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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Sep 20. 2023

Alvaiázere에서의 휴일

D+9 포르투갈길 9일 차

✔️루트 : Alvaiázere 휴일

✔️하루 요약 : Happy Easter





아늑한 알베르게의 침실
Bom dia! (좋은 아침!)



마을에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성당의 종소리가 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왔다. 눈을 뜨니 작은 다락방의 낮은 천장이 보였다. 방 안의 엔틱한 가구들은 낡았지만 아늑했다.


'아 지금 내가 유럽에 있긴 하구나'


기분 좋게 침대에서 일어느 제일 먼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침을 여유롭게 즐겼다. 딱히 쉴 계획은 없었지만 날씨도 좋고, 마을도, 알베르게도, 모든 게 마음에 들어서 이 마을에서 하루 더 묵고 가기로 결정했다.







커피를 마신 후 별달리 할 일이 없어 괜히 알베르게 주인 주위를 기웃거렸다. 그는 순례자들이 떠난 방을 한참 청소하는 중이었다.


'오늘 부활절인데 뭐 해?'

'휴일을 맞아서 아들이 집에 왔어. 이따 같이 성당에 갈 거야.'

'나도 데리고 가'

 

그는 기분 좋게 함께 가자고 대답해 주었다. 난 가족이 천주교라 성당이 낯설진 않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성당엔 명절 때만 가기에 나에게도 정말 오랜만의 미사였다.



감사하게도 성당 관계자 분께서 촬영을 허락해 주셨다. 사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가족사진을 찍고 있었다.



리스본에서도 크리덴셜을 받기 위해 리스본 대성당을 다녀온 적이 있고 순례길을 걸으며 많은 성당을 지나쳤기에 포르투갈의 화려한 성당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당연하게도 미사의 진행은 모두 포르투갈어로 진행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자랐다. 하지만 나는 무교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낯선 나라에서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난다. 무슨 마음인지 잘 모르겠는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진다. 마음이 벅찬 것도, 반가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낯선 타지에서 느끼는 고향의 냄새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이사를 다니며 자라왔기에 고향에 대한 기억이나 냄새가 없다. 그리고 명절 때 찾는 성당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정말 영적인 무언가가 있는 건가? ... 역시 나는 신적인 존재에 동의하기는 힘들다.(나는 모든 개인이 신이라고 믿는 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 모를 눈물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떠오르질 않는다.


오늘은 금장으로 꾸며진 제단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 인간의 최후의 모습을 벽 위에 걸어놓고 그 주위에 죽음에 대한 찬양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향해 기도를 한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발에 키스를 한다. 미사의 진행에 있어 언어를 이해하지 못 한채 이 모든 행위를 조망하다 보니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참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 같다. 그리고 괜히 나의 순례길이 그 한 부분이라도 된 듯 지릿지릿한 발의 통증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그의 고행에 감사를 하듯 그의 발에 키스를 한다



유쾌한 알베르게 주인과 그의 아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ㅎㅎ



오늘 일정에는 부활절을 맞아 고향에 온 알베르게 주인 아들과 함께였다. 미사가 끝난 후 함께 차를 타고 동네 드라이브도 하고 이들의 동네 친구들과 커피도 마시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Alvaiázere 투어~!




길거리에 오렌지가 가득하다! 덕분에 내 가방도 오렌지로 가득하다ㅎㅎ



빨래 건조를 기다리는 여유로운 오후 시간



오후엔 방 안에 널어둔 빨래를 광장에 널어두고 마를 때까지 책도 읽고 멍도 때리며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부활절이라 동네의 모든 식당이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어제의 기특한 내가 미리 쟁여둔 식당에서 먹고 남긴 고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부족할까 걱정이 돼 오렌지 서리도 다녀왔다. 오늘 도착한 순례자들과 수다도 떨고 저녁도 먹고 하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오늘 하루 알차게 잘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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