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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발견

브런치 작가©기이해

by 기이해



발 마사지받는 곳은 많은데
왜 손 마사지를 받는 곳은 없어?



나의 손이 한참 저리고 아파왔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물론 네일숍이나 마사지받는 곳에 가면 한 2분 정도 스치듯 손을 마사지 해 주기는 하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의 마사지는 내 손이 만족하기에는 늘 부족했다. 우스운 말이지만 적어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손과 팔만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정말 어디든 찾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요즘 어느 브랜드에서는 좋은 손 마사지 기계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역시 기계보다는 내게는 사람의 손길이 너무나 필요한 시점이다.


손이 아픈 것은 꽤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에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유화 수업을 들을 때 손에다 테이프를 감아 붓을 고정시켜서 그림을 그렸다. 학교 내 사무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저 지경까지 간 손으로 도저히 마우스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2명의 보스에게 양해를 구해 당연히 출근은 하겠지만 한 보름 정도만 지인이 함께 와서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는 나의 손 역할만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도 되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허락을 해 주셔서 졸업 때까지 일을 무사히 마친 적도 있었다.


미대를 졸업한 나는 그동안 누구보다 손을 많이 사용했다. 손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던 재료들도 많았기 때문에 세라믹, 핸드 빌딩, 조각, 판화, 수채화, 유화, 디자인, 북 바인딩, 게임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등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도자기를 빚을 때 흙을 만져야 하는 내 손, 그리고 다른 재료들을 만들 때 손을 꾸미는 일은 내게는 사치였다. 귀여운 반지를 끼우는 것도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손을 꾸미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엉망으로 되어버렸으니까.


한 번은 행사를 위해 여러 장의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왼쪽 엄지와 검지를 자로 눌러 커터칼을 많이 사용했던 때가 있었는데 일을 너무 많이 한 이유로 갑자기 손가락이 틀어진 적도 있었다. 주변에 간호학을 전공하던 언니에게 부탁하여 막대로 고정시켜달라고 부탁하고 한동안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나의 대부분의 커리어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프린팅을 포함하여 wire frame 디자인 및 UX, UI 혹은 로고와 스타일 가이드를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안타깝게도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당시 하고 있는 전공을 통해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일이 그쪽 일 뿐이라서 시작하게 되었다. 단지 순수미술이 좋아서 시작한 전공이 미술이었기 때문에 그 전공을 기본으로 생계수단을 마련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오랫동안 디자인을 한 탓에 iMac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만들고자 하는 제품이나 상품의 시장조사부터 시작하여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디자인은 시간을 들이면 들일 수록 퀄리티가 높아지기 때문에 수많은 클릭과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디자인 샘플들을 많이 만들었다. 클라이언트가 결과물을 하나를 원한다면 단 한 개만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나도 상대방이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클라이언트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스케치를 먼저 시작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중에 스스로 제일 마음에 드는 다섯 개를 골라 클라이언트들에게 보여주었다.


어쨌든 디자인을 위해 바친 수많은 클릭질은 내 손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다. 학교 졸업 후에 괜찮아진 것 같아서 손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탓도 있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 3월부터 손이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손바닥이 심각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어느새 병뚜껑을 열지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IMG_20180607_020016_173.jpg 이미지 무단 복제를 정중히 금합니다. 브런치작가©기이해


손이 아파올 때마다 정형외과며 신경외과 등 모두 다녀봤지만 의사들에게서 오는 대답은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 뿐이었다. 그렇게 11월까지 보내다 필라테스를 받으며 체형교정을 함께 병행했다. 교정을 해 주시는 분께서 물리치료사 출신이셨는데 혹시 목 디스크가 아닐까라는 의심으로 이곳저곳 근육과 신경이 지나가는 부분을 만져보시더니 다행히 목 디스크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목과 어깨 근육의 어느 부분이 손가락과 연결 된 신경을 눌러 손가락이 아픈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찾아가도 알 수 없던 원인을 의사가 아닌 체형 교정해주시는 분에게서 확인을 받고는 바로 모든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중단했다. 프롤로 테라피 치료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났다. 치료를 받는 중에는 스마트 폰 사용도 줄였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 아파서 울기도 했지만 그동안 고생한 내 손이랑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은 돌보지도 않고 죽도록 노력만 하고 살아서 말이다.




나는 이제야
아픈 내 손을 발견했다.




치료가 끝나면 양 팔을 붕대로 칭칭 감아 미라처럼 두 달을 살았다. 어느 날 치료가 끝난 후 붕대가 감긴 손을 하고 동생의 집에 놀러 갔다. 이제 막 세 살이 된 나의 예쁜 조카가 눈 앞에서 '이모' 하며 안긴다.


조카가 처음 태어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동생이 찍어 둔 동영상이 문뜩 생각이 났다. 조카가 태어나서 처음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아기는 신생아일 때 자신이 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기가 팔을 움직이면서도 뭐가 왔다 갔다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팔을 보고 움찔 놀랄 때도 있다. 그래서 신생아들은 팔까지 모두 꽁꽁 싸매 놓기도 한다. 그러다 생후 4개월 정도가 지나면 드디어 자기 손을 발견하고 신기해한다. '엄마, 손이라는 게 자꾸 움직여!'와!~ 이게 손이구나! 신기하게 막 움직이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남겨진 동영상이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찾았을 때 / 이미지 무단복제를 정중히 금합니다. 브런치작가©기이해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도 우리 조카처럼 내가 아주 어릴 때 움직이는 나의 손을 보고 신기해했었을 텐데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이 소중한 손을 너무 혹사시켰다. 신생아처럼 너무 당연하게 내 몸에 붙어 있었지만 그동안 내 손을 인지하지 못했다. 발달 시기가 되면 자연스레 이것이 나의 손이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발견하는 것처럼 이제야 나도 아기처럼 내 손을 신기하게 요리조리 살펴본다. 아껴줘야 오래 쓸 텐데 이 손을 너무 늦게 다시 발견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면


그래 이제 디자인은 그만 해도 되겠지. 하면 할수록 아프기만 하니까....그래도 보는 눈은 건졌잖아. 하며 위로를 한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디자인 대신 내가 그려보고 싶은 것을 그린다. 디자인 대신 그림을 그린다고 손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림을 많이 그려서 손이 아파진 날에는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모은다. 진짜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미루고 미뤄왔던 진짜 해 보고 싶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길. 물론 삶은 전보다 팍팍해졌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자'라고 다짐한다. 내 손은 정말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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