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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8. 2023

그래서 해는 언제 뜬다고?

D+46 북쪽길 4일 차

✔️루트 : Deba - Markina Xemein (약 25km)

✔️걸은 시간 : 8시간 12분








북쪽길을 걷는 내내 비가 왔다. 너무 춥다. 덜어냈던 후리스와 바람막이 생각이 났다. 패딩 위에 우비를 입어서 그래도 열을 잡아주지만, 조금은 계속 추운 상태로 계속 걷는다. 비는 계속 오고 걸을 때 난 땀 때문에 잠깐이라도 멈추면 너무 춥다. 감기를 이미 걸린 상태니 다행이다. 감게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다. 해 좀 떴으면 좋겠다 제발. 계속 이렇게 비가 내리면 옷을 더 사야 할 것 같다. 이제 알베르게에 가도 진짜 필요하지 않은 이상 빨래를 잘 안 한다. 안 마르니까.


알베르게엔 신발을 신고 못 들어간다고 들었다. 포르투갈길을 걸을 땐 그런 알베르게도 없었고 이유를 이해 못 했는데 북쪽길 와서야 알게 됐다. 진흙이 신발에 가득 묻어서 정말 더럽다. 신발도 매일 젖는다. 이제 뭐 하나 완전히 마른 상태가 되는 건 포기했다. 어차피 걷기 시작하면 또 젖는다. 



'여기는 항상 이렇게 비가 와?'

'나 어렸을 때는 비가 더 많이 왔어. 근데 기후위기 때문에 요새는 많이 건조해졌어.'



주민들을 마주칠 때면 질문을 했다. 해는 언제쯤 볼 수 있냐는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항상 라떼였다. 오늘 아침에 카페에서 만난 주민의 대답은 더 신선했다.



‘그래서 여기는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게 일상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자연이 아름답지(That is how we have so much green)‘



초록초록하긴 하다



보통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밖에 나가기 힘들다‘, ’우울하다‘, ’가끔 해가 뜨면 신난다’ 등의 인간중심적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 주민의 대답은 자연친화적이었다. 문제를 어디에서 바라보는가를 바꾸는 것만으로 대답이 크게 달라졌다. 이 답을 듣고 나서는 괜히 축축한 땅보다는 푸르른 나무들에 눈길이 갔다. 


이쪽 동네도 해가 뜰 때도 있긴 하다는데 나는 아직 못 봤다. 진짜 순례길을 걷는 바이브가 있긴 하다. 비 오는 날의 산새는 그 나름의 운치가 있다. 거의 산속에 있다 보니 도착한 마을과 알베르게가 유난히 더 반갑다. 판초우의와 등산스틱을 장착하고 진흙범벅이 된 사람들이 모여든다. 따듯한 물의 샤워가 퇴근 후 맥주 한 캔처럼 유난히 더 시원하다. 이렇게 걷다가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진짜 감동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걷다가 중간 마을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에 자주 들리던 포르투갈길이랑은 좀 다른 느낌이 있다.





오늘도 미각이 없는 채로 음식을 씹었다. 배가 부르다는 감각에 미각이 많은 영향을 미치나보다. 음식을 삼키다 보면 이 정도 삼켰으면 배가 부른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배가 부른 건가 한참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 없이 음식을 삼키다 보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먹었을 때야 배부른 걸 깨닫는다. 그냥 내가 바보인 건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주민을 만나 함께 걸었다. 언어는 안 통 했지만 대충 느낌으로 여러 대화를 하며 걸었다. 내일 비토리아라는 도시에서 있을 마라톤을 신청했는데 아직 어떻게 갈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주민을 만난 김에 가는 방법을 물어봤다. 그는 마키나 예멘에는 그곳으로 가는 직행 버스가 없고 자동차를 타고 가도 3시간이 넘게 걸리니 깔끔하게 포기하길 권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기에 그의 조언대로 하기로 했다. 





Markina-Xemein



도착한 Markina-Xemein은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주민 분께선 나를 만난 게 반가웠는지 마을의 유적지를 관광을 시켜주고는 알베르게까지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알베르게는 아주 큰 성당 건물의 수도원이었는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큰 슈퍼마켓에 갔다. 추웠기에 따듯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수프와 바나나, 토마토 등을 샀다.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와서 추웠다. 다행히 방에 담요가 있었다. 따듯한 방에서 자고 싶다. 내일은 꼭 해가 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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