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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쇠책방 Jan 29. 2024

알베르 카뮈를 만나고 가까워진 나


<이방인>을 읽고 나서 에세이 <안과 겉>을 읽지 않았다면 알베르 카뮈와 다시 멀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한 개인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 그대로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오래 가지고 있던 마음 보따리
특별한 것이 들은 줄 알았더니
평범하고 낡아서 사라진지 오래였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거기 그 보따리안에 무엇이 들었소.
용암덩어리 마냥 근처만 가도 데일 것 같아서
 조심조심 밀어두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자리한 곳이 내 가슴
계속 안고 있기엔 뜨거워 내려놓았다가
어느 추운 날에야 다시 끌어안고 싶어져서
어둠 속을 더듬더듬.
보따리엔 이야기가 들었구나.

지겹도록 들었던 엄마의 이야기
1절, 2절, 3절 끝이 없던 도돌이표
아~ 이제야 그 가사말이 무엇인지 알겠네.
신세 한탄인가 하였더니
그것은 구애가였네.

by 열쇠책방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 되고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고 또 잠시 후에는 실제로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 즉 인간적인 것도 단순함도 거기에 다 새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곧 세계일 때보다 더 진실해지는 때가 과연 언제이겠는가? 나는 갈망하기도 전에 만족되었다. 영원이 눈앞에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또렷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에세이 [안과 겉]중에서...



한동안 내 이야기, 그러니까 다시 쓰라면 못 쓸 이야기는 멈추어 있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침묵이 흘렀다. 책 속에 녹아든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를 만나는 동안 자연스럽게 써두고 싶은 감정들이 생겼고 그것을 써두는 것은 누구보다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에 직면했다. 또렷한 의식상태로 나를 들어다 보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알베르 카뮈를 만나고 나서 저 안에서 말라있던 울분의 샘물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내가 느낀 것들을 버리면 안 된다. 여기서 내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안과 겉을 읽고 울어야 했다.

소설 이방인은 그저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았구나. 알베르 카뮈, 이제 내 마음에 어쩌면 유일하다,


알베르 카뮈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나 나는 다만 빈곤하다고 해서 반드시 시기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심지어 그 뒤에, 중병에 걸려 잠시 동안 살아갈 힘을 잃고, 그로 인하여 내 속의 모든 것이 온통 변해 버렸을 때에도, 그 때문에 맛보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와 전에 없던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포감과 낙담은 경험했어도 한 번도 원망이란 것은 알지 못하고 지냈다. 그 병은 틀림없이 내가 이미 받고 있던 속박들에다가 또 다른 속박을, 그것도 가장 가혹한 구속을 덧보태 주었다. 그러나 그 병은 결국 저 마음의 자유를, 인간적인 이해관계들에 대한 저 홀가분한 거리 두기를 조장했고, 그것은 항상 내가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안과 겉> - 머리말 중에



나의 경우가 그렇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사랑할 수 있었으니, 마침내 나는 나 자신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 주는 것은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우리의 결핍을 느끼며 그로 인하여 더 많이 사랑한다. 그렇다, 그것이 아마 행복인지도 모른다 책 우리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감정 말이다.


나는 빈민가에서 살던 어떤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그 동네, 그 집! 일층과 이층이 전부였고, 계단에는 불이 없어 어두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는 캄캄한 밤중에도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고 그 층계를 단숨에 뛰어 올라갈 수 있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의 몸속에 그 집이 배어들어 찍혀 있는 것이다. 그의 두 다리가 계단 하나하나의 정확한 높이를 제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층계 난간에 대한 끝내 극복하지 못한 본능적 공포감이 남아 있다. 바퀴벌레 때문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안과 겉> - 긍정과 부정 사이 중에서



내가 예전에 카뮈를 만났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감동과 자극을 받았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것저것 써두었던 메모와 흔적들을 다시 만나면서 내가 다시 여기로 돌아왔음을 느끼게 된다. 우연히 생긴 감동이 아니라 몇 번이고 다시 만나지는 감동이라는 점은 아주 중요했다. 카뮈를 읽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안과 겉>으로 올 것 같다.

알베르 카뮈를 다시 만나며 드는 생각 몇 가지가 있다. '소설이 소설만은 아니었구나, 소설을 읽기 전에 에세이들을 먼저 읽어야 했구나, 책을 모두 다시 읽어야겠구나'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고독했지만 충만한 사랑, 쏟아지는 햇빛, 그 안에 이미 자신이 찾고 있던 진실이 있었다고 카뮈는 말한다.


❤️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은 없다."


❤️ "나는 변하지 않았고 다만 이제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동안 썼던 나의 일기 같은 글들, 이유도 모르고 끌린 책들을 통해 내가 카뮈와 비슷한 감정선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꼈기에 오늘처럼 알베르 카뮈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많아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의 침묵에 담긴 슬픔이 너무 크지만 그가 시종일관 울지 않아서 먹먹했다. 그에게는 울만한 곳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내 마음은 억제된 부르짖음과
반항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만일 누가 나에게
두 팔을 벌려 주었더라면
나는 그 품 속에 달려들어
어린애처럼 울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한 번도 그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었다. 그럴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가 있고, 글을 모르시는 어머니와 대화를 할 수 없는 카뮈,  침묵 속 가상 대화는 가슴이 아렸다.  알제리의 유년과 청년 시절에 대한 그의 애착은 그만의  가난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처절한 가난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낙원이었다. 문맹이자 청각장애가 있으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마주했을 때 멀리 보아서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어떤 실체의 온도가 피부로 느껴졌다. 투명함과 단순함. 바닷속에 몸을 담가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독서로 간접 경험하지만 내가 겪은 날들의 이야기와 함께 재생되면서 직접적인 해석이 일어났다. 그러한 것들을 새로이 느끼면서 나와 나의 부모님의 지난날들을 많이 떠올렸었다.

"나의 결점, 나의 무지, 나의 의지는 내가 [안과 겉]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던 옛날의 그 길로 언제나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비탄을 느끼며, 그로 인하여 더 많이 사랑한다. 그렇다. 그것이 아마 행복인지도 모른다. 즉 우리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는 감정 말이다.  



카뮈의 반항, 자유, 열정은 '사랑'과도 일맥상통한다. 더 많이 살고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소진하는 것,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개개인을 소중히 여기며, 동시에 함께 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것만큼 더 강한 반항과 자유, 열정은 없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답도 오직 한 가지뿐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 남김없이 사랑하고, 부족한 만큼 더 넓은 가슴을 만들어 또 사랑할 것.. 이 부조리한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은 그것밖엔 없다고, 나는 행복한 시지프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유일한 낙원은 바로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내 마음속에 깃든 감미로우 면서도 비인간적인 그 무언인가에다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나는 알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안과 겉> - 긍정과 부정 사이 중에서

"맞아요. 난 인생을 사랑했어요. 탐욕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인생이 끔찍스럽고 접근 불가능한 그 무엇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게 바로 내가 인생을 믿는 이유예요. 회의주의 때문에. 그래요, 나는 믿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항상. " - 「최초의 인간」 (p44)


다시 몇 번이고 알베르 카뮈가 보여주는 세계에 들어서고 싶다. 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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