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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Feb 23. 2024

낭만적 은둔의 역사

나를 움직인 책, 은둔에 대해여

가끔 나를 굉장히 바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한다. 책 자체의 내용이 풍성할뿐더러 '책 속의 책'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흥미로워서 함께 알아가고 싶은 키워드를 가득 품고 있다.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책도 찾아야 하고 영화도 찾아서 중간중간 봐가며 많은 시간을 이어간다. 나를 움직인 책으로 시간을 쓴 것이 아깝지 않았고 나 개인에게도 유의미했던 책 한 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든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 - 데이비드 빈센트


인간은 은둔 욕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건강한 고독은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사색하거나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은둔을 택하곤 했다. 18세기에는 혼자 있기의 매력이 점점 뚜렷이 나타났다.



은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 18세기 즈음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주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처럼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선택이 달라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느껴졌다.


나는 고독하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 나를 오랜 시간 동안 긍정적으로는 해석하지 못했었다. 은둔욕구를 내성적인 성격의 방어기제쯤으로 치부했었다면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로 이제는 달라졌다. 은둔, 혼자 있는 시간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으로 나아가는 시간이라고 의미를 달리해서 생각할 있게 되었다. 은둔, '건강한 고독'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다.


은둔은 외톨이를 칭하는 말이 아니다. 퇴근 후 저녁시간 가족과의 식사와 이야기기들이 오간 다음 10시 이후 책방에 들어와 그저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휴식과 충전이 되고 있다.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조용한 이 시간을 좋아한다. 누군가에게는 산책으로 또 여행과 여가활동, 취미로 이어지며 전문적인 활동으로 까지 발전한다. 누군가의 은둔은 나보다 훨씬 깊고 진하리라 생각하겠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상황들은 굉장히 많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내 친구나 지인이 그렇고, 숨 돌릴 틈이 없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청년들도 그렇다. 몸이 아픈 가족이라도 있다면 혼자 있고자 하는 욕구는 죄의식이 되어 버린다. 혼자 있으면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갈증이 오래 지속되고 채워지지 않으면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단칸방에서 자라며 내 꿈과 희망을 마음껏 향유할 수 없었던 유년시절의 나는 좁은 다락방으로 기어 올라갔다. 좁고, 춥거나 더운 공간이지만 그곳에 정리해서 이불을 깔고 불을 켜고 밥상 하나 가져다 두고 책상을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어린 나는 분명 행복해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

그때의 나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은둔, 고독이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그토록 찾는 '나다움'은 혼자 있는 시간에 발견되는 ''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고독을 느끼는 것이 에너지로 바뀌는 사람들이다. 철학자, 예술가, 음악인, 작가, 시인, 블로거, 유튜버 내가 아는 한 모든 분야의 창작자들은 모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했고 각자의 시간들은 연결되고 하모니를 이룬다. 그 시간들이 우주에 흔적을 남기게 다.


 은둔을 선택하면 그 시간 속에서
새 목표를 찾고 새로운 만남을 위해
영혼을 충전할 수 있다


집단에서 벗어나는 것은 꾸준히 매력적이다. 꼭 필요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의 모임이어도 우리에게 숙제거리가 되곤 한다. 어떤 면에서 고독은 단순히 휴식의 문제다. 관계와 삶의 변화를 생각해 볼 기회인 것이다.

< 낭만적 은둔의 역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은둔이라는 역사 자체를 모두 보여준다. 개인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재밌었고, 이 책을 보고 나서는 18세기, 19세기의 깊은 배경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고전을 읽는 것이 더더욱 흥미로워지고 잘 들려서 매우 기뻤다. 고전 읽기를 하시는 분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 이후로 소설의 배경 역사나 시대적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상처 입은 영혼은 경쟁이 주는 충격, 그릇된 친구관계, 악의적인 적대감의 공격을 피해
혼자 쉴 수 있는 피난처를 찾는다.



은둔이라는 키워드가 이렇게 매력적이고 인문학적인지 처음 알았다. 더 알아가며 철학, 문학을 만나고 싶었다. 은둔은 그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동굴 속에 벽화를 남기던 순간부터 동굴 속에 은둔하던 사람들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남긴 흔적들은 역사가 되었다.


