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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20. 2023

멈출 줄 아는 마음

D+49 북쪽길 7일 차

✔️루트 : Muxika - Larrabetzu (약 10km)

✔️걸은 시간 : 3시간






어젯밤 잘 먹고 잘 잤기에 컨디션이 꽤나 괜찮았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기침을 많이 했지만 천천히 미각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오늘 아침엔 커피 맛이 살짝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모인 순례자들이 오늘 어디로 갈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26km 거리에 있는 빌바오로 향하는 듯했다.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어제 길거리 시장에서 산 레인코드 덕분에 따듯한 상태에서 걸을 수 있었다. 북쪽길에 온 후 처음으로 비가 오지 않는 거리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넘게 내리 내린 비 때문에 아직 땅은 많이 질었다. Larrabetzu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에 낀 구름이 걷히고 해가 따듯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햇살이 몸에 닿은 곳이 따듯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톡톡 터지며 온몸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아, 이런 것이 해였어. 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었지만 햇살을 즐기기 위해 이 마을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알베르게가 열려면 두 시간 정도 남은 시간이었다. 번호표 대신 알베르게 앞에 배낭을 놔두고 슈퍼에서 먹을 것을 사 왔다. 간단한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당근과 토마토 참치 등을 샀다. 알베르게 앞에서 해를 쬐며 간식을 먹었다. 다른 순례자들도 나와 같은 상태였던 것 같다. 모두 해가 잘 드는 벤치에 모여 앉아 말없이 해를 쬐고 있었다. 살면서 수없이 본 해인데도 이렇게 해가 반가운 적은 또 처음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한국은 참 축복받은 날씨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해.... 해가 떴다!!!




체크인 한 이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일단 그동안 말릴 시간이 없어 못한 빨래를 했다. 수건과 옷에서 구정물이 장난 아니게 나왔다. 이후 햇살을 맞으며 동네 구경을 다녔다. 작은 동네여서 30분도 안 되어서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알베르게에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요리했다. 주방이 없었기에 전자레인지로 당근을 익히고 토마토와 참치, 치즈를 잘라 넣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빵과 함께 끼니를 때운 후 침대에 누워 밀린 일기를 썼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방 잘 시간이 되었다. 


아픈 탓도 있겠지만 빨리 가고 싶다는 조급함이 많이 준 것 같다. 처음에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20km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과 모든 길을 내 발로 걸으려는 욕심에 내 몸을 힘들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쫓아오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버리기 힘들었다. 
북쪽길 1일 차 때 다른 순례자가 몸이 안 좋은 나에게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가길 조언했지만 내 발로 걸어내고 싶은 욕심에 식은땀을 흘리며 힘들게 숙소에 도착했었다. 그에 반해 지난 며칠간 적당한 거리를 걷고 멈출 줄 아는 나의 선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늘도 멈추길 정말 잘했다.



마을 전경
오늘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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