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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Nov 29. 2023

El Camino de La Vida (인생의 길)

D+56 북쪽길 14일 차

 ✔️루트 : Laredo - Güemes (보트, 히치하이킹 6km 제외 약 24km)

✔️걸은 시간 : 7시간 40분






마음이 참 이상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와 상관없이 내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오늘도 걷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생각하며 웃다가 울다가 또 금세 고요히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순례자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 머리의 순례자가 왠지 어제 통화를 한 한국 순례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나의 짐작이 맞았다.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통화를 통해 깊은 마음의 공유를 나눈 후여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함께 했다.


그는 이룬에서부터 시작을 했다고 했다. 나와 같은 시기,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경험은 많이 달랐다. 매일 혼자 걸어온 나와는 다르게 그는 많은 순례자들을 만나고 함께 걸으며 단톡방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이룬에서 만났던 한 순례자가 북쪽길이 너무 관광지스러워 순례길 걷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같은 길을 걸어도 이렇게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음 마을인 Santoña에 가려면 보트를 타야 했다. 표지판 하나 없는 모래사장 끝에서 기다리니 보트 한 대가 다가왔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를 위한 초를 켜기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13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었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그 분위기에 압도당했는데 성당 안에 있는 모든 조각물과 그림들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길게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기도를 드리는 게 먼저인 것 같아 초부터 키고 기도를 드렸다. 마침 성당 앞에서는 성물을 팔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축성을 담기 위한 묵주를 하나 구매했다.







함께 걷는 순례자는 컨디션이 안 좋아 경로 내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에 가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딱히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었기에 그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San Miguel de Meruelo라는 마을에 가장 가까운 숙소가 있었는데 알베르게는 아니고 호텔이었다. 방 하나에 50유로나 하였다. 알베르게가 평균 15~18유로인 것에 비하면 정말 비싼 가격이었다. 혹시 1인실을 셰어 하는 것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알베르게가 있는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우리 둘 다 피곤한 상태였기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시동을 거는 차에게 다가가 지도를 보여주며 혹시 Güemes로 가냐고 물었다. 바디랭귀지로 다리가 아파서 히치하이킹을 시도 중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는 그쪽으로 가지 않지만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차에 탔다. 차에서 내린 후 한국 순례자가 가방에서 모나미펜을 꺼내 운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곤 모나미의 뜻(mon ami, 나의 친구)을 설명했다. 선물을 챙겨 올 생각을 하다니 정말 예쁘다. 나도 뭐 좀 챙겨 올 걸.





Güemes의 알베르게는 꽤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순례자를 맞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알베르게에 들어서니 직원이 물과 쿠키를 가져다주었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환영 절차일 수 있지만 이 작은 환영 인사가 '오늘도 잘 걸어내느라 고생 많았어'라는 메시지로 다가와 크게 감동을 받았다. 알베르게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운영되는 곳이었다. 순례길 어플에는 알베르게의 침대 수도 표시가 되는데 이 알베르게에는 100개라고 적혀 있었다. 오타이거나, ‘우리 집에는 사탕 백 개 있어~‘와 같은 ’많다‘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근데 진짜 100개가 있었다. 그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각 공간에는 알베르게의 역사를 기록한 사진이 가득했다.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이 알베르게에는 도착 후 스케줄표가 있었다. 알베르게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미팅 후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산타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알베르게 주인이 알베르게의 역사와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설명을 했다. 천주교 신부인 그는 여행을 통해 인생을 공부를 하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지금의 공간을 완성했다고 했다. 지금도 어떠한 정부나 교회의 도움 없이 순례자들의 도네이션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신부님에게 다가가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부탁드렸다. 신부님은 ‘El Camino de La Vida(인생의 길)’를 주제로 벽화를 보여주시며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며 스스로의 산티아고를 찾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셨다. 신부님은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에 대해 강조를 했다. 순례길의 마지막은 산티아고에 있는 것이 아닌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매일 걷는 행위에 대한 지쳐감을 느끼고 있는 와중 만난 이 만남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부고 소식 이후 오늘 많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작년 남편을 잃은 후 오른 순례길 위에서 남동생의 부고소식을 접하게 된 순례자, 올 3월 순례길에 올랐다가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 캐나다에 돌아갔다가 건강 회복 후 다시 순례길 위로 돌아온 순례자, 유학 중 어머니의 부고소식에 본국에 돌아가야 했던 순례자, 만나진 못 했지만 순례길에서 아들의 부고소식으로 집으로 돌아간 순례자 이야기,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모신 후 무작정 순례길에 온 순례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실의 이야기를 공유해 주고 큰 포옹과 함께 위로를 전달했다. 포옹을 통해 내 몸에 전달되는 온기는 형언하기 힘든 큰 사랑과 따듯한 위로를 전달했다. 걷기와 자신에게 집중하던 나의 순례길이 다른 국면을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련의 만남들이 ‘인생은 결국은 사람이고 사랑이다.’라는 할아버지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생전에도 가족의 사랑을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가 가족의 단위를 넘어선 더 큰 인간의 사랑에 대해 알려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나의 이마를 따듯한 손으로 감싸 기도해 주시고 입을 맞춰 주셨다. 오늘 밤 이 분이 만드신 이 큰 가족의 품에 도착한 것이 정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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