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백수 김한량 Sep 14. 2023

발로 하는 기도

D+6 포르투갈길 6일 차

✔️루트 : Golegã - Asseiceira (약 20km)

✔️걸은 시간 : 6시간 24분





어젯밤 도착한 알베르게! 이 넓은 공간에 혼자 묵게 되었다



어제 해가 진 후에야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6개의 침대가 있는 도미토리였는데 하룻밤에 15유로이고 조식까지 포함이 되어있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순례자를 위한 작은 건물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운이 좋게 알베르게에는 나 혼자였고 큰 방과 거실과 화장실을 혼자 쓸 수 있었다.


저녁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지만 바로 잠들 것 같아 마당에서 딴 듯한 오렌지로 배고픔을 달랬다. 발의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오늘 일기를 인스타에 업로드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이 과정이 귀찮았지만 확실히 하루에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나면 마음이 비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채워짐을 느낀다. 이 일련의 과정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아침!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했지만 어제 제대로 끼니를 못 먹은 탓인지 금방 배가 고파 식당에 들렀다. 맛집인지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큰 테이블 몇 개만 있는 곳이었기에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을 먹으로 온 사람, 와인을 마시러 온 사람,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까지 모두 상대하느라 바쁜 주인이 나에게 눈길을 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앞에 앉으신 할머니가 식사를 하시고 디저트와 식후 커피까지 마시는 과정을 시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4D 홈쇼핑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영업당했다. 할머니에게 메뉴의 이름을 물었다. '피칸'이라고 대답하신 것 같아 주인에게 피칸을 달라고 했다.       


"음료는?"

"오렌지 환타 부탁해요"


며칠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으면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따로 돈을 내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식당에선 메뉴를 하나 주문하면 음료, 식전 빵, 메인메뉴, 디저트, 커피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10유로가 안 되는 가격이다. 점심특선 같은 개념인지,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른 곳은 모두 그랬다. 처음에는 자꾸 '음료는? 디저트는? 커피는?'이라고 해서 내가 어수룩해 보이는 외국인이라서 매출 올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래서 '괜찮아. 충분해'라며 메인메뉴만 먹었다. 지불한 돈에 포함이 된 꿋꿋이 메뉴였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지금도 걷다 보면 그때 못 먹었던 디저트들이 떠오르곤 한다.


돼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돼지 '간' 스테이크가 나왔다. 소스에 조리된 음식이니 순대에 나오는 간이랑은 좀 다르겠지 생각했지만 역시 퍽퍽했다.(맛은 괜찮았다.) 함께 서빙된 밥과 감자튀김은 그 퍽퍽함을 배로 만들어 주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왜 밥과 감자튀김을 같이 먹을까? 그리고 단 디저트까지?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려서 탄수화물이 많이 필요한 건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지금도 너무 궁금하다.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은 꼭 좀 알려주시길...)



이 모든 메뉴가 8유로로 혜자다





포르투갈엔 버려진 집이 많다. 오늘은 빈 마을을 하나 지나갔다. 나한테 집 하나를 준다면 어떻게 리모델링을 상상하며 걸었다.




길 건너 산을 넘어야 한다. 많이 먹어두길 다행이다.




지금보면 그다지 가파른 길도 아닌 것 같지만 배낭을 메고 보면 헉 소리 난다.



오늘 길은 꽤 힘들었다. 낮은 동산을 하나를 넘어가야 했는데 배낭을 메고 걸으려니 동산이 아니라 태백산처럼 느껴졌다. 금세 날씨도 더워져서 한 낯엔 28도까지 되었기에 더 힘들었다.





산을 넘어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나를 반겼다. 그는 친절하게 침실과 주방, 빨래를 널 수 있는 공간까지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도 오늘 이곳에 도착한 순례자였다. 이 알베르게에는 주인이 상주하지 않고 알아서 묵고 돈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가는 시스템이었다. 5개의 침대가 있었지만 오늘 밤엔 그와 나만 있었다.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그는 저녁을 먹고 들어 왔다. 나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사 먹기 때문에 가방에 있는 빵으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오늘은 날이 더웠기에 신발 깔창까지 빨아서 옷들과 함께 널었다. 빨래를 널고 있으니 저녁을 먹은 순례자가 돌아왔다. 노을을 보며 그와 대화를 나눴다.


이번 여정은 그의 2번째 순례길이었다. 첫 번째는 프랑스길이었고 여러 문화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순례길의 매력에 빠져 다시 걷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포르투갈길에는 순례자가 별로 없어 실망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딱 질색이기 때문에 이 길에 오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문화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의 방법은 많은데 왜 순례길이야? 순례길의 무엇이 특별한 것 같아? 처음엔 어떻게 순례길에 오길 결정하게 되었어?"


"너는 네가 걸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너의 등에 짊어지고 걸어.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까미노 위에선 네가 욕망하는 것의 무게를 너의 발이 솔직하게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곧 넌 네가 걷는데 진짜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지. 일상에서 삶은 복잡하지만 까미노 위에서 인생이 심플해져"


그리곤 종교인들은 순례길을 ‘발로 하는 기도’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그의 첫 순례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일상을 되찾아 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스트레스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 순례길 위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이 갑자기 크게 올라와 오열을 했던 경험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크게 놀란 경험이라고 했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최소한 한 번은 운다고 했다.


나도 순례길 오기 전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순례길 위에서 우는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무슨 감정일까 궁금했다. 지금 상상해도 별로 내가 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근데 다른 사람의 그 순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 험하면 땅만 보고 걷게 된다



발로 하는 기도, 어떤 의미일까. 걷는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단순한 행위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포르투갈을 오기 전 나는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내 안의 여러 가지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서 쉬어도 쉰 것 같지도 않고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뒤에는 약도 먹지 않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조용해졌다.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


친구가 이번 여행에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어떠냐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러나 걸으며 느껴지는 나의 모든 감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기도이려나 생각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