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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May 06. 2024

Primitivo vs Norte 선택의 시간

D+68 북쪽길 27일 차 

✔️루트 : Priesca - Vega de Sariego (약 27km)

✔️걸은 시간 : 7시간 16분







아침에 눈을 뜨니 걸을 땐 몰랐던 딱딱하게 굳은 몸의 근육통이 느껴졌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사다리 층계를 밟을 때마다 느껴지는 발의 통증과 함께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상쾌함과 차가움의 사이에 있는 아침 공기를 헤치고 화장실에 갔다. 변기에 앉아 소변이 빠져나가며 비워지는 방광과 함께 외롭다는 감정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싸며 일상이 그리움이 올라왔다. 마음의 허기를 빵조각으로 채워냈다.








숲길을 지나가는데 여러 종의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으로 듣던 ASMR보다 더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새소리에 녹음하기 바빴다. 아름다운 숲과 갖가지 동물과 곤충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팔려 걷다 보니 어느새 큰 도로 옆을 지나가는 길이 이어졌다. 어플에는 좌회전을 하라고 했지만 길이 없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육교가 보였다. 


'아마 저 길인가 보다.' 


눈 바로 앞에 육교가 있었지만 올라갈 방도가 없었다. 100m도 엑스트라로 걷는 게 싫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다음 길이 나오길 기대하며 계속 걸었다. 아마 내가 걸었어야 하는 흙길이 보였다. 가시덩굴과 높게 올려진 철조망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걸으니 터널이 나왔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고속도로 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반대편 차도에는 나가는 길이 있을까 차가 없을 때 뛰어 도로를 건넜다. 바람으로 내 살을 베어 낼 것처럼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제저녁 순례자들과 찌부러진 빵을 보며 로드킬 룩이다 농담한 것이 생각났다. 그 농담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터널을 지나가기로 했다. 대피소에 있던 SOS 기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로 내가 여기에 들어온 게 보였었나 보다. 차 소리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 갇혔어! 나가는 길이 없어!!‘



그도 내 말이 잘 안 들리는 듯했다. 그가 뭐라고 더 말을 했지만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마다 압력이 몸으로 전달 됐다. 터널을 빠져나와 철조망으로 갔다. 어쩔 수 없다. 여기를 넘어야 한다. 중간을 지탱하는 기둥을 지지대 철조망에 발을 올렸다. 반대편 철조망에 발을 옮겼지만 얇은 철사가 너무 흔들려 결국은 철조망 위에 앉았다. 뾰족한 철의 끝에 레깅스가 찢어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문제는 무성한 가시덩굴이었다. 최대한 발로 밟아 지나려고 했지만 발에 닿지 않는 가시들이 몸을 찔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 후 가시덩굴 너머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갔다.



‘헬프미이이이!!!!!!!!!’



단전에서 모든 힘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고맙게도 그는 나를 위해 가시덩굴을 밟아 길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다시 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짧은 시간에 받은 스트레스와 안도감에 몸에 힘이 빠졌다. 마을에 도착해 제일 먼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쉬었다.







방금 있던 고생을 보상하듯 카페에서 오랜 시간 동안 쉬었다. 샌드위치에 또띠아까지 해치우고 나서야 내가 있는  Villaviciosa라는 마을이 프리미티보 길과 북쪽길을 선택하기 전 마지막 마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난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했다. 둘 다 가보고 싶기 때문이다. 


프리미티보는 높은 산을 지나가는 길이다. 반면 북쪽길은 계속 해안길을 지난다. 바다냐 산이냐였다. 많은 이들이 프리미티보를 추천했지만 힘들다고도 했다. 이미 피로가 많이 쌓인 현재 상태에서 산을 걷다가 몸이 부서질까 걱정되었다. 또한 이제 막 스페인 해변의 아름다움에 빠지기 한 시점에서 다시 해변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결국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기로 했다. 처음이라는 의미의 프리미티보는 1이라는 숫자, 북쪽길은 얼굴이 그려진 쪽으로 하기로 했다.




숫자가 나왔다. 이후에는 미련 없이 Oviedo 표지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프리미티보 길 시작도 아닌데 벌써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북쪽길 첫 일주일 때 본 산새의 풍경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9시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문이 닫혀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다. 정보를 물어보려 알베르게 앞 바에 갔다. 술을 제조하던 바의 주인이 한마디를 했다.



‘알베르게?’



이 한마디에 모든 걱정이 해결되었다. 이 사람이 알베르게 주인이었다. 원하는 침대를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말한 뒤 주인은 문만 열어주고 바에 다시 돌아갔다. 이런 방목형 알베르게 너무 좋다.



비어있는 방 하나를 선택해 짐을 풀었다. 방바닥에 원피스를 넓게 깔고 오랜만에 가방에 있는 모든 짐을 꺼내 펼쳐놨다. 그리고 철조망 넘다가 찢어진 레깅스를 꿰맸다. 새로 살까 했지만 여기에 패션 위크 때문에 온 것도 아니니 그냥 꿰매 입기로 했다. 
물집용으로 가져온 실과 바늘을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다. 물집은 없지만 오래 걷다 보니 구멍 나는 것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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