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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Feb 26. 2024

나 나름의 어른이 되는 시간

그냥 빨리 어른이 되려 했다.

내가 앞으로 가게 되는 길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냥 어른이 려 했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자유로운 나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어릴 날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아주 모호하고 막연했다.  나이를 먹어보니 그 자유라는 것이 공간의 자유, 시간의 자유, 경제적 자유, 선택의 자유, 관계의 자유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던 말은 모두 자유를 향하고 있다.



누구도 모르는 것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은 외롭고 두렵다. 그 감정을 부모님과는 나누어보지 못했다.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깊이 해보지 못했다.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그런 대화를 이어갈 상대가 있길 바라면서도 나 역시 누구에게도 그런 상대가 되지 못했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와 소년 마놀린을 보며 조금 슬펐다. 내게도 이런 관계의 누군가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고 그 후에 '아~  내가 먼저 마놀린이 되었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다시 읽을수록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관찰하고, 배려하고, 믿고, 의지하며 돌보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소년 마놀린이 커 보였다. 소년은 지금의 나보다도 성숙하고 어른스러웠다.



우리가 원하는 답은 이전 세대에겐 없다고 하지만 이전 세대가 문제가 아니라 답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 '부모님처럼은 살기 싫어' 하는 마음만 커졌다.  부모님이 처한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막연히 그 방식들을 거부했다. 좀 느리고, 더디고, 수고스러울 뿐이었는데 보고 배우려 하지 않은 채 거부만 하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자라지 못했다. 세상이 내게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를 돌아보면 저울이 떠오른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사람을 향해 계속 저울질하며 늘 뭔가를 부러워했던 모습이 많았다. 내가 가진 거 없이 부족해서, 잘나지 못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다 가진 완벽함이란 애초에 없고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한 차이만이 있었다. 나는 차이에 대해 민감했던 것이다. 그 차이를 무엇이 만드느냐가 그토록 궁금했던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이 왜 모두 똑같이 살지는 않는지에 대한 답이 차이와 반복있는 것 같다. 각자가 가진 현실 스토리에 대한 해석과 그 안에서 의미를 두고 반복해 나가는 일들에 대한 주체적인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그게 바로 내가 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부모님이 내게 주신 기질이란 것을 생각해 본다.  재원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성실과 검소함으로 키워주신 덕분모나지 않게 자란 내 성품에 대해서도 감사를 느낀다. 알게 모르게 나는 부모님의 어떤 면을 많이 닮아 있고 내 삶에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닮지 않으려 반항하던 마음이 부모님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고서야 점점 어른이 되어갈 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이 되어가는 시간, 바로 어른이 되는 간은 장인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일을 알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장인의 고집과 손길에서 느낀다. 어른은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향해 걷는 인생 전체의 시간을 뜻했다. 지나간 유년시절도 다시 해석하고 오늘의 나와 연결할 수 있어야 어른으로 잘 성장해 간다는 걸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인생은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선인들에게 배울 수 있던 것이 바로  장인 정신이다. 세상 모든 지식을  AI에게서 배운다 해도 장인정신만은 선인들에게서 배운다. 자기의 삶을 어떻게 달구고 내려치며 다듬어 왔는지가 중요하다.



 장자의 지혜를 공부해서 장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힘이 되었다. 내가 그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별바라기를 해서 무엇하나 했던 마음이 그를 본받아 내가 되고자 함으로 바뀌고 나니 모든 것이 에너지로 바뀌어갔다. 막연한 동경이 존경과 배움이 되어간다.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꽃이 아니고, 바위도 아니고, 강도 아니지만 모두일 수도 있다. 내가 말을 거는 만큼 그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건다.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관계가 없어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으로부터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선인들 뿐 아니라 딸에게서도 배우고 지나가는 어린아이에게서도 배운다.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된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원하는 답은 늘 나 자신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 스무 살과 두 번째 스무 살의 나이가 가진 고민은 다르지 않다. 어느 때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할 나이이다. 혼자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과 같이하는 힘이 필요한 시간이다. '혼자만의 시간'과 '같이의 시간'의 조화 '따로 또 같이'를 잘해야 하는 시간이다. 불규칙하고 불안정하다는 것. 그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연해지고 싶다는 뜻임을 알아 간다.



<빨강 머리 앤>으로도 인생을 알기에 충분했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한 권만 읽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 수 있다. 대신 한 권의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나의 경험도 필요하다. 우리에겐 아직 그런 충분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많은 책이 필요하다. 체화된 경험이 충분하다면 책을 읽지 않아도 혹은 한 권의 책만으로도 인생이 바뀔만한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 충분한 시간을 견뎌 나아갔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책과 나의 평범한 경험이 적당히 조화로워지는 시간이 바로 마흔이라는 나이 언저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책들을 주고 있을까?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냐고 사람들이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야 할 것 같다. 겉으로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은 압니다.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요. 다만 질문이 끝나지 않을 뿐입니. 계속 어른이 되어가기를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어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도 될 수 있으니까요.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책의 지식이 아니라 그 균열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자신이었다.  새로운 균열과 빛을 계속 만나고 싶어서 나에게 계속 좋은 책을 준다. 같은 책이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과정 자체가 품은 새로운 균열과  때문이다. 이 빛을 잘 모아두고 기록한다면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일상과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 속에 이 균열과 빛이 가득하다.


그대의 빛을 잊지 세요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그 안에서 빛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별을 기억하세요.

자기의 별은 바로 자기 머리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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