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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5. 2023

술과 사랑의 길

D+27 포르투갈길 27일 차

✔️루트 : O Porriño - Mos (약 6km)

✔️걸은 시간 : 1시간 30분







알베르게의 침대와 베개가 편했기에 잘 잘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별로였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일어나 보니 청소하시는 분이 침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 눈을 뜨며 한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침대에서 나오지만 눈치가 보여 바로 짐을 싸서 주방으로 나왔다. 주방에서도 눈치는 보였지만 어제 슈퍼마켓에서 사놓은 음식이 많았기에 어느 정도 먹고 나가자 싶었다. 밥을 먹으며 오늘 어디로 갈지 보려고 까미노 어플을 켰다. 그러나 곧 계획하지 말고 그냥 몸의 말을 듣자는 마음에 금세 껐다.


지난 며칠 나도 모르는 사이 늦은 것 같은 마음, 빨리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걷다 보니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걷는 순간을 즐기거나 몸이나 마음의 말을 듣는 것에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게 어디 있어'라고 말을 하고 알고는 있지만, 모두가 떠난 도미토리에서 눈을 떴을 때,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보다 앞선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올 때, 나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이 자꾸만 올라온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컨디션이 가능한 최대로 걷다 보니 제대로 쉬는 시간을 가지거나 일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


1층은 카페, 2층이 알베르게이다.


일단 나와서 카페에 갔다. 커피를 시켰는데 라떼가 나왔다. 다들 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사소한 거지만 포르투갈에서 에스프레소만 마시다가 라떼를 받으니 흥미로웠다. 라떼 맛도 꽤 괜찮았다. 이 카페도 알베르게였는지 사인이 있었다. 몸이 찌뿌둥해 여기에 체크인을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조금이라도 걸어보자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려서 눈을 감고 걸었다. 다리도 무거웠고 가방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6km 정도 걸었을 때 작고 예쁜 마을에 알베르게 눈에 보였다. 식당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고민 없이 체크인을 했다. 너무 졸렸기에 씻지도 않고 일단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순례길에서는 샤워를 할 때 항상 오늘 입은 옷을 손빨래한다.


식당에서 며칠 전 만난 홀란드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친화력이 좋은 이 순례자는 오늘은 이탈리아 순례자와 브라질 순례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리가 신나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브라질 순례자는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닌 
사랑의 길을 걷고 있었다. 순례길 첫 날 만난 한 순례자에게 첫눈에 반해 매일 그가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목표로 걷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산티아고에서 열릴 결혼식에 꼭 초대해 달라는 농담으로 그들을 보냈다.


너무 피곤했기에 숙소에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다시 눈을 뜨니 7시가 되어있었다.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며칠 전에 만났던 물집으로 고생하던 독일 순례자였다. 그는 오늘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통증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나의 카미노는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빨리 많이 걸어 하루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곤 ‘사실 산티아고에 꼭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데’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는데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맞네. 그렇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내 조급한 마음에 공감을 해주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뒤 쪽 건물 앞마당에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뭔지 물어보니 연극이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공기 날씨 사람들의 웃음소리 분위기가 좋아 그것들을 즐기며 앉아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알베르게에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두 순례자가 말을 걸어왔다. 술에 많이 취한 상태로 보였다.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그들은 아직 걷는 중이라고 했다.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숙소를 예약하기보다는 맥주를 더 주문하는 걸 보니 잘 곳에 대한 걱정도 없어 보였다. 들어보니 매일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며 걷는 중인 듯했다. 계획이 전혀 없는 순례길에 반해 산티아고 도착 후 가질 축하파티에 대한 계획은 꽤나 명확했다. 이런 방식으로 걷는 것도 꽤나 재미있어 보였다.


오늘 낮잠을 꽤 잤지만 아직 졸음이 많이 몰려온다. 왠지 내일도 쉬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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