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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Jan 11. 2024

순례길 제대로 즐기는 꿀팁 대방출

D+67 북쪽길 26일 차

✔️루트 : Duesos - Priesca (약 15km)

✔️걸은 시간 : 3시간 53분






아침은 정말 상쾌했다. 갈라진 구름 틈으로 빛나는 햇빛이 정말 예뻤다. 눈앞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길게 펼쳐져 있었는데 차도 없고 사람도 없이 고요했다. 갑자기 감사함이 가득 차올랐다. 오늘 어떤 길을 만나게 될지 어디에 머무르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이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하다.


처음 순례길을 걸을 때는 문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식은땀이 흐르는 한이 있더라도 볼일은 화장실에서 보겠다는 객기를 부렸었다. 두 달 정도 걷다 보니 이제는 아무 잔디에 소변을 보는 게 익숙하다. 오늘도 앞 뒤에 사람이 없는 것을 대충 확인하고는 갓길에 쭈그려 앉았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포수를 맞으며 정신없이 흔들리는 잡초들을 구경했다. 이 길의 푸르름에 수많은 순례자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더운 날씨에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은 힘들었다. 아스팔트가 머무른 열이 발바닥을 데워 발의 통증을 가중시켰다. 아스팔트에 묻은 나무의 그늘만 찾으며 ‘저 그늘까지만 힘내서 걸어보자 ‘는 목표로 걸어가고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배가 고팠다. 지도를 보니 16km 이내에 카페가 없었다. 걷다가 기침이 나기 시작했고 힘도 없었기에 어느 가정집 앞 그늘에 앉아 쉬었다.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먹을 게 있는지 물어볼까? 음식을 구걸할 정도로 배고프면 히치하이킹해서 한시 빨리 마을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 몰라 구글번역기로 미리 글을 번역해 놨다. 


‘혹시 남은 음식이 있나요? 배가 너무 고파요. 근데 카페나 식당이 없어요.’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음식 구걸까지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걷기 위해 일어났는데 힘이 없어 어지러웠다. 에라 모르겠다. 열린 창문에 대고 소리쳤다.



‘오-올라!! 빠아르도 옹—!!’ (안녕하세요!! 실례합니다!!)



내 가난한 스페인어로선 최선의 외침이었다. 몇 번을 외쳤지만 반응이 없었다. 포기하고 다시 길을 걸었다. 앞으로는 음식 없이 다니지 말아야지. 반성을 하며 힘이 없이 걸었다.



5km쯤 걸으니 알베르게 하나가 나왔다. 알베르게 주인에게 먹을 것을 파는지 물었다. 주인은 이상한 대답을 했다. '음식은 있지만 팔 수는 없다. 오직 여기에 묵는 사람들에게만 판다' 아니, 이건 무슨 장사치의 수작인가 싶었다. 근방에 슈퍼나 식당이 없는 걸 이용해서 배고픈 순례자들을 묵게 하려고 하는 건가? 너무하다 생각했다. 알베르게 주인에게 일단 음식이 뭐가 있는지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주방에 먹을 것이 가득했는데,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고 요리를 해야 했다. 그제야 알베르게 주인의 말을 이해했다. 더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일단 먹어야 살 것 같아 이곳에 묵기로 결정했다.





음식을 할 수 있는 재료들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괜찮아 보이는 것들을 골라서 냄새에 의존해 시즈닝을 해가며 요리를 했다. 요리를 한다는 애가 계속 냄비에 코를 박고 있으니 불안해 보였는지 주인 분이 요리를 도와줬다. 음식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때려 넣은 것 치고는 맛이 괜찮았다.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배를 채우고 샤워를 했다. 그런데
씻고 나니 금방 또 배가 고팠다. 과자와 빵을 몇 개 더 샀다. 


‘쟤는 쉬지 않고 계속 먹네’


알베르게 주인이 스페인어로 나를 가리키며 다른 순례자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순례자가 자신의 샌드위치를 나눠주었다. 그렇게 나는 저녁을 먹기 시작한 다른 순례자들의 무리와 함께 제2의 저녁을 먹었다. 테이블에는 나 외에 3명의 순례자가 있었는데 흥미로운 대화가 시작 됐다. 스코틀랜드(이하 스콧) 순례자는 내일 버스를 타고 히혼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보통 큰 도시에 들어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길게 이어지는데 걷기에 힘들어서라고 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독일 순례자는 좋은 길만 선택해서 걷는 게 무슨 의미냐 했다. 좋지 않은 길도 다 걸어내는 것이 순례길의 경험이라고 했다. 스콧 순례자는 어차피 걷는 데에 허락된 시간이 정해져 있고 걷기 좋은 길을 선택해서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게 낫지 않겠냐 했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걷는 행위 자체에서 고통은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각해봐. 500년 전 한 순례자가 걷고 있어. 발이 아파. 더 걸으면 부상을 당해서 산티아고에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근데 마침 마차가 지나가. 안 탈까? 탔을 걸?"


이 둘은 '무엇이 진정한 순례길 걷는 법이냐'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의견을 서로에게 이해시키려 하는 그들을 관전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모든 의견에 공감을 했다. 스콧 순례자의 의견에 더 동의를 하지만 내 순례길은 독일 순례자가 말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 순례자에게 짐을 다음 장소에 보내는 서비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프랑스 순례자가 조심스럽게 그가 이미 그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 했다. 그는 짐이 가벼운 게 걷는 걸 즐기는데에 도움 된다고 대답했다.


순례길을 계속 걸을수록 점점 더 느끼는 점은 순례길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걷던 내가 걸어보지 않은 그 경험을 어찌 감히 평가할 수 있을까. 
순례길에 오기 전 봤던 순례길 관련 유튜브 동영상들이 떠올랐다. 


’이건 완전 꼭꼭 필수품. 이건 선택 사항‘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같은 순례길이라도 걷는 길, 사람에 따라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긴 대화의 끝은 정원에 피어 있던 매운맛이 나는 야생화를 나눠 먹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늘의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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