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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5. 2023

나는 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D+29 포르투갈길 29일 차 

✔️루트 : Pontevedra - Caldas de Reis (약 23km)

✔️걸은 시간 : 약 5시간 30분





순례자들을 통해 Espiritual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륙을 지나는 Central 길이 아닌 경치가 아름다운 강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순례자들은 포르투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로 예쁜 길이라며 강하게 추천했다. 이 길을 선택하면 산티아고까지 2~3일 정도 더 걸린다. 빨리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과 예쁜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오늘 갈림길을 지나갈 예정이었지만 아침을 먹을 때까지 어느 길로 갈지 결정하지 못했다. 이미 몸이 많이 지친 상태에서 어떤 풍경이 날 감동 시킬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도 온 김에 포르투갈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이스피리철길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결국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기로 했다. 동전을 던지기 전에 바람을 빌었다. 



'무사히 사고 없이 순례길을 마치게 해 주세요.' 






동전 뒷 면이 나와 센트럴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떠났다. 첫 10킬로는 아주 곤욕이었다. 주된 이유는 아직 졸려서 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 까지 짜증이 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단지 졸려서인지, 한 순례자의 배낭 무게에 대한 어줍지 않은 충고가 기분 나빠서였는지, 오늘따라 길에 가득 찬 순례자들의 소음 때문인지, 몸에 누적된 피로와는 별개로 산티아고에 하루빨리 도착하고 싶은 욕심에서인지 알 수 없었다. 중간에 숲 속에서 낮잠을 자려고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곤 힘없는 발걸음으로 꾸역꾸역 걸었다.



"비워내. 다 가지려고 하지 마. 나눠. 나누면 행복이 와"



알베르게에서 떠나기 전, 배낭을 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를 보고 한 순례자가 한 말이다. 나를 놀리려는 뜻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빴다. 내 배낭 안에 든 것들을 욕심이라고 부른 것이 기분이 나쁜 건지, 나누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기분 나쁜 건지는 몰랐다. 배낭 안 물건들을 괜히 더 꾹꾹 눌러 담고 길에 나섰다. 그 말에 반응한 이유는 잘 몰랐다. 왠지는 모르지만 하루종일 배낭 안 물건들을 스캔하며 걸었다.




더 덜어낼 수 없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가방의 무게는 역시 내가 감당 못 할 무게인 것인가. 내가 지고 가기로 결정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던 물건들. 역시 덜어내야 하나.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짐을 맡길 수 있는 서비스가 있을까. 웬만해서는 짐을 맡기지 않고 내가 다 지고 가려고 했던 건 미련한 욕심이었나. 덜어낸다면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가끔 쉬는 날 예쁘게 입고 돌아다니고 싶어서 산 옷, 바다가 나오면 수영하고 싶어서 산 비키니, 피곤해서 펴보기도 힘든 전자책, 기념품인 마라톤 메달, 포르투갈길을 완주하고 나면 필요 없어질 크리덴셜, 아마 티셔츠도 세 개나 필요는 없을 거야. 가방 무게에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삼각대… 이건 필요하지 않을까? 보온병도 아마 가벼운 플라스틱 물병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 같아. 국제운전면허증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심은 비슷했다. 산티아고가 다가올수록 하루에 더 많은 키로수를 소화해서 빨리 도착해 남은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하려는 순례자들을 볼 수 있었다. 욕심을 내는 게 나만은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날 발견한다.


이제 45km 남짓 남았다. 지난 한 달 그곳을 향해 걸어왔다. 어떠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들 그곳으로 걷는다기에 시작한 길이다. 그럼에도 그곳에 도착하면 특별한 것을 경험하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도착했을 때를 상상하면 기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하루빨리 도착하길 더 간절히 원할 수록 기쁨보다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마음속에 가득 찬다.



'나는 왜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거지?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게 언제부터, 왜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된 거지?'



오늘 만난 풍경들



마음이 이렇게 어지러운 것은 떨어진 체력 때문인 것 같다. 하루종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새로운 부위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도 어지러움이 계속된다. 요거트를 너무 많이 먹었나. 아님 수돗물이 안 맞나. 
하루만 쉬고 싶은데 산티아고가 바로 코 앞이니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겠다. 근데 이제 이틀만 남았다. 할 수 있다.




도착한 Caldas de Reis는 꽤나 예쁜 도시였다. 일요일과 5월 1일 노동절 연휴로 길거리에 장이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즐기기 위해 나와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오늘 하루가 끝나고 이제 이틀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컨디션 안 좋은 걸 금세 잊어버리고 마을 전체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구경을 다녔다. 


'아, 나 지금 스페인에 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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