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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8. 2023

내 배낭 사랑해 주기

D+30 포르투갈길 30일 차

✔️루트 : Caldas de Reis - A Coruña (약 27km)

✔️걸은 시간 : 6시간






저녁 늦게 잠이 안 와 주방에 앉아 내 신체와 마음의 불편한 것들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그중에는 내 배낭 안에 든 것들에 대한 수치감도 있었다. 그것은 곧 나에 대한 수치였다. 나라는 인간을 조각을 내어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어떤 표정일까. 자신 있게 나눌 수 있을까? 서로의 조각을 나누는 것이 왜 불편할까? 결국은 다 같은 덩어리인데. 늦은 시간까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과 이미지들을 적어 내려갔다. 역설적으로 그 수치들을 바라본 후 자연스럽게 내 배낭 속 물건들이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늦은 시간 잠에 들었지만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났다. 오늘의 걷기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소음으로만 들리던 길을 가득 메운 순례자들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노랫소리처럼 들려왔다. 서로 다른 톤과 억양의 언어들이 숲의 소리에 섞여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었다. 낮고 느린 음의 나이 많은 남자그룹의 대화소리, 너무 빠르지고 느리지 않은, 대화 속에 묘한 밀당이 있는 (아마 순례길 위에서 만났을) 남녀 순례자의 대화소리, 묵직하게 점점 다가왔다가 점점 멀어지길 반복하는 자전거 바퀴 소리, 특히 소프라노 파트를 담당하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순례자 그룹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하모니의 음률을 더 쾌활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카페에 가면 웬만한 사람은 다 만났던 얼굴이다. 인사만 하고 지나간 사람들도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오랜 친구를 만난 것더처럼 서로를 반가워한다. 중간에 들린 한 카페에서는 무슨 우리 집 홈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한 것처럼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다시 만난 것이 반가운 순례자들과 대화를 했다. 이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만난 모두를 다시 산티아고에서 만나면 참 좋을 텐데.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는 매일 아침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를 크게 진행한다고 들었다. 스페인으로 진행하는 미사는 9시 30분, 영어로 진행하는 미사는 11시라고 한다. 내일 이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늘은 최대한 산티아고 가깝게 도착하기 위해 27km 정도 걸었다. 내일은 18km만 더 걸으면 된다.






산티아고에 다 와가니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첫 주가 생각났다. 발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배낭의 무게를 느꼈을 때의 충격, 매 발걸음이 곤욕이었던 순간. 한 달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 한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내 몸도 정말 많이 변했다. 나는 무리라고 생각했던 내 신체의 한계를 많이 뛰어넘은 것 같다고 생각된다. 이제 10km 정도는 아침을 안 먹고 걸을 수 있다.






도착한 알베르게는 휴양지 느낌의 공간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캠핑 느낌의 케빈을 몇 개에 침대를 놔둔 곳이었는데 작은 수영풀도 있었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풀에서 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많은 인원 수와 그들의 발랄함에 위축되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들어가니 마을 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댄스나잇이라고 했다. 음식 주문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귀로나마 함께 음악을 즐기며 저녁을 먹었다.


룸메가 된 순례자와 해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다 침대에 누웠다. 긴장된 근육들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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