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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Sep 21. 2023

더 많이, 더 빨리 걷고 싶어

D+10 포르투갈길 10일 차

 ✔️루트 : Alvaiázere - Rabaçal(약 30km)

✔️걸은 시간 : 8시간 37분







알베르게에 함께 묵은 순례자들은 모두 오후의 뜨거운 해를 피하기 위해 새벽에 길을 나선다고 했다. 어제 하루 푹 쉬어 에너지도 보충 됐겠다 나도 대세에 따라 5시쯤 일어나 걸을 채비를 했다. 원래 눈을 뜨면 바로 밥을 먹지만 해가 뜨기 전 출발하려면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아 뜨거운 차 한 잔만 마시고 짐을 쌌다. 새벽은 꽤나 추웠다. 처음으로 배낭에 있던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나는 아침 일찍 걷는 것이 좋아. 세상의 모든 것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와 함께 걷는 게 좋은 것 같아"


왜 다들 이 어두운 밤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하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함께 걷던 네덜란드 순례자가 대답했다. 그의 말처럼 졸린 것 빼고는 새벽녘을 알리는 새소리, 닭소리와 함께 걷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긴 했다. 추워서 콧물이 났지만 따가운 햇살 아래보다 걷기에도 훨씬 수월했다. 다만 아침을 먹고 출발할 걸 후회가 됐다.



Ansião라는 마을에 있는 베이커리에서 커피 한 잔과 빵을 먹으러 들렀는데 여기에서 먼저 출발한 순례자들을 다들 만날 수 있었다. 이때서야 포르투갈길에 순례자가 별로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다들 일찍 출발해서 내가 만나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순례길자들과 순례길에 대한 대화를 주로 나누었기에 특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모이니 결국 대화 내용은 비슷했다. '무슨 일 해? 가족은? 하루에 몇 km씩 걸어?' 다 같이 배낭 하나 들고 걷는 순례자 처지에 이런 정보가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굳이 비밀도 아니니 대답을 했다. 결국 모두의 대답은 '나는 아주 잘 살고 있고 내 인생은 꽤 괜찮은 편이야.'로 귀결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나의 언어 속에는 나의 가치관과 나의 욕망들, 곧 나의 에고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가끔 이런 목소리가 타인의 소리처럼 낯설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순례길에서는 말을 내뱉을 때의 나의 감정과 언어가 조금 더 객관적이고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그 속에는 내가 수치럽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단어들도 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혹은 나의 수많은 에고들과) 대화한 탓이었을까, 오늘은 걷는 내내 마음속이 시끄러웠다.




순례길을 걸으며 현재의 나를 듣고 싶다 했지만 사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크게 있다는 걸 보게 되었다. 걷기를 통해 체력도 올리고 싶고, 살도 빼고 싶고, 이뤄내고 싶고, 증명하고 싶고, 여러 방면에서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말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나쁘다곤 할 수 없지만 결국은 지금의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지금의 나는 한 없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만 느껴진다. 나는 바뀌고 싶다.



오늘 꽤 오랫동안 걸었던 오름(?).



나는 순례길 위에서 마저 어떻게 더 생산적으로 걸을까 고민하곤 한다. 어떻게 해야 더 빨리 더 많이 걸을 수 있을지, 어디에서 쉬어야 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지 등 말이다. 차로 1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1시간 동안 걷는, 어찌 보면 참 생산적이지 않은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생산적인 것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라니. 순례길에서 만큼은 여유를 가지자고 매일 아침 다짐해도 몸에 깊게 베인 불안은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이 시끄러울 때면 <하루의 사랑작업>이라는 유튜브를 들으며 걷고 있다. 오늘은 무의식정화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이야기를 들으며 걸었다.



https://youtu.be/tm1 f0 HQwAXc? feature=shared

부정적인 감정을 발견했을 때 '나는 왜 이럴까, 바뀌어야지'가 아니라 '나는 이렇구나, 이런 마음이 있구나' 인정해 주기.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기.



'나는 지금 피곤하고 졸리다. 왜 더 빨리 못 걸을까  비난하지 말고 일단 눕자.'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에 온몸이 피곤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한창 오름 하나를 건너던 중이었지만 나의 컨디션을 수용하기로 했다. 적당한 나무 그늘을 찾아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누군가의 발소리에 금방 눈을 떴다. 며칠 전 숙소에서 만난 체코친구였다. 그는 갈 길이 바쁜 듯 짧은 인사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갔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게 잤다. 조금 더 눈을 감고 있다가 일어나 다시 걸었다.


이후에도 '에라 모르겠다'의 마음 상태로 레몬 나무에서 레몬 하나를 따서 레몬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었다. 가시지 않은 피곤함과 상큼한 레몬향이 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Rabaçal


도착한 Rabaçal이라는 동네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밖에 없었다. 지난 날 만났던 많은 이들이 모여있었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달랐던 각자의 순례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의 치즈가 얼마나 싸고 맛있는지에 대한 감탄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들 각자의 침대로 들어갔다.



리치하고 쫀득한 치즈가 하나에 4유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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