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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Sep 15. 2023

예수와 나의 평행이론

D+7 포르투갈길 7일 차

✔️루트 : Asseiceira - Calvinos (약 25km)

✔️걸은 시간 : 8시간 30분






임신을 하였다. 지금은 헤어진 애인의 아이였다. 이 사실을 통보하기 위해 그를 다시 만났다. 긴장되었다. 그가 반가워하지 않을 소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이를 낳을 거야"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통보였지만 나는 그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예민하게 살폈다. 그가 나를 지지해 주고 나와 함께 하겠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아직은 공기가 차가운 이른 새벽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발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침대에서 몸을 굴리며 뭉친 어깨도 풀어주고 하루종일 눌려있던 허리도 펴주었다. 그리고 배낭 무게를 모두 짊어지느라 가장 수고한 골반도 풀어주었다. 이전에는 나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들이 느껴졌다. 근육들이 마치 ‘힝, 나 진짜 너무 힘들었어!!’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옆 방에서 자던 순례자도 침대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스트레칭을 마치고 방을 나왔을 때 그는 이미 배낭을 메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순례자들이 뜨거운 해를 피하기 위해 6-7시쯤 출발하는 듯했다. 나도 일찍 출발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아침을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지난밤 꿈을 되새겨 보았다. 임신을 하는 꿈이라니. 꿈 안에서 느낀 감정이 너무 선명했다. 상대방 반응에 대한 긴장감, 나의 선택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강한 확신. 임신한 꿈 해몽을 검색했다. 길몽이라고 하니 기분은 좋았다. 낯선 남성과 단 둘이 한 숙소에서 묵는 것에서 온 걱정이 꿈으로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을 샀다




2유로 당첨 됐다. 덕분에 복권을 하나 더 살 수 있었다



오늘도 알베르게를 나오자마자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출발했다. 오늘은 뭔가 몸이 무거웠다. 내 스마트 워치는 아침마다 모닝리포트를 보내주는데 요즘은 계속 '휴식 요망'이라는 알람이 뜬다. 며칠 누적된 피로감 때문에 투벅투벅 느린 발걸음으로 걷는 중 활기찬 걸음으로 걷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같은 방에서 묵었던 미국인 가족들이었다. 이들과는 걸으며 몇 번 마주친 적 있지만 각자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했었는데 오늘에서야 함께 걸으며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코르크나무 아래에서의 점심식사



3남매와 그들의 파트너들이 함께 왔다고 했다. 처음에 가족이라고 했을 때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장 큰 형이었고 막내와 20살 넘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이전에 이미지를 분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배에 나무상자가 담긴 사진 한 장을 보고 배의 모델, 나무의 무늬, 배가 띄워진 정도를 보고 상자 안에 어떤 물건이 있으며 어디 나라에서 왔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흥미로운 삶 이야기를 들으며 걸으니 이들의 빠른 걸음도 따라갈만했다. 나이도 많은 그가 계속 얘기를 하며 걸어서 금방 지칠까 걱정했지만 신기하게도 점점 숨이 차고 지치는 건 나였다. 70대 후반의 노인에게 체력으로 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나는 늙음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다. 늙음은 곧 체력 저하를 의미하고, 체력 저하는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는 밥줄이 끊긴다는 의미와 다름없고 그 결과 생명유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나로선 몸이 아픈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내가 길을 걷다가 차에 치인다면 지나가던 사람이 119에 전화라도 해줄 테지만 내가 집 안에서 쓰러진다면 한 달 뒤 미라로 발견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교통사고보다 아픈 게 더 무섭다.


내 머릿속에 정답처럼 자리 잡고 있던 '늙어감 = 쇠약함 = 죽음'이라는 공식은 순례길 위에서 상당 부분 깨졌다. 순례자의 상당수가 중년, 노년층인 것도 그렇고, 나와 같은 배낭을 메고도 집 앞을 산책하는 듯한 가벼운 그들의 발걸음을 보며 나의 미래에서 쇠퇴가 아니라 성장을 보았다. 지금부터 노력하면 나도 저 나이 때 저들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에너지 넘치는 가족들 ㅎㅎ



이들을 통해서 오늘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고 다가오는 일요일이 부활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 이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성경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수는 그를 따르던 많은 이들에게 외면당하고 비난받는다. 심지어 그의 제자들마저 모두 도망을 간다. 예수는 십자가형을 선고받는다.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긴 거리를 걷는다.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이었다. 예수는 하늘에 말한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예수는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흘 뒤 부활한다.


이미 많이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순례길 위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니 맥락이 새삼 다르게 읽혔다. 그리고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의 위기들은 부활절을 기점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


2018년에 필리핀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있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는데 충격과 함께 하늘을 날아 아스팔트에 얼굴부터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팔이 부러지고 얼굴 살갗이 찢어져 나갔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내 얼굴을 보고 계속 울고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엠뷸런스를 불렀지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결국 마을 사람의 차를 타고 내가 있던 필리핀의 작은 섬의 응급실에 갔다. 의사는 부재중이었고 상상 이상으로 어수룩한 간호사들은 나에게 무슨 처치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결국 배를 타고 섬을 나가야 했다. 배를 타기 위해 마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차를 한참 타야 했는데 부러진 팔이 조그만 자갈에도 너무 아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큰 마을의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왠지 병원이 휑 했다. 그리고 이곳에도 의사가 없었다.



