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가지고 있던 마음 보따리
특별한 것이 들은 줄 알았더니
평범하고 낡아서 사라진지 오래였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거기 그 보따리안에 무엇이 들었소.
용암덩어리 마냥 근처만 가도 데일 것 같아서
조심조심 밀어두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자리한 곳이 내 가슴
계속 안고 있기엔 뜨거워 내려놓았다가
어느 추운 날에야 다시 끌어안고 싶어져서
어둠 속을 더듬더듬.
보따리엔 이야기가 들었구나.
지겹도록 들었던 엄마의 이야기
1절, 2절, 3절 끝이 없던 도돌이표
아~ 이제야 그 가사말이 무엇인지 알겠네.
신세 한탄인가 하였더니
그것은 구애가였네.
by 열쇠책방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 되고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 즉 인간적인 것도 단순함도 거기에 다 새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곧 세계일 때보다 더 진실해지는 때가 과연 언제이겠는가? 나는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었다. 영원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또렷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에세이 [안과 겉]중에서...
그러나 나는 다만 빈곤하다고 해서 반드시 시기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심지어 그 뒤에, 중병에 걸려 잠시 동안 살아갈 힘을 잃고, 그로 인하여 내 속의 모든 것이 온통 변해 버렸을 때에도, 그 때문에 맛보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와 전에 없던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포감과 낙담은 경험했어도 한 번도 원망이란 것은 알지 못하고 지냈다. 그 병은 틀림없이 내가 이미 받고 있던 속박들에다가 또 다른 속박을, 그것도 가장 가혹한 구속을 덧보태 주었다. 그러나 그 병은 결국 저 마음의 자유를, 인간적인 이해관계들에 대한 저 홀가분한 거리 두기를 조장했고, 그것은 항상 내가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나는 빈민가에서 살던 어떤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그 동네, 그 집! 일층과 이층이 전부였고, 계단에는 불이 없어 어두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는 캄캄한 밤중에도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고 그 층계를 단숨에 뛰어 올라갈 수 있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의 몸속에 그 집이 배어들어 찍혀 있는 것이다. 그의 두 다리가 계단 하나하나의 정확한 높이를 제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층계 난간에 대한 끝내 극복하지 못한 본능적 공포감이 남아 있다. 바퀴벌레 때문이었다.
내 마음은 억제된 부르짖음과
반항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만일 누가 나에게
두 팔을 벌려 주었더라면
나는 그 품 속에 달려들어
어린애처럼 울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비탄을 느끼며, 그로 인하여 더 많이 사랑한다. 그렇다. 그것이 아마 행복인지도 모른다. 즉 우리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감정 말이다.
유일한 낙원은 바로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내 마음속에 깃든 감미로우 면서도 비인간적인 그 무언인가에다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나는 알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안과 겉> - 긍정과 부정 사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