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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Feb 05. 2024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당신의 이야기는요?


15년차 자영업자 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수많은 이름들.


열쇠복사를 하고 도장에 타인의 이름을 새긴다. 일은 CNC 도장 기계가 하지만 주문과정을 조율하고 완성품을 다듬는 것은 내 일이다. 15년 동안 내가 만난 이름들만 해도 몇이던가. 많은 이름을 만나는 사람인 나를 특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닉네임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본명의 이름으로 만나는 사람들. 무엇보다 도장이 필요한 지금은 그들에게 중요한 시점이다. 진로나 직업, 사업적 서류, 도전을 포함하기도 하고 대출이나 투자도 연관이 있다. 얼마간의 '운'이 함께 하면 좋을 때이다. 새겨진 이름으로 기쁨을 담고 운을 담아갔으면 한다.


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

도장을 주문하시는 분의 관상과 이름이 조화로울 때도 있고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과 이름을 번갈아보게 되는 때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뭣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는 그의 이름대로 살고 있구나...

그는 그의 이름을 살지 못하고 있구나...

혼자 해보는 상상은 늘 제멋대로이고 자동재생이다. 


내 이름을 한자로 풀어 성명학으로 말하자면 나는 문예, 학업, 예술직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수학에 재주가 없는 것에 대한 방패로 삼기도 했던 내 이름이 가진 운이었다. 그것이 전혀 틀리진 않다는 것을 이제 경험상 알게 되는 중이다.



개명신청을 통해 새로 지은 이름의 인감도장을 준비하시는 분들도 많다. 가족 전체가 이름을 개명한 경우도 있었는데 대부분 작명원에서 돈을 비싸게 주고서 받은 이름이라고 하셨다. 남이 내 운명을 관찰해서 지어준 이름인데 비싸야 한다고? 내심 눈탱이 맞고 오셨네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개명을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간절하다는 것,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소망이 가득 깃들어 있다. 특별히 더 정성스럽게 권하고 다듬는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성명학의 기본 룰은 알고 있다. 사주가 강한데 이름까지 강한 것은 피하고, 약한 기는 돋우고, 과한 기는 누르는 형식으로 사주에 음양오행이 조화로울 수 있게 맞춘다. 가끔 '돈 주고 지은 이름이 왜 이래' 싶을 만큼 어색한 경우도 있다. 예쁘고 멋있는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다. 발음상의 어감이 새거나 약하거나 상관없이 사주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15년 도장 새기며 작명 공부나 사주, 명리학을 공부해 볼까 했던 적도 잠시 있었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다만 딸아이의 이름만큼은 우리가 직접 지을 수 있었다.



"엄마? 내 이름은 왜 정다은이야?"

며칠을 고심해서 아빠와 함께 지은 이름이라 말해주었다. "은혜 은 많을 다, 한자의 획수를 따져 초년, 중년, 말년까지 운을 따져 지은 이름이야."  "아니 뜻이 뭐냐고?" 아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에 알게 된 것처럼 이름이 가진 뜻이 궁금했던 것이다.   ( 그건 잘 모르겠는데 땀이 난다. 선대가 그랬듯이 한자 뜻만 신경 써서 지었던 것 같다)

"정이 많은 사람, 은혜를 많이 주고받으라는 뜻이야" 생각해 보니 정말 무난하고 평범하게 지은 이름이다. 아이의 학교엔 '정다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 아이는 흔한 자기 이름에 특변한 뜻이 있길 바랐다. 시절에 따라 평범하게 흔한 이름, 유명인의 이름 따라 틐별해진 이름을 비롯해서 이름은 유행을 가지기도 했다.




안면인식 장애 마냥 손님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지만 얼마간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눠주셨던 분들은 기억한다. 사실 얼굴이 아니라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 이야기를 떠올려 주시면 사람도 기억나는 편이다. 내가 먼저 질문을 하고 싶어지는 선함을 풍기는 분들이 많다. 나도 상대가  먼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면 좋겠는데 몸에 베인 익숙한 내 말투와 행동은 손님에게 어떻게 전해질지 잠시 걱정을 해본다. 아무튼 이미 15년을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거래가 아니라 만남이 되는 시간이면 좋겠다.


