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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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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8 북쪽길 6일 차 

✔️루트 : Zanarruza - Gernika (약 19km)

✔️걸은 시간 : 약 6시간






아침에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는 순간이 참 좋다. 모르는 사람들이 우연히 한 공간에 모여든다. 함께 씻고, 먹고, 웃고 떠들며 함께 잠에 든다. 그리고 걸을 땐 다시 각자가 된다. 다음 알베르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이도 있고, 함께 걷기로 한 이도 있고, 함께 걷다가도 오늘은 따로 가기로 한 이들도 있다. 부엔까미노라는 인사로 서로의 안녕을 빌면서도 아쉬워하는 이는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같은 길을 가기에 결국은 다시 만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만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다들 혼자 걷기 시작했지만 친구를 찾아 함께 걷는 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포르투갈길을 완주 후 산티아고까지 혼자 걸었을 때는 특히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외롭지 않다. 내가 만난, 혹은 만날 모든 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다리와 피부의 감각은 확실히 돌아오는 중인 것 같다. 이제 오르막길을 오를 때 종아리와 무릎이 당긴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면 숨이 차면서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 버프로 쉼 없이 올라가던 오르막길을 이제는 몇 번이나 쉬며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돌아온 통증이 반가웠다. 약해진 게 반가운 건 처음인 것 같다. 통증이 돌아옴과 동시에 컨디션도 좋아졌는지 패딩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았다.


오늘은 Gernika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약 10년 전 빌바오의 극장에 올리는 서커스 공연 준비 과정을 기록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잠시 동거동락했던 단원 중 한 명이었다. 친구가 순례길 근처에 살았기에 나를 보게 위해 게르니카로 와주었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데도 우리의 시간은 냉동 보관됐던 건지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서로의 지난 안부를 묻고 다른 친구들의 소식도 들었다. 한 때의 추억으로만 기억하던 친구들의 소식이 무척 반가웠다. 




바스크컨트리 출신인 친구는 걸으며 게르니카가 바스크컨트리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고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의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도시에는 1937년 당시 나치의 폭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프랑코정권 이전의 바스크컨트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순례길만 걸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도시의 부분들을 친구의 설명과 함께 구경하니 정말 좋았다. 프랑코독재시절 학교를 다닌 부모님은 바스크어를 못 하시고 이후에 태어난 친구는 바스크어로 교육을 받고 지금도 주로 쓰는 언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오늘의 알베르게



이후 친구가 알베르게까지 차로 태워다 줬다. 미리 알베르게를 예약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주인은 이미 침대가 가득 차고 텐트 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12유로나 받았기에 최소 실내 창고에 텐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정원에 텐트가 쳐 있었다. 뭔가 캠핑 느낌이라 너무 신나면서도 비가 오다 말다 했기 때문에 추울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의 밤을 더 걱정하던 다른 순례자들이 자신이 안 쓰는 담요를 가져다주며 곧 텐트가 담요로 가득 찼다.


산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였기에 저녁은 주인이 준비해 주어 다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따듯한 수프가 정말 반가웠다. 간단한 메뉴였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먹는 음식에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후각과 미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기에 완벽하진 않지만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샤워 후 걱정 가득 텐트에 들어갔는데… 오. 마이. 갓. 정말 아늑했다. 하나도 안 춥고 빗소리도 너무 좋고 분리된 나만의 공간이 아주 최고였다. 텐트를 하나 살까 고민될 정도였다. 빌바오 가면 구경이나 가봐야겠다.




10년 전 우연한 기회에 스페인에서 한 달 정도 지냈던 적이 있다. 빌바오에서 서커스단과 함께 동거동락하고 인디뮤지션들과 북부 스페인에서 순회공연을 다녔었다. 선명하진 않지만 이때의 시간은 내 인생 중 마법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때를 더 많이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아마 내일쯤 빌바오에 도착할 것 같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빌바오엔 어떤 추억의 흔적들이 남아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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