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몰랐을 때
나는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혀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아 들어왔던 미로의 입구로 다시 나가는건 이 게임에서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버텼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출구가 없는 미로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들어온 것 이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네비게이터는 존재하지 않았던 1972년 어떤 꼬마가 겪었던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Wrong Roads
아빠는 어느날 "매트, 우리 콜로라도 강으로 가자!"고 하셨어. 나는 그때 일곱살이었고 우리 가족은 유타 세인트조지에 있는 외가 및 친가의 조부모님 댁을 각각 방문하던 중이었지. 정말이지 콜로라도를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나는 "앗싸!" 라고 소리쳤어.
홀랜드 할아버지(아빠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의 트럭과 손으로 직접 그리신 지도를 주시고 우리가 안전하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주셨어. 우리는 유타와 아리조나 지역을 거쳐 콜로라도를 향했고, 정말 멋지게 펼쳐진 자연과 사막, 그리고 계속해서 펼쳐지는 계곡으로 경치를 따라 계속 갔어.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멋진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해!!!
우리가 막 그랜드 캐년을 구경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고 아빠는 이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지! 협곡에서의 밤은 너무 깜깜해서 무섭기때문에 아빠와 나는 서둘러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차에 탔고 어느 정도 갔을 때 할아버지가 지도에 그려주지 않은 두 갈래 길이 나왔어. 우리의 차는 잠시 멈춰 서 있었어. 그리고 아빠는 차에서 내려 길이 난 두개의 길 한 가운데 서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시면서 고민하셨어.
어디로 가야 하지?
이제 해가 지고 있고 집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찾으려면 아빠는 지금 바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 아빠가 운전석으로 다시 와 앉으시면서 "매트, 우리가 어디로 가면 좋을까?" 라고 물으셨어.
"모르겠어요, 아빠는요?"
"큰일인데! 잘못된 길로 가게되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집으로 안전하게 가는 길을 놓치게 되면 포장되지 않은 깜깜한 길을 쉽지 않게 운전하게 될꺼야."
우리 가족은 집에 문제가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모두 함께 기도를 하곤 했어. 그래서 아빠와 난 우리가 지금이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기도를 마쳤을 때 아빠와 나는 같은 생각으로 "왼쪽" 이라고 말했어.
아빠는 차를 왼쪽으로 몰았고 우리는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운전해 가고 있었는데....
10분정도 지났을 때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막다른 길로 다다랐지.
난 믿을 수 없었어. 난 매우 당황했는데 아빠는 막다른 길을 보시자마자 재빨리 차를 휙 돌려 우리가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나왔어. 그리고 다른 길로 어느정도 갔을 때 우리는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어. 밤이 되었지만 다행히 그 길엔 적당한 불빛이 있었고 우리가 거의 세인트조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짙은 어둠이 별들까지 먹어버려서 작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쯤 되었을 때 아빠에게 물었지.
"아빠, 우리가 두 갈래 길 앞에서 기도했을 때 어째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된거죠?
그 길은 분명 잘못된 길이었는데 왜 우리가 그 길로 가야했을까요?"
"매트, 글쎄.. 나도 운전하는 내내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아마 오늘 우리가 뭔가 배운것 같구나."
"우리가 만약 올바른 길로 먼저 갔다면 아마 한 30분쯔음 지나서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나왔을 때 아마 그 왼쪽길로 갔었어야 한다는 유혹이 강하게 들었을꺼다.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또 잘못된 길로 가서 막다른 곳을 너무 늦게 발견하게 되었을꺼고 올바른 길로 다시 들어서기까지 시간이 더욱 많이 걸렸을꺼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빠는 오히려 우리가 막다른 길을 먼저 발견하게 된 것이 다행인것 같다."
-2005년 7월 뉴이라 Matthew Holland의 글을 인용
디자이너의 소박한 마음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부끄럽지만 소박한 철학이 있다. 언젠가 디자인이 막힐 때 읽었던 양요나 선생님의 책『디자인이 정말 지겹다고 생각될 때 읽는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디자이너는 사회를 소통시킬 책임이 있다
디자이너의 생각이 막히면, 사회가 멈춘다
라는 내용이었다. 유학시절 어렵게 한국에서 구해 읽은 책이라서 더욱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난 그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올해 여름 우리나라의 K대학 사회학과 교수님 중 한 분과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내 직업을 모르셨지만 내가 너무 궁금했던 부분을 잘 알려주실 것 같아서 나는 이런 질문을 드렸었다.
한국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해 낸 것에 비해
시민의식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진지하게 여쭤보았다.
그 분이 말씀하신 바로는 우리의 가치, 도덕, 규범, 생각이 한국의 경제 속도를 쫒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나라가 너무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해 문화 지체(Cultural lag)가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은 개인적인 가치관을 버리기 싫어하는데다 문화적 관습을 버리기 어려워 하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관과 관습을 계속 가져가려는 습관이 있다고 셨다. 최근 우리나라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었음에도 사람들은 이런 큼지막한 사건들을 쉽게 잊어버려서 앞으로도 한국에 종종 위기의 순간들이 많이 올꺼라고 하셨다.
