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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Oct 23. 2023

결국 찾아온 부상

D+20 포르투갈길 20일 차

✔️루트 : ViladoConde - Esposende (약 25km) 20일 차

✔️걸은 시간 : 7시간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방에 요가 매트가 깔려있었다. 3살 된 귀여운 아이와 엄마가 들어왔다. 스페인에서 온 순례자들이었다. 이들은 밤이 추운데 두꺼운 옷이나 침낭도 없었다. 요가매트 세 겹을 매트리스 삼아 누웠다. 내 매트리스가 싱글사이즈보다 살짝 컸기에 매트리스에서 같이 자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엄마가 휴대폰으로 틀어준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엄마는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아이는 불편했는지 자꾸 발을 찼다. 아가가 작은 발로 차는 게 귀여우니 이때까진 참을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휴대폰 배터리가 닳고 나서 시작되었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찾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려고 모유수유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싫다고 막 저항하는데 그 소리가 울려서 어찌나 크던지… 아이가 소리 지르다 울고 울면 젖 먹이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다른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그냥 누워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게 짜증이 났다. 한 편으로는 이게 일상일 엄마가 안 쓰러워 나야 하룻밤인데 싶었다. 아이와 엄마가 까미노를 걷고 알베르게에 묵을 권리는 있지. 방을 이따구로 배정한 관리자의 잘못이야.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새벽 4시가 되자 피곤함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풀어놓은 짐을 하나씩 다 다시 싸고 일단 주방으로 나왔다.


주방에 나오니 이미 일어나 아침을 먹으려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그룹이었는데 등산모임 친구들 8명이 함께 왔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과 대화를 하니 짜증이 조금 잦아들었다. 밖이 깜깜해서 나가긴 싫었지만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는 건 더 곤욕일 것 같아 가방을 들고 나왔다.





드디어 쓸 일이 생긴 헤드랜턴은 배터리가 없었다. 그냥 걸으려고 하다가 등 하나 없는 캄캄한 바닷가길에 울리는 파도 소리가 무서워 휴대용 충전기에 연결하고 나서야 걷기 시작했다. 꽤나 성능이 좋은 헤드랜턴이었지만 혼자 캄캄한 곳을 걷는 것은 무서웠다. 파도는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하늘과 바다 색이 비슷해서 구름이 마치 나를 덮치러 다가오는 쓰나미처럼 보였다. 조금이라도 무서움을 감소시키기 위해 인스타 라이브를 틀었다. 다행히 몇 친구들이 들어와 주었고 그들과 소통하며 걸으니 함께 걷는 느낌에 안심이 되었다. 해는 금방 밝아왔다.




오늘 지나치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들은 아기자기하니 예뻤다. 가민 시계는 아침마다 수면과 내 몸을 체크해 모닝리포트를 보내주는데 계속 휴식하라고 외치던 녀석이 오늘은 회복이 잘 됐다고 했다. 신뢰가 안 간다 가민. 가민이 그렇다 해서 그런지 컨디션 상태는 좋았다. 일찍 시작해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셀카봉으로 사진도 찍고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귀여운 바다 지킴이들!!


시간이 많아 여유로운 마음으로 셀카도 실컷 찍었다.


순례자 표식



바닷가길은 나무로 만들어진 패들로 된 길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중간에 모래를 걸어가는 구간이 있었다. 고운 모래 때문에 발이 푹푹 담겨서 걷기에 힘들었다. 모래길을 지나고 나니 왼쪽 무릎 뒤 쪽에 살짝 통증이 올라왔다. 못 걸을 정도까진 아니었다. 15시쯤 되자 갑자기 피로감과 졸음이 몰려왔다. 그늘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10분쯤 지나서 어서 가서 제대로 잠을 자자 싶었다. 


이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릎 뒤의 통증이 종아리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에 다리를 마사지했는데 그게 오히려 근육통을 종아리 전체에 퍼지게 만들었다. 몇 걸음 걷자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다. 절뚝거리며 어떻게든 3km까지는 걸었는데 더 이상은 걸으면 회복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km가 남았지만 무작정 지나가는 차를 세워 다쳐서 그런데 가는 데까지 태워줄 수 있냐 물었다. 운전자는 흔쾌히 승낙했고 목적지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



차를 태워주신 분들과 함께!



다행히 도착한 알베르게는 너무 깔끔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수영장 풀도 있었는데 냉찜질이 필요한 나에게 딱이었다. 차가운 수영장 물에 발을 담그니 통증이 있던 부위가 지릿했다. 


유럽에 온 김에 3일 뒤 Aveiro라는 도시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신청을 해놓았다. 이 상태에서 잘 뛸 수 있을까 걱정이다. 원래 내일부터 이틀은 마라톤을 위해 쉬려고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기만 해야겠다. 


유튜브보고 처음 도전해본 테이핑... 별 효과는 없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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