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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8. 2023

31일의 여정, 포르투갈길 완주

D+31 포르투갈길 31일 차

✔️루트 : A Coruña Santiago de Compostela (약 18km)

✔️걸은 시간 : 5시간





4월 1일에 리스본에서 시작해 31일 만에 산티아고순례길 포르투갈길을 완주했다. 총 638km를 걸었다. 걸으며 몇 번이고 오늘을 상상했었다. 산티아고에 다다르는 순간, 커다란 감동이 찾아와 울컥하거나 깊은 뿌듯함을 느낄 것이라 상상했다. 상상으로 몇 번이고 이곳에 찾아와서일까, 생각보다 큰 감흥이 없었다. 산티아 도심에 다다르고 나서는 오히려 깊게 외롭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이 무리 지어 걷는데 나만 홀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걸어온 시간들을 함께 기억하며 오늘의 도착을 함께 축하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슬프기까지 했다. 


다행히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함께 걸었던 사람,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사람, 길을 물었던 사람 등 전혀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만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어 신기했다. 덕분에 처음 방문한 도시가 전혀 낯설지 않고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 집처럼 느껴졌다. 


'Congratuations!' 


눈에 보이는 모든 순례자들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었다. 누구에게 말을 걸어도 경계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걸었다는 사실 만으로 우리는 추억을 공유했고 같은 마음,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가 떠난 후 마법사들이 기쁜 마음에 모든 이들과 축하를 나누는 씬이 떠올랐다. 숙소로 떠난 순례자들의 자리를 이후에 도착한 순례자 무리들이 채우며 광장에는 축하와 기쁨의 에너지가 빌 틈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성 산티아고의 유해가 있다고 알려진 도시를 향해 걷는다. 그 유해가 진짜 산티아고인지는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고 걷는다. 걷다 보니 이 지점이 재미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향해 걷는다. 죽음이 있는 도시엔 잘 도착했다는 기쁨과 축하가 가득하다. 처음 오는 이 장소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하다. 다들 발을 절뚝이며 걸으면서도 표정은 너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게 천주교에서 말하는 천국인가? 잠시 생각이 들었다.


크리덴셜에 마지막 도장까지 찍고 증서를 받았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배낭을 탈탈 털어 모든 옷을 세탁기에 넣고 드라이까지 했다. 세탁기에 세탁이라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샤워를 한 후 아름다운 산티아고 밤거리를 지나 다시 대성당으로 왔다. 대성당이 보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완주를 축하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음악소리를 따라 대성당 앞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 밴드의 버스킹이었다. 사람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장면이 정말 아름다웠다. 역사가 묻어있는 건물에 칠해진 노란 조명, 쌀쌀하지만 낮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의 공기, 기꺼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이 모든 게 하나의 아름다운 씬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걸은 탓에 저녁을 먹은 후 반쯤 눈에 감겨 있던 우리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여 모두와 함께 춤을 추었다.


산티아고순례길 완주를 축하하기에 정말 완벽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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