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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4. 2023

적당한 도시락 양 찾기

D+25 포르투갈길 25일 차

✔️루트 : #PontedeLima � #Paços (약 29km)

✔️걸은 시간 : 약 7시간






Ponte de Lima의 아침



7시쯤 눈을 떠보니 모두가 이미 떠나 있었다. 귀마개 덕분에 그들이 나가는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잘 잘 수 있었다. 오늘은 눈을 뜨자마자 현재 내 상태에 집중해 보았다. 긴장해 있나? 몸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지? 일어나자마자 드는 생각은 뭔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아직도 내 순례길이 ‘늦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한되어있는 시간에 많은 것들을 하고 싶은, 그래서 빨리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나에게 그냥 하루를, 순간을 잘 보내는 데에 집중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빈 알베르게에서 눈을 뜰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불안감이 올라온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빨래를 걷으러 정원에 내려갔다. 누군가가 내 빤스에 집어둔 빨래집게를 가져갔다. 처음에는 설마 누가 가져갔겠나 싶어서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못 찾고 멍하니 빤스를 바라보았다. 잘 쓰고 있던 물건이기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다시 사면된다. 그럼에도 이 사소하고도 흔한 물건의 분실이 충격적이었던 건 내가 믿고 있던 순례길과 순례자들에 대한 순수한 환상과 신뢰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다이소에서 산거라 여기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못 봤기에 다음 알베르게에서 꼭 범인을 찾겠노라 다짐했다.


오늘따라 가방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이상하다. 바뀐 게 없는데. 아, 어제 산 음식들이 평소보다 많이 들어있다. 오늘 걷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닌데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다니나 싶었다. 빵은 탄수화물이니 필요하고, 그래도 야채랑 과일도 좀 먹어줘야 하니 몇 개 들고 다니면 좋고, 화장실을 잘 가기 위해선 하루에 요거트도 몇 개 먹어줘야 하고, 제대로 요리된 음식도 있어줘야 배가 금방 꺼지지 않고 오래가고…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한의 음식이었다.


걷다가 에너지가 떨어지면 어쩌지 라는 불안 때문에 조금씩 자주 먹으려고 배낭에 충분히 음식을 챙긴다. 그런데 걷다 보면 무거우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 더 먹게 되고, 그럼 금방 음식이 떨어져 배낭에 음식이 없는 것에 대해 불안해지고 다시 채우기의 반복이다. 


무거워서 최대한 배에 담기로 했다.


오늘은 나의 식욕과 식탐에 대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 나는 내 몸이 쓰거나 필요로 하는 것보다 많이 먹는 편인 것 같다. 식욕보다는 식탐으로 먹을 때가 많다. 그 기저에는 체력이 떨어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체력이 떨어질 때면 내가 힘없는 약한 존재, 곧 늙은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다.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것도 싫지만 힘없는 늙은이가 되는 것이 더 싫다. 많이 먹어서 살이 찌는 것도 싫지만 힘없는 늙은이가 되는 것이 더 싫다. 


아직 적당한 양의 음식을 먹는 법을 잘 모르겠다. 먹을 땐 많이 먹고 안 먹을 땐 하루종일 굶기도 한다. 이는 불규칙한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한 것에도 영향이 크다. 업무 때문에 끼니를 놓칠 수도 있으니 음식이 눈앞에 있을 땐 최대한 뱃속에 저장을 해두자는 식이다.


눈앞에 음식이 있을 땐 유튜브로 배운 영양학 지식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노력한다. 보양 음식은 웬만하면 다 먹어두고 요새 며칠 부족했던 영양소가 있으면 더 먹어주고 하는 편이다. 요즘은 맨날 걸어야 하니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려고 하는 편인데 빵을 먹다 보면 하루에 5개는 기본으로 먹게 된다. 이만큼의 양이 진짜 필요할까 싶지만 그래도 영양소가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 게 낫겠지 하면서 먹는다. 이러한 식습관을 어떻게 나에게 맞게 조절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산에서 무거운 도시락을 뱃속에 비워내며 나의 식습관에 대해 생각하던 중 순례길 3일 차에 만났던 프랑스 부부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계속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20여 일 만에 만나는 것이기에 나도 모르게 돌고래 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크게 포옹했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서로의 사진 공유하며 한참을 웃으며 대화했다.



이제는 포르토에서 시작한 사람이 다수를 이루는 순례길 위에서 존마리와 샹탈과의 만남은 오래된 가족을 만난 것처럼 마음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서로의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몇 단어와 표정만으로도 깊게 소통할 수 있었다. 그들이 오늘 묵을 마을까지 함께 걸은 후 ’À demain(내일 봐)‘라는 인사로 작별했다.




나는 이후 11km를 더 걸어 Paços에 있는 알베르게에 왔다. 이곳은 묘하게 친절하고 따듯하면서도 비즈니스적인 곳이었다. 전통 알베르게를 모티브로 하는 호텔 같은 느낌이었다. 주방에서는 한창 순례자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함께 하기 위해 빨리 씻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내려왔다. 저녁 식탁에는 네 명의 포르투갈 가족들과 함께 앉았다. 엄지와 검지로 귓불을 잡고 흔드는 것 ‘beautiful’이라는 바디랭귀지인 것을 배웠다. 그 행동이 너무 낯설어서 웃음이 터졌는데 우리는 이걸 가지고 한참을 웃었다. 내일이면 스페인으로 넘어간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밤을 포르투갈식 저녁식사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페인에서의 경험은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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