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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Jan 26. 2024

변화가 두려운 나에게

나의 믿음은 내가 더 행복해질 거라는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 연금술사가 있었다. 산티아고의 두려움을 통해 나 자신의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크리스털 가게 주인, 자기의 꿈이 메카로 떠나는 성지순례이지만 가지 않는다. 처음엔 여건이 안 되어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중엔 여건이 되어도 가지 않는다. 물음표를 던진다. 왜 그랬을까? 안 가고 싶었다면 몰라도 정말 가고 싶다는 것을 알겠는데 왜 가지 않을까? 그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안정만으로도 충분하고 실수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는 메카로 가는 꿈을 의지하며 산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려고는 하지 않는다. 꿈을 이뤄버리고 나면 더 이상 꿈꿀 것이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자영업자인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 만족하는 크리스털 가게 주인에게서 나를 본다. 열심히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나의 원천적인 두려움은 나역시 엄마처럼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순리인데 말이다. 불쌍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더 잘 살아보고자 했던 나만의 몸부림이었다.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나아갈 수 없다. 나는 늘 불충분했다. 결핍에서 또 절망에서 희망이 생긴다는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위안 삼았다. 세상엔 자신이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적었다. 누구나 무언가를 바란다. 다만 그것을 더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만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스신화의 가치를 '변신'에서 찿는다는 말을 들었다. 신, 인간, 요정 할것 없이 사랑하고 임신을 시키고 새로운 관념을 만들어내는 제우스를 왜 창조의 신이라고 말하는지도 조금 알았다.  달라진다는 것, 정체성이 달라지는 변화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자 특별해진다.



타고난 성격과 기질 그리고 부모와 가족에게 받은 영향에서 방어기제로 작용하는 나의 부정적 감정들을 수없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나를 알고 싶은 의도적인 연습, 그것이 바로 독서였다. 다른 이들의 삶을 엿보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연습을 했다. 다른 어떠한 경험보다 독서를 통해 마주하는 내가 가장 진실되다고 느꼈다. 변화를 꿈꾼다. 절대 바뀔수 없는 내 모습을 깍아낸다. 조금씩 버리고 비워내며 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직 섬세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내가 누구라는  얼마간의 인식이 생겼다. 이제 나는 나를 만들어 가고 싶어한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 변화를 꿈꾸는 그래 꿈이 생겼다. 엄마에게 비춰본 나를 바라보며 형성된 정체성에서의 나는 혼자 있기를 원하며 가족을 밀어내고 있었지만 작은 변신을 거듭한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그제야 내 마음도 꽃이 나비를 찿아들듯 자연스럽게 가족에게로 향한다.  나의 보물, 나의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보고 싶어진다. 내 꿈의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 산티아고가 여행을 위해 양치기가 되었듯 여행을 위해 책을 만난다.



나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을때 그것은 무형의 모습이었다. 형체도 실체도 없지만 완전히 나를 조정했다.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조정되는 인형을 떠올리며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오래도록 나를 묶고 있는 실타래가 가족의 울타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내가 나를 알아갈수록 묶인 나를 만든 것이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순간의 나의 선택은 나말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나만 알았던 선택이었다. 떠밀려 온 것이 아닌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내가 달라진다는 것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그리게 된다. 하나의 좋은 선택을 하고 또 하나의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작은 성취를 통해 확인한다. 그것을 책이 도와주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우느냐?"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이병헌의 내레이션



엄마의 딸이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꿈을 가지고 사는 것은 가혹하다. 내 꿈을 바꾸는 선택을 한 나를 나는 이제 기특하게 여기며 안아줄 수 있다. 내 꿈은 이제 더이상 슬프지 않다.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으로 나는 더 많은 행복을 그릴 수 있고 더 많은 사람과 풍성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더 바빠졌음에도 더 평안하고 유연해졌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다. 삶은 고통이라고.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고, 내게 없는 것을 갈구하는 욕망이 인간의 고통을 초래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통을 즐기는 법을 알아간다. 힘들어도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미로같은 과정을 통해 단순해지는 것이 있다. 나에게 좋은 선택이란 좋은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내게 기왕이면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욕망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 사랑을 쏟는다.  삶이 의미 있는 고통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매일 100알의 도토리를 심는 사람.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었다. 묵묵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신념을 보았다. 그가 이루어낸 숲을 보며 당장에는 성과가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일의 가치를 느꼈다. 꾸준한 노력, 인내심, 그리고 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보았다. 그 이야기를 오래 곱씹을수록 커보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좋은 도토리를 찬찬히 감별하는 그 순간이다. 도토리를 막연히 심는 것이 아니라 싹이 트지 않고 썩는 도토리를 관찰하고 걸러냈다.  실패의 경험이 준 교훈을 통해 좋은 선택을 신중하게 했던 것이다.



어느 고전 작품에서 이런 대목을 보았다. '아스팔트에서 틀림없이 꽃이 핀다고 믿고 부지런히 아스팔트에 물을 줄 수 있는 믿음', 아 그런 것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선택을 향해 마음과 에너지, 시간과 돈을 쓸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싶었다. 역사상 사회운동가로 나선 많은 이들에게 꿈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 꿈 덕분에 사회는 점점 나아지고 있으리라.




달과 6펜스




날이 가물어서 쩍쩍 갈라진 논바닥이나, 메마른 강바닥에 물을 대는 일처럼 소중한 일이 없구나.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메마른 가슴에 따뜻함이 베이는 일, 그 따뜻함이 온기가 되어 눈물로, 비로 내리는 일이 기적으로 다가온다. 초점을 잃어 텅비어 있던 눈빛에 초점이 생기는 일. 거기에 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신을 믿는다. 잘만든 드라마로 '도깨비'의 명대사가 가끔 내 삶에도 스민다. 잊고 있다가 누군가가 상기시켜주면 마른 가슴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도깨비에서 만난 신의 존재는 경이로웠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이 오면 염원을 담아 간절히 빌어. 혹여, 어느 마음 약한 신이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


( 신이 맞는 답을 가르쳐 주었으나 자기의 답을 쓴다.) 너의 선택은 너의 선택만이 답이다


세상은 모를 텐데.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준다는 거.



뒷골목의 소년에게 검정고시를 보게 하고 꿈을 갖게 하고 대학에  진학시킨 얼굴 없는 독지가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기억하게  그분의 진짜 함자는 김가 성에 믿을 신자를 쓰신다네.




신, 믿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가진 두려움을 이기는 일, 위험을 예측하고 조치를 취하는 능력, 두려움 때문에 위안을 찿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이 믿음에서 온다. 어떤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쌓인 경험에 의해 별거 아닌 사건이 되지만 어떤 두려움은 증폭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끝끝내 자신의 두려움의 원천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나쁠것은 없겠지만 변화를 꿈꾼다면 이 앎이 중요하다.


나의 두려움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을 상대하는 나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때, 그때가 바로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 같다. '글쓰기'라는 형태로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보게 되었다. 독서가 그 시작이었다. 두려움을 자극하는 상황에 스스로 발들여 놓기, 그리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써보기, 그러고 나서는 그 두려움을 별거 아닌 놈으로 만들어 버리기. 끝없는 견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또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멋진 일이다. 나의 믿음은 내가 더 행복해질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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