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백수 김한량 Nov 18. 2023

순례길 위에서 처음 맞게 된 코로나

D+39~43 코로나 휴식

✔️루트 : San Sebastián 휴식






밤새 땀에 흠뻑 젖어 뒤척였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코와 귀가 다 막혔지만 아주 못 걸을 정도로 아픈 것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걷기로 하고 혹시 몰라 여분으로 산 코로나테스트킷으로 검사를 다시 했다. 수 없이 한 코로나테스트에서 처음 보는 두 줄이 나왔다. 드디어 걸렸다. 코로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숙소 측에 알려야 하는 건지. 자가격리가 필요한지.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누군가에게 딱히 알릴 필요나 격리가 필요하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접수처에 가니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응급실 접수실에서 별말 없이 봉지에 밀봉한 선명한 두 줄이 나온 코로나 검사지를 내밀었다. 간호사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타지에서 병균취급을 당하거나 격리가 되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병원 관계자들은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한 간호사가 다가와 응급 환자실로 안내했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고 그냥 일상생활 계속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식당도 가도 되고 다 해도 된다고 한다. 그래도 코로나라는 이름 때문에 뭔가 찝찝했다. 걷는 걸 잠깐 멈추기로 했다. 
다행히 증상은 일반 감기랑 비슷한 정도였다. 첫 이틀은 자판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약을 먹고 계속 잤다. 열이 좀 내리자 숙소 앞 슈퍼까지는 걸을만해서 이것저것 몸에 좋아 보이는 건 다 사다 먹었다. 사실 코로나 덕분에 덜 풀린 피로를 제대로 충전할 수 있었다. 순례길에 오른 후로는 쉬는 날에도 여기저기 구경 다니느라 제대로 쉰 적이 잘 없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쉬었다. 오랜만에 휴대폰으로 유튜브도 봤다. 아픈 건 괴롭지만 쉼이 필요한 시점에 잘 걸렸다 싶었다.



4일 째 되는 날엔 산세바스티안 도시 구경도 다녔다.


슈퍼항체를 가져서 바이러스로 인류가 멸종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가 되는 행복한 상상을 이제 더 못 하는 게 좀 아쉽긴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딱지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