며칠 전에 다녀가신 신혼부부가 있다. 아내의 배가 만삭이었다. 경험으로 안다. '출산이 임박했구나' "예정일이 언제세요?" 물었더니 "내일이에요"하신다. "아! 내일요? 내 일처럼 놀라는 순간이다. 순산하시고 먼저 축하드려요" 그 설레는 기다림과 얼마간의 두려움을 알고 있기에 내 심장이 빨리 뛰었다. 더불어 아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질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내가 지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만큼 궁금했다.

아빠의 이름, 엄마의 이름 사이에서 자리할 아기 이름이라니, 자연의 소생을 보며 경이로워지는 것만큼이나 오묘했다.  


또 다른 분은 2년 전에 첫 째 도장을 만들어 가셨는데 다시 오셔서 둘째의 이름을 알려 주신다. 아빠, 엄마, 언니와 조화로운 이름이다. 내겐 이름이 시작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시작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온라인에서 알아가는 닉네임


하루 일과 중에는 어느새 사람들의 글을 고 댓글이나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SNS마찬가지이다. 생산된 저작물에 관심과 호응을 표호기심을 넘어 동경을 표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찾아가서 만나기도 한다. 내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내게 외부의 모든 자극은 나를 흔드는 바람이다. 그렇지만 그 바람이 싣고 오는 새로운 씨앗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만나려 한다. 여행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듯이 사람을 그렇게라도 만난다. 



하나의 작은 어려움이 있다.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긴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행위가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인가. 상대의 입장에서는 이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걱정과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 하는 순간적인 반응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니 말문이 막힌다.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제대로 읽지 못한 미안함이 있다. 글이 진중하고 좋을수록 더 답을 달기 힘들어서 읽고 나가고 다시 들어가 읽고, 그래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글이 좋아도 그냥 나올 때가 대부분이다. 유쾌한 글들이라면 언제나 유쾌하게 답 할 수 있지만, 자신의 힘든 마음을 공유해 주는 위대한 마음에는 답하기 힘들 때가 많다. 뻔한  위로의 글을 남기는 것에 알 수 없는  미안한 감정이 든다.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여줄 방법이나 눈빛으로 말하는 방법이 이 온라인에서는 가능하지 않아서 간혹 힘들다. 



자신을 포장해서 자랑하기도 바쁜 세상이라서 아픈 경험과 힘든 이야기가 담긴 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에게 더욱 마음이 열린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낸 글 안에는 내 모습도 있어서 함께 하는 동안 치유의 힘을 느낀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뒤로 숨기 바쁜 소심한 성격이지만 쓸수록 대범해지고, 쓸수록 솔직해질 수 있다. 이 짧은 글쓰기가 나를 치유했음을 알기에 오로지 써본다. 

희로애락에 따라, 생로병사에 따라, 희망과 절망에 따라,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따라, 환경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얼마나 많은 내가 있는가. 닉네임 덕분에 얼마간 더 솔직해질 수 있었고 나 자신에게 중요한 시간이었다. 내 마음은 수없이 흔들린다.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다가 내게 맞는 바람을 잘 타면 저 높은 창공으로도 가 별 가까이 닿을 수 있다.  하나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하면 다른 내 모습과는 동떨어지기 마련이라서 가끔 나를 속이는 듯한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우리는... 그냥 여러 나를 발견해 가는 것에 기쁨을 두면 좋지 않을까.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내 안의 여러 모습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각자의 모습을 잘 발휘하면 좋겠다. 여러 이름으로 모두 건강히 살았으면 좋겠다. 일상의 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도 이야기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모든 것이 좋아'로써는 '열쇠책방' 으로써는 언제나 행복하게 책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어떤 나를 꺼내 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으로는 차근차근 졸업장 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다른 이의 이름보다 낯선 내 이름과 조우해 본다. '그는 그의 이름대로 살고 있구나.'  내 이름을 잘 살고 싶어 진다.


멋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해 본다. 도전하는 남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뼉 친다. 평범함으로 비범해진 사람들을 응원한다. 자신의 구차한 이야기 안에 비범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 나아가는 이들을 응원한다. 오늘도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당신의 이야기는요?



by 열쇠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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