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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2020

©기이해 | 취업의 기근

by 기이해

아래 글은 2020년 11월~12월 노들섬 노들서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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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았을 때 특별한 모자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유태인들을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자주 본 적이 있었다. 미국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그들은 뉴욕 증권 시장에서 세계를 무대로 큰 돈을 주무르기도 하고 정치, 법조계, 학계, 언론 등 미국 사회에서 대단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 자신의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타지에서 살면서 여전히 그들 나라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흩어진 사람들 / 혹은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살고 있는 유태인을 말함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디아스포라가 있었다. 주권을 잃었고 기근으로 인해 연해주로 쫓기듯 도망쳐야 했던 나라를 잃은 우리 국민들. 독립군, 고려인 및 중국으로 흩어진 우리 국민들이었다. 모국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었던 돌아오지 못한 그들이 바로 그 시대의 디아스포라였다.


해방의 빛을 본 지 73년이 되어가는 이 나라에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들이 존재한다.


독립군들이 얼마나 그들의 뿌리를 찾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그분들이 겪은 나라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러 기록들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게 광복을 염원했던 사람들은 그 광복을 보지 못했으나 이렇게 비옥한 땅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기가 너무 어렵다.


애민정신을 품고 있지 않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면 그 시대의 청년들은 디아스포라가 된다. 이러한 상태는 현재의 지도자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기존의 상황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러한 상태가 되면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20-30 청년들은 취업의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먹고살 것이 없으면 기근이 맞다.


정착하고 살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뿌리내리고 살 만한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많은 집들 가운데 남들 다 있는 집이 나는 없다. 디아스포라들은 뿌리를 내리고 싶어도 그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쫓기듯 다른 나라로 떠난다. 취업의 기근에 맞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생각하다가 고민 끝에 망망대해로 떠난다.


연해주로 떠나간 그들은 기근을 피해 도망친 것 이거나 혹은 무신 학교에서 독립군으로 길러지기 위해 조국의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갔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조국을 떠나 디아스포라로 사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인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서

집이 없어서

해외에서는 같은 월세로 지금보다 두 세배의 공간을 가지며 살 수 있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깨끗한 공기로 숨을 쉴 수 없어서

직장 상사들이 마치 그때의 일본인들처럼 괴롭혀서

사람답게 살 수 없어서

야근을 시키면서 야근수당도 안 주고

노동착취를 당해서



아니 뭐 다 괜찮은데 양질의 일이라도 많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면접을 보러 가면 인사 채용자가 올린 모집정보나 근무 조건을 늘 다르게 말하고 이상한 제안을 한다. 이런 상황이 싫어 아예 취업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 글을 보면 불편해하실 분도 계실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대략 어떤 분들이 불편해하실지 예상이 되기도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다 해야만 하는 시대에 사셨던 분들은 '라떼는 말이야'... 하며 훈수를 두실 것이다. '요즘 애들은 쉬운 일만 하려고 해' 혹은 '정신상태가 썩어 빠졌어'라고 말을 하는 세대들 말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시대에 태어난 지금의 청년들은 개인의 삶의 질을 자신의 삶에서 무엇보다 우선으로 두어야 하는 세대들이다. 그러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일하고 회의할 때 '나 때는 말이야~'를 외치는 사람들과 당연히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상사가 직원에게 불법을 저지르는 업무를 시켜도 해야할까? 주어지는 대로 생각 없이 아무 일이나 하며 돈을 벌면 도대체 정의는 어디로 가야할까?


지금의 이 상황은 일을 하며 행복도 함께 느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을 살아가며 '행복'이라는 단어가 빠지면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회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 가장 최소로 가져야 하는 공간 - 주거권, 인권, 행복 추구권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겐 정말 소중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도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 주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그래도 어떻게 뿌리내리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묻는 것은 사람들을 살살 약 올리며 고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악이 승리를 거두려면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어떻게든 뿌리내리고 살려는 젊은 친구들을 응원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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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해




©기이해



해외에 뿌리를 내리신 이 시대의 디아스포라들을 응원합니다. 사실 이 글은 2년을 서랍에 묵혀 두었다가 이제야 발행하는 글입니다. 저도 디아스포라로 살려고 했던 사람 중 하나로 어떻게든 이 글을 내놓기 떳떳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어째서 탈 한국을 선언하고 해외로 떠났는지 혹은 떠날 계획을 하시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디아스포라 여러분들의 대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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