은둔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며 나오는 결과들은 매우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거나 순수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어느 분야이건 창작자라는 사람들은 적당히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공통점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북적대는 중산층 가정이 있다. 많은 가족들과 사촌들까지 한 공간에 있다 보면 모든 것이 엉키고 있어서 나다움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이때 단지 문을 열고 산책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정신적 휴식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된다.

그 시대 최고의 야외 여가생활이었던 산책이 가진 역사가 인간의 노동과 경제활동까지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 교통이 발달하기 전 걸어서 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던 시대에 걷기는 누군가에게 노동의 연장이었고 누군가에겐 여가활동이었다. 세계여행이나 에베레스트, 몽블랑 등의 고차원 하이킹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고급 부츠와, 장비가 있어야 했고 이것은 자연스레 부자들의 전유물이자 자랑거리가 되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만났던 월든, 소로의 일기, 몽테뉴, 고독한 산책자 루소가 새롭게 들리고 로빈슨 크루소, 올리버 트위스트, 자기만의 방, 프랑켄슈타인이 읽고 싶었다.


심지어 넷플릭스 영화 빨강머리 앤에서 애이번리의 품평회가 열리던 장면들까지 묘하게 이어서 볼 수 있었다. 큰 채소 기르기, 특이한 농작물, 바느질, 수예품, 베이커리 등 자기의 노하우를 가진 결과물들은 각자의 은둔의 시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연결해 본다. 그리고 곧 몰입이나 전념이라는 개념이 뒤를 따른다. 그 외에도 연결점들이 너무 많아서 많은 이야기들이 새롭게  연결되어 다가온다.


누군가는 경험하지 못한 각종 안내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책이 널리 보급되던 시대. 데이터가 방대해진다. 사람들이 각자의 콘텐츠를 일구는 오늘날의 변화와 이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는 고립시간에 있다 하더라도 외롭거나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인터넷, 모바일 연결을 18세기 사람들이 만난다면 뭐라고 할까? 미래를 상상하는 것보다 과거의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호기심이 나를 더 설레게 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눈부신 범위의 문학과 자료를 아우르며 변화하는 혼자의 역사를 세세히 따라간다.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갖는 일 또는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된 시간을 즐겁게 마주하는 법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관심사이다. 


18세기에 독서, 우표 수집, 자수, 애완동물의 유행부터 단독 세계 일주라는 극한의 은둔까지 각종 여가활동이 탄생하고 취미로 자라는 과정이 펼쳐진다. 대표적으로 ‘걷기’가 그 시작이 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님, 전 비참한 혼자가 아닌가요?”라고 슬프도록 외친 괴물이 새봄의 자연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듯이, 자연 속에서 산책하기는 여전히 낭만적 은둔의 핵심을 이룬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에겐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가 전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여 홀로인 시간을 건강하게 보낼 용기를 보탠다. 역사, 사회경제, 심리, 종교, 문화를 종횡무진하는 모험을 함께하며 풍성한 교양과 귀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다.


어떻게 행복한 혼자가 될 것인가?

이 책을 관통하듯 함께하는 책이 있다. 요한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를 통해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혼자 있는 이유에 집중해서 볼 수 있다. 치어만은 '혼자 vs 집단 ' 중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둔과 사회생활의 균형을 강조했고 옳은 말이었다.


18세기 도심의 소란하고 치열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평온과 고요를 찾아다녔다. 고독속에서 자기 구상을 소화하고 성숙시킬 장소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에게 은둔이란 무엇일까. 효율적인 삶을 위해 획일화 되고 경쟁이 과열된 삶의 루틴에서 워라벨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자기회복이 필요하다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SNS 중독사회라고 하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만나지는 않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을 하는 시대. N잡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혼자의 시간'은 몰입과 전념을 통해 탁월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N잡러로써 더 바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많아졌다. '연결된 상태의 혼자'를 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 축복의 시대이길 바라본다.

by 열쇠책방, 즐거운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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