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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Oct 28. 2023

10km 달리고 10km 걷기

D+23 포르투갈길 23일 차

✔️루트 : Barcelos - Tamel (약 10km)

✔️걸은 시간 : 2시간 10분








생각보다 다리 상태가 괜찮았다. 달리다가 쥐만 안 나면 완주가 가능할 것 같았다. 마라톤 출발 전까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준비 과정을 섬세하게 준비했다. 원래 조식시간은 8시 30분부터이지만 마라톤에 나가는 사람들은 조식을 일찍 신청할 수 있었다. 보통 7시 전후로 신청했지만 나는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6시로 신청했다. 먹는 것도 너무 과하게 먹어 몸이 무겁거나 배탈이 나지 않도록 신중하게 골랐다. 바나나 두 개, 케이크 한 조각, 커피 두 잔을 먹었다. 





마라톤 사무국에 도착해서 배낭을 맡겼다. 행사는 다 포르투갈어로 진행되어서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는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관찰하며 따라다녔다. 번호표에 적혀있는 F라인으로 가서 기다렸다. 마라톤이라곤 서울마라톤 밖에 안 가 봤지만, 여기는 특이하게 풀, 하프, 미니(10k)가 시간 차 없이 함께 출발하고 같은 루트를 뛰다가 코스만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A조부터 풀, 하프, 미니 순으로 서 있겠거니 했다. 한 조씩 출발을 하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사람들, 한껏 들뜬 사람들의 에너지에 나도 덩달아 너무 신이 났다. 마지막인 우리 조 순서가 다가왔다. 우리 조는 조금씩 출발선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발선을 지나서도 계속 걸었다. 





음… 내가 뭘 잘못 이해했나? 출발선을 지나친 거리만큼 내 설렘은 의아함으로 바뀌었고 옆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 언제부터 뛰는 거야?"


심히 당황했다. 내가 서 있던 F조는 걷기 팀이었다. 나는 10km 마라톤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대답해 준 사람이 일단 뛰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르지만 일단 뛰기 시작했다. 10km에 참가하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사람들의 배번호표를 살폈다. 모든 코스가 같은 길을 함께 뛰고 있었기에 누구를 따라가야 되는 건지 헷갈렸다. 무작정 사람들에게 10k 뛰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그중 10k를 뛰는 Sofia라는 친구를 만났고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Sofia라는 친구는 세 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는데 웃고 떠들며 즐기는 마음으로 뛰고 있었다. 그들 덕분에 나의 긴장도 조금 사그라들었다. 어느 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각자의 페이스에 집중하며 뛰기 시작했고 무리는 흩어졌다. Sofia와 나도 시작은 서로 다른 템포였지만 어느 순간 같은 템포로 뛰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맞는 발걸음에 서로 놀라면서도 그 느낌을 즐기며 계속 함께 뛰었다.




뛰면서 재미있던 부분은 지나가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러너들을 향해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어떤 집에서는 먹을 것을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하고 댄스팀이나 군악대가 공연을 해주기도 했다. 마지막 1킬로는 조금 더 속도를 내어 달렸다. 번호표에 칩이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가민 시계를 확인하며 달렸다.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으로 마라톤 등록 내역을 확인했다. 10km 마라톤을 신청한 게 맞았다. 스텝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지만 결국 담당자를 찾지 못했다. 즐기려고 등록한 마라톤이니 잘 즐겼으니 되었다 싶었다.





성공적으로 완주~!
마라톤 후 다시 순례자 모드로!!


서울마라톤 이후 두 번째 10km 마라톤이었는데 순례길이 트레이닝이 되었는지 오늘은 뛰는 게 수월했다. 서울마라톤 때는 ‘키로 수 표지판이 언제 나오지?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라며 힘들게 뛰었다면 오늘은 ‘벌써 1km를 뛰었어?’였다. 뛰는 구간에 오르막길도 있었는데 다리의 근육이 생겨 받쳐주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이전이었다면 종아리에 부담이 오면서 제대로 못 올라갔을 것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마라톤을 즐겁게 즐긴 후 바로 기차역으로 향했다. 원래 오늘은 도착한 Barcelos에서 잘 예정이었지만 컨디션도 괜찮았고 조금만 걷자 싶어서 10km를 걸어 Tamel이라는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달릴 땐 안 아프던 무릎 뒤 쪽이 걷기 시작하자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근육을 쓰나 보다. 그럼에도 10km는 별다른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오늘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침대 수도 그만큼 많았다.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정원으로 나와 저녁을 먹었다. 그곳에 앉아 있던 프랑스 순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종교 얘기를 하다가 믿음과 철학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그는 나에게 삶에서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 물었다.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그는 '평화를 얻고 싶다'라고 했다. 또 삶은 어떤 것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느냐 물었다. 나는 '질문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그는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질문과 대답들은 수년 전 나의 질문들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같은 질문에 현재의 내가 어떻게 다르게 대답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누군가가 ‘너의 꿈이 뭐냐, 인생의 목표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행복해지는 것’이라 대답했다. 나에게 행복이란 마음의 평화였다. 참 관념적이면서도 이데아적 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질문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질문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지금은 질문을 통해 동반되는 혼란과 괴로움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그 안에서 평안도 얹고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방에 들어와 같은 방에 묵게 된 순례자들과 인사를 했다. 그중 캐나다에서 온 순례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수년 전 프랑스길을 문제없이 완주할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다. 이후 수상스키를 타다가 크게 다쳐 13번의 수술 후 양쪽 골반과 무릎을 다 갈아 끼웠다고 했다. 사고 이후 뇌 기능에도 손상이 생겨 눈을 감고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고 기억 쪽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힘든 시간을 보낸 후 가족들에게 (아마 그리고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두려움도 서려있었다. 몸의 상태 때문에 편히 잠을 자는 것도 힘들고 아주 조심히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몸 상태를 들은 후 순례길 완주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도전 그 자체만으로 정말 멋지고 아름다웠다. 프랑스 순례자에게 받은 질문과 캐나다 순례자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머릿속에 이미지로 펼쳐졌다. 불완전하고 불안한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그녀의 도전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앉아 있던 독일 순례자는 발에 난 물집을 계속 만지작 거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에서 시작하여 오늘이 순례길 이틀 째였다. 나의 이틀 째가 그랬듯 그의 발과 다리는 빨갛게 부어있었고 큰 물집까지 얻었다. 나는 내가 아는 기술을 동원해 그의 물집의 물을 빼주고 처치법을 알려주었다. 이 모습을 본 캐나다 순례자가 나를 '까미노 엔젤'이라고 불러주었다. 얼마 전만 해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하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했다. 앞으로도 내가 받은 도움과 친절을 다른 이에게 더 많이 나눌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여러 의미에서 내 모습의 거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오늘의 나를 감각할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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