한국이 GDP 3만불 시대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시민의식과도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다고하셨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들에는 우리나라는 고용 안정성이 낮고, 근로 시간이 길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고, 그 다음으로는 수도권에 마땅한 주거공간이 없어 통근 시간이 길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항상 만성 피로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출근/퇴근 시간이 길면 퇴근 후 누구와 약속을 잡기가 힘들어진다. 그 이유로 사람들은 계속 외로워지고 자살률은 올라간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를 변화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책이 별로 없고 실질적인 변화는 사실 어렵다. 하지만 창의성인나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공간을 더욱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준다면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현재 상태로는 아파트 같은 구조는 소통이 단절되어 협력, 도움, 공감이라는 생각이 형성 될 수 없고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거 공간, 학습 공간, 일하는 공간의 재배치에 신경을 써서 작업을 해 준다면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은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몰랐던 교수님께서는 디자인 관련자들에게는 이런 당부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공존, 협력을 실천하기 위해 디자이너는 한국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되 대신 서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서 결과물이 나오게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그게 어떠한 디자인이든 상관없이!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발적 야근을 피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길면 우울해지고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회사는 이런 방법을 선택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 테이블이 천장으로 올라가고 그 공간은 요가학원으로 바뀐다. 또 어떤 회사는 전기의 전원을 꺼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회사들은 현재 한국이 가진 근무 분위기 중 약 1%정도에 해당되는 곳들만 적용 되고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려면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의 생각이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한다. 약속된 근무 시간 이후의 시간은 직원의 개인이나 그들의 가족들 시간이지 야근을 종용하는 시간이 아니니까 말이다.
한국엔 외국처럼 공공적인 삶이 별로 없다. 공원도 많이 없고 자신이 소유한 땅이 제 값만 잘 받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변화의 속도에는 빠르게 반응해서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오른다. 50~60년 사이 한국은 정말 많이도 변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 '응답하라 1988' 처럼 동네에서 뛰어놀던 내 친구들, 이웃들, '이 빈대떡 옆집에 좀 주고 와!' 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던 이웃간의 정, 한참동안 뛰어놀던 따스했던 내 동네, 뉘엿뉘엿 노을이 질 때쯤 'OO야! 이제 그만 놀고 밥먹어야지!' 하는 엄마 목소리가 모두 그립다.
현재의 한국은 변화의 속도에 대한 전염은 매우 빠르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고 올바른 생각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좋게 변화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책임있는 말들을 많이 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가는 그 길로 가지 말고 스스로 다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변화되는 삶을 살아서 개개인이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우리는 그동안 고도성장과 경제와 같이 이렇게 먹고 사는 것만 생각했었지만 앞으로는 "무슨 소리야! 같이 살아야지"하는 마음가짐도 가져야 한다. 앞서 있던 낡은 사고에만 머물러 있다면 한국은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라고 못박으신 사회학과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서 내가 디자이너로써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주거 공간, 학습 공간, 일하는 공간에서 소통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재배치 하거나 소통이 필요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 숙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내 목표를 이루어 줄 좋은 학교 하나를 찾아냈다. 나는 석사에 목을 매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행히 합격해서 2년뒤의 나는 앞으로 뭐가 되어있을까? 하는 부푼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어떤 제품을 디자인 하는 데 앞서 인간을 먼저 탐구하고 인문학과 인류학 그리고 비교행동학을 연구하고 탐색하는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처음에는 매우 즐거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도 인류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디자인은 정말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편리성만 고려한 채 환경을 파괴하거나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원과 자연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디자인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세상에는 이러한 것을 고려하지 않지만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많다.)
나를 담당해 주실 지도교수님께서는 디자인 인류학과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그 뒷부분은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나만 혼자서 뭔가 대단한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었나보다. 나는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소통과 공감, 공존, 협력등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학교는 가까운 미래에 사용 될 돈이 되는 디자인만 중요하게 가르친다. 학교 전체가 창업을 독려하고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학교에서 주최한 startup tech 강연에서는 내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팀을 모으고 창업을 했더니 돈을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실리콘 밸리에 입성한 내 회사와 나는 정말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을 늘어놓는다. 가짜 스티브 잡스처럼 볼에 붙은 마이크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재학생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졸업생들의 강연을 듣고 나서 잠시 멍해졌다.
여긴 도대체 어디지? 나는 누구지?
그리고 출구가 없는 미로속에 들어와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가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행복하지가 않았다.
길을 잃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하지?
방향을 잃으니 몸이 슬퍼지면서 도대체 출구가 어디있냐고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무언가 결정을 해야했다. 꿈을 위해 달라지거나 혹은 그 꿈을 버리거나 그 둘 중 하나인데 꿈을 위해 달라지려고 이 곳에 왔지만 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로에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는건 이 게임에서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버텼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출구가 없는 미로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들어온 것 이었다.
그리고 아직 내 꿈을 버릴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내 목표가 졸업장이나 얻자고 들어온 길이 아니니까 말이다. 장학금 따위도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잘못된 길에서 주운 떨어진 돈가방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얼마 전 1박 2일에서 우리의 김탁구 '윤시윤'이 갑자기 이대에 나타나 '네비게이션이 모르는 길' 이라는 강연을 했다. 자신의 꿈을 찾아갈지, 아니면 부모님의 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는 국어국문과 학생에 대한 대답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에 슬퍼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제일 잘 하는지 자신이 꼭 알아야 한다고.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고속도로가 아닌 길 임에는 확실하다.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이 있는 구불구불한 네비게이션이 모르는 이 길로 걸어가게 되면 나는 분명히 미칠듯이 기쁜 순간도, 좌절하는 힘든 순간도 오게 될꺼라는 사실도 알고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예쁘고 의미있는 길이 분명히 거기에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예쁘고 의미 있는 길을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이 길을 먼저 알게되서 정말 다행이다. 일년 뒤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때 중단 하기 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지금을 바로 잡으면 되는거니까.
잘못된 길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매튜의 아빠가 그랬던 것 처럼 언제든 재빨리 되돌아 나오면 되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