2018년. 필리핀에서 묵었던 호스텔 주인 분이 오셔서 간호를 해주셨다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에선 부활절 주에 모든 가게, 심지어 의사도 쉰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비행기 탑승을 위해 뇌에 이상이 없다는 CT사진이 필요했는데 그 서류에 사인을 해줄 의사들은 모두 부활절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나는 제대로 상태 점검도 받지 못한 채 빈 병실에서 며칠 동안 막연히 의사를 기다려야 했다.


여행자보험도 없었고 휴대폰은 전화나 인터넷이 안 됐고 병원에 와이파이도 안 터져서 너무 무서웠다. 부러진 팔은 너무 아프고 찢어져 나간 눈이 실명되지는 않을까, 떨어져 나간 입술은 어떤 상태인 건가 확인도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페이스북에 나의 사고 소식을 알리는 글을 하나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 소식을 들은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이 영사관에 항의메일을 보내고 친구들이 나의 병원비 모금을 시작했다. 심지어 교류가 많지 않던 친구들까지 힘을 보태주었다. 덕분에 영사관(그전에 나도 연락을 했지만 당장 죽을 것 아니면 부활절 끝나고 연락하라는 대답을 들었었다.)에서 병원으로 한국인을 보내주었고 그의 도움으로 무사히 의사를 만나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끔찍한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에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경험할 수 있게 되는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기적 같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2018년. 당시 도움을 주신 한국인 분들과 필리핀 친구. 정말 감사한 분들...


작년에 건강 문제로 수술받게 된 것도 부활절 즈음이었다. 사고가 아닌 몸의 문제로 수술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몸이 늙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 같았고 이 나이를 먹고 부모님을 보호자로 불러야 했을 땐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나의 삶의 유지 가능성에 대한 깊은 고심을 하게 했다. 결론적으로 이 수술 이후 운동은 숨 쉬는 것 밖에 안 하던 내가 러닝과 등산을 열정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외에도 수년 전 한 회사와 법적인 분쟁이 있었던 것도 그즘이었을 것 같다.



2022년. 수술 후 걷는 것 연습 하는데 어떤 아이가 부활절 계란을 주고가서 감동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최악의 순간이면서 동시에 나와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부서지는 경험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선명하게 성장했고 새로운 내가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왔다. 이런 패턴을 깨닫고 나니 여러모로 예수의 부활 이야기가 나의 버전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번 연도에도 연결이 되는 사건이 있을까? 산티아고에 오게 된 내적 동기가 사건이라면 사건이 될 수 있을까?


십자가를 지고 고행을 한 예수, 배낭을 메고 고행을 하고 있는 나, 많은 이에게 조롱받고 질타받는 예수, 나 자신의 에고들에게 조롱받고 질타받는 나.


'예수와 나의 평행이론은 그만 찾고 부활절이 지날 때까지 몸이나 사리자. 잠깐, 설마 부활절이라 알베르게 가 닫은 것 아니겠지?'



부활절 얘기를 들으며 도착한 Tomar



같이 걷던 미국인 순례자들은 토마르에서 하루 쉬고 간다고 했다. 토마르에는 아름다운 건축물 포함 볼거리가 많다고 했다. 그들의 말처럼 토마르는 참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가득해 시끄러운 이 도시에서 한시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토마르의 도심지에서 나오자마자 길을 잃었다. 차도를 걷기 싫어 옆으로 난 산책길로 들어왔는데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영어를 할 수 있는 포르투갈 가족 무리를 만났다. 이어지는 길이 있을 거리는 이들의 말에 안심하고 예쁜 숲길을 함께 걸었다. 이들을 통해 포르투갈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브라질의 포르투갈어가 더 유명해서 구글도, 요즘 젊은 포르투갈 사람들도 브라질의 포르투갈어를 쓴다는 것. 포르투갈 사람들이 브라질 문화(영화, 음악 등)를 주로 소비한다는 것.


우연히 들어선 아름다운 숲길에서 유쾌한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이 푸르른 숲의 배경 덕분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들은 순례길 표식이 있는 곳까지 나를 안내해 준 뒤 자신의 왔던 길을 돌아갔다.



순례자 표식을 찾을 떄까지 함께 해준 가족들




다행히 알베르게는 열려 있었다. 게다가 7.50유로로 아주 저렴한데 가격과는 다르게 너무 깔끔하고 좋다. 와보니 여기엔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 온 순례자 두 명이 묵고 있다. 일기를 쓰다 보니 너무 졸려서 일단 자야겠다.



Calvinos의 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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