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백수 김한량 Oct 23. 2023

모든 길을 다 걸어보고 싶드아

D+19 포르투갈길 19일 차

루트 : Porto - Vilado Conde (약 24km)

걸은 시간 : 6시간 46분






풀어놓은 가방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어제 산 물건들이 있어 조금 걱정을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을 구매한 거라 생각해서 어쩔 수 없다 여겼다. 여분으로 산 양말 두 켤레, 예쁘니까 산 옷, 추운 날 밤을 위해 산 경량패딩. 추가된 무게는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내 발이 그대로 느껴졌다. 덜어내야 한다. 배낭의 무게는 딱 오늘 필요한 것들의 무게만 허락하나 보다. 10분 정도 걸은 건데 벌써 힘들었다.


일단 짐을 싸고 나오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다. 포르투에서부터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선택해서 갈 수 있다. 크게는 내륙길과 바닷가길로 나누어진다. 내가 만난 순례자들은 거의 내륙길을 선택했다. 그중 한 명의 선택의 이유는 내륙을 지날 땐 360도 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바닷가 길은 한쪽 풍경이 항상 똑같은 바다니까 지겹다였다. 그럴듯했다. 바닷가길은 내륙길보다 아름답다고 듣기도 했다. 포르투에서 하루 정도 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아 포르투 도심에 있는 알베르게를 알아봤다. 11시쯤 되었으니 지금 가면 내가 1등으로 도착이니 그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다 하고 싶은 마음에 결국 아무 길도 선택하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해질 때까지 카페에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발가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도루강을 더 구경해보고 싶었던 터라 강줄기를 따라 걸었다. 





유럽을 여행하며 유명한 강줄기는 가본 적이 있지만 도우강은 뭔지 모를 웅장함이 있었다. 시원하게 뻗어 있었는 강줄기를 보니 대항해시대 당시의 포르투를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강의 끝에 다다르니 바다와 이어지는 구간에 펠구에이라스 등대가 나왔다. 등대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이전에 많이 보던 바다 지평선이랑 다를 바 없는데 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더 넓게 멀리 뻗어있는 느낌이랄까?


바다 구경을 하다 보니 걷게 된 길은 산티아고순례길의 바닷가길(Costal Way) 중에도 더 바닷가(More Costal Way) 길이었다. 오늘은 이 길을 걷기로 하고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를 찾아 목표로 걸었다. 바다는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아직 4월이지만 해변가의 풍경은 한국 7-8월의 모습이었다. 수영복을 입고 해변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그 옆에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수영복도 살 걸 그랬나. 




어제도 도시에서 관광객을 보며 느꼈던 감정이기도 한데, 팬시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옷이든 수영복이든 메이크업이든) 팬시한 음료와 음식을 먹고 있거나, 끊임없이 사진만 찍고 있거나, 뜨거운 모래 위에 가만히 누워 해를 즐기거나 하는 모습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익히 해오던 행동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는 불쾌감도 조금 올라왔다. 


처음에는 이 감정이 부러움이나 질투인가 싶었다. 조금 더 생각하다 보니 내가 그 안에 있을 때 느끼는 타인에 대한 의식, 전체에 대한 의식, 곧 자의식 때문인가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남들은 뭘 입었고 뭘 먹었는지 확인하면서 나와 비교하는. 아마 내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이유와 비슷하려나. 이 풍경이 거대한 인스타처럼 보이는 것인가. 결과적으로 정확히 어떤 류의 불쾌함인지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 풍경을 몇 시간 보며 걸으니 바닷가길은 오늘로 충분한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포르투 도심을 벗어난 후에야 바닷가길의 진면목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길과, 강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생긴 공기 중 뿌연 미스트와 뜨거운 햇살이 만드는 풍경 덕분에 지브리 애니메이션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는 해의 노을까지 더 해지니 더욱 아름다웠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부터 발걸음이 빨라졌다. 며칠 전 한 순례자가 아직 해가 뜨기 전 일찍 걷는 걸 선호하는 이유를 말한 적 있다. 날이 밝아지며 이후 생명들이 깨어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좋아서라고 했다. 나는 반대로 분주한 하루가 잦아들고 어둠이 드리워지는 길을 걷는 편인 것 같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다는 말처럼 일찍 일어나는 순례자가 알베르게를 잡는다. 9시쯤 도착한 알베르게엔 침대가 56개가 있다길래 여유롭게 왔는데 오늘은 70명이 넘게 왔다고 한다. 16인실 방을 보니 넘친 인원 때문에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고 있었다. 많이 늦은 게 행운이었는지 방이 없어 다이닝룸에 매트리스를 깔아주어 나름 1인실에서 자게 되었다. 늦게 일어나는 새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욕이 사라질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