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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28. 2023

나의 집 나의 고향, 이 아오스딩

D+55 북쪽길 13일 차

✔️루트 : Liendo - Laredo (약 8km)

✔️걸은 시간 : 2시간 40분








비가 올 듯 안 올 듯 구름 낀 아침이었다. 오늘도 걷기 전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더 시킬까 고민하던 중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 떴다.  



‘오늘 할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셨다.’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는 몇 달 전 빙판길 위에서 넘어지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 상태였다. 연로하신 몸이라 더디게 회복되는 것 외에 크게 아프신 곳은 없으셨기에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머리가 멍했다. 너무 놀라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한참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상황 파악이 되고 눈물이 나기 시작한 건 한참 뒤였다. 뭘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 몰랐다.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는 건가? 그럼 순례길은 어떻게 해야 하지? 산티아고에 두고 온 짐은?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여유자금이 없는 상태였기에 지금 돌아가게 되었을 때 발생할 비용들을 어떻게 마련할지 대책이 안 섰다. 이런 상황에 비용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는 나 자신이 못나보였다. 이 부끄러운 마음을 가족들에게 말하지는 못 하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다.



‘고민을 하는 걸 보니 할아버지랑은 친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장례는 결국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 엄마의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그랬다. 할아버지는 떠나셨고 나는 할아버지를 뵙는 것보다는 엄마의 마음이 중요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인 건 나는 할아버지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가? 할아버지는 결국 엄마의 가족이라고 느끼는 건가? 질문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할아버지는 어느 하나 그대로인 것이 없던 나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집이었고 고향이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따듯하게 받아주셨다. 방황하던 시절 갈 곳이 없는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시고 따듯한 밥을 차려 주셨다. 밥에서 모락모락 나던 김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이 경험은 나에게도 돌아갈 가족이 있구나를 처음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다들 정신이 없는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카페에 있던 순례자들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항공사에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일단 정보를 알아 둔 후 엄마와 통화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갑자기 귀국할 상황에 대비해 큰 도시로 이동하는 것? 진짜 모르겠다. 그래. 일단 신자셨던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리자.



순례길 오른 후 처음으로 스스로 성당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무슨 우연인지 내가 걷고 있는 순례길은 성당과 성당이 이어진 길이었다. 내가 있는 Liendo라는 마을에는 성당 문이 닫혀 있었기에 다음 성당을 찾는데에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Laredo라는 마을에 다다르니 큰 수도원의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수녀님이 앉아계셨다. 구글 번역기 화면을 수녀님께 보여드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녁 미사에 할아버지 연도 미사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순례길을 걷고 있어요. 지금 제가 할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수녀님은 저녁 미사 전에 신부님이 도착하시니 그때 신부님께 여쭤보라고만 하셨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7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다. 가족들은 어차피 장례식에 참석 못 하니 순례길을 끝내고 와서 할아버지를 찾아뵈라고 했다. 그러나 통화를 끊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을 때 같은 방에 묵게 된 캐나다 순례자에게 나의 고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순례길은 천 년이 넘게 여기에 있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은 이번 한 번이야."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곤 순례길 위에서 만나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한국 순례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직접 이야기해보는 게 어떠냐며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통화로 처음 인사를 나눈 그는 나의 마음에 깊게 공감해 주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건 최선의 선택일 거예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선명해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큰 마음먹고 온 순례길도 중요하니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오자. 이렇게 결정하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다시 스페인에 돌아가는 일정이라면 반대라고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기도. 냉담자로 오랜 시간 살아온 이가 갑자기 시작하는 나의 기도에는 얼마나 큰 힘이 있을까. 그보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어쩌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 기도를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환경에 놓여있었다. 기도를 하는 방법을 까먹은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들리는 성당마다 할아버지를 위한 초를 켜고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미사를 드리며 오랜만에 기도문을 꺼내 보았다. 모든 문장이 낯설었다. 각 문장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였다. 성부와 성자, 성령은 무엇일까. 죽음이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죽음을 맞이하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일까? 마리아의 품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분명 좋은 곳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슬퍼하는 나의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가족의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실천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인간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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