리는 각각 자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나 불행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잊기 싫은 것들을 모아가며 좋은 것들로 채워가며 작은 기적을 만난다. 일상을 수집하며 앞날을 그린다. 쌓여 있는 책이 길을 말해주었고, 두툼해진 일기와 필사가 나를 말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본 아침처럼 그 안에 나의 빛이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이
스스로 내린 선택을 통해
나 자신이 불러온 결과임을 확실히 알기에, 이 모든 것이 더 달콤할 뿐이다.​
- by 예순 살의 오프라 윈프리



평범이 비범함과 탁월함이 되는 많은 이야기를 만나온 것 같다. 문학 속에서도 SNS에서도 그런 인물들이 나를 자극한다.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고 나는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다음의 5년을 다시 정산해 보는 그날에 오늘의 나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과거의 나에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미래의 나도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할 수 있게끔 살고 싶다. 



이전 13화 나의 사막과 오아시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