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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디자인을 위한 바람

브런치작가©기이해

by 기이해

굿 디자인을 위한 바람


얼마 전에 여행을 갔다가 늘 들고 다니는 작은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예쁜 우산 하나를 건졌다.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성격 탓에 장대비가 내리지 않는 한 장우산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편이다. 디자인을 하는 직업병 때문인지 어깨와 손이 자주 욱신거린다는 이유로 무언가 바리바리 들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껏해야 손바닥 크기만 한 핸드백이나 조금 내용물이 많아지면 에코백, 백팩을 주로 들고 다닌다. 항상 핸드백의 무게와 크기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늘 열심히 일하는 내 어깨를 위한 배려이다.


어쨋든 손바닥만한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그 우산은 장마 기간 동안 나의 핸드백 안에서 좋은 장소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우산의 길이와 두께,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손잡이 모양 그리고 우산의 패브릭이 마음에 들었다. 브랜드 제품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라면 여느 우산들처럼 튼튼해 보였다. 저가의 상품은 아니었기에 얼마 못쓰고 버릴 거라는 의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살짝 부담이 되는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내 어깨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2년 정도는 버텨주길 바랬다. 오랫동안 찾아다녔었는데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우연히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그 우산을 구매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구매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우산이 잘 접히지 않더니 우산대 중 한 대가 나가고 이번에는 또 다른 곳이 부러졌다. 여행 중 발견한 장소라서 구매한 곳이 너무 멀어 다시 가서 제품에 대해 문의를 해 볼 수도 없는데 너무 속상했다. 우산을 구매할 때에는 우산의 특성상 구매 시 비가 와서 바로 사용해 보기 전까지는 이 우산의 튼튼함의 정도가 괜찮은지 아닌지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산의 기본적인 기능은 비로부터 나의 머리카락과 옷을 젖게 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다. 장마가 아닌 이상 가끔 오는 이슬비 정도를 피하려면 요즘은 작은 접이식 우산도 꽤 튼튼한 제품들도 많다. 가끔은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양산 겸 우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산을 구매할 때 여러 종류의 우산을 보게 되는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떤 우산을 고르실지 궁금해졌다.


우산은 역시 제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지! 라며 기능성만 있는 튼튼하고 무채색을 품은 무식하게 생긴 우산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고 혹은 나와 같이 작은 우산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기능 테스트를 즉시 해 볼 수 없으니 바로 예쁜 우산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는 뜻하지 않게 비를 맞이했을 때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잠시 동안의 비를 피하기 위해 그다지 견고하지 않은 비닐우산을 구매하는 것도 그 대상에 포함될 것이다. 물론 비닐우산도 일회용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우산보다는 확연히 사용기간이 짧다.


이번에 망가진 우산을 버리고 새로운 우산을 살 때에는 이전보다는 조금 더 견고한 기능성과 디자인 모두가 만족이 되는 우산을 사려고 한다. (물론 나의 가방에 쏙 들어가는 길이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손잡이 모양의 우산을 찾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우산은 우산답게 그 기능성이 첫째이고 나머지가 심미성이다. 이런 현상은 우산뿐 아니라 모든 제품 및 상품에 해당된다. 우리는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해주기를 바라면서 구매를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반드시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로워야 하는 것이 첫째이고 보기도 좋으면 금상첨화인 것이 둘째이다.


좋은 디자인은 단지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디자인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나쁜 디자인은 나의 망가진 우산처럼 그 물건이나 상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단지 예쁘기만 한 디자인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물건들을 '아름다운 쓰레기'라고 부른다.


구매할 때의 바람과 달리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수채화용 워터 브러시가 그랬고, 심이 다 닳을 때까지 써보지도 못하고 같은 문제로 망가져버린 여러 개의 펜들이 그랬고, 신을 때마다 살이 쓸려 발에 상처를 낸 샌들이 그랬다. 외관은 누가 봐도 예쁘고 멀쩡한 신발이지만 샌들을 벗을 때 현관 앞에서 마주한 내 발등은 물집 투성이로 변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신발은 남에게도 똑같이 대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나누지도 못하고 그 후 그 샌들은 쓰레기통으로 여러 번 갔었지만 그때마다 망가져 버린 내 발과는 달리 외관이 너무 괜찮아서 낭비로 비칠까 아직 버리지도 못하고 신발장에 처박아 둔 신발도 있다.


어떤 직업군에 있던지 상관없이 문제점을 발견해서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가 디자이너이다. 인류에게 유용하고 꼭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는 바로 이러한 것 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아름다운 쓰레기가 어떠한 것인지 구별해 내는 눈만 가지고 있어도 디자이너로써의 자격이 충분하다. 물건의 가치를 알려면 디자이너(생산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된다. 잘 만들어진 물건 즉, '명품'은 그 물건의 가치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그 물건을 사용할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여 만들었기에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어 비싸도 제 값을 주고 사는 게 맞다고 느낀다.


다만 현대사회에서의 '명품'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는 문자 그대로 장인정신이 깃든, 나에게 유용한 '좋은 물건'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상품을 명품이라고 정의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명품이란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치품과 같이 동일한 디자인 패턴의 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며 과시를 위한 물건이 아닌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특별한 대상을 위해 고려하고 상대방을 위해 진심으로 만든 상품이 명품이다.


사람들이 속해있는 직업군과 장르는 모두 다르지만 디자이너만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기에 다음과 같은 분들을 예로 들고 싶다. 사과를 생산해 내는 농장주는 사과의 포장 디자인보다 사과의 당도와 질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고, 아파트를 짓는 건축주는 먼저 튼튼하고 견고하게 건축물을 만들어 놓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건축물로 인정을 받은 후에 광고를 해야 한다. 모든 것엔 번지르르한 겉껍데기보다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만들어 낸 알맹이가 꽉 찬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먼저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요즘 계란을 생산하는 방법만 보아도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고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특별한 대상을 위해 고려하고 상대방을 위해 진심으로 만든 상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면 한쪽 팔만 가진 사람을 위해 새로운 설거지 도구를 만들어 낸 싱가포르 학생 디자이너 로렌 림(Loren Lim)이나 일본의 한 청년이 구두를 닦으며 자신이 닦는 구두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고 고치며 기존의 신발보다 더욱 견고하게 변화시키는 구두닦기 장인인 하세가와 유야, 어린 시절 뇌성마비 장애인 동생을 둔 형이 로봇 공학자가 되어 동생이 불편하지 않게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형, 데니스 홍이 있고 좋은 디자인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KAIST 배상민 교수가 그렇다.


더 먼 과거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도 있다.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심으로 좋은 디자이너였다. 수원성 건설에 동원된 백성들이 빨리 부역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거중기를 만들어주었다. 또 다른 예는 역병이 나서 물을 끓여 먹도록 예방하라고 방을 붙였는데도 글을 읽지 못해 죽게 된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그러하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혼을 담아 애민정신을 기본으로 한글을 만들었다. 세계 언어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글은 현재까지도 세계 언어학 중 가장 완벽하고 혁신적인 언어 발명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제품 및 발명품들은 완벽한 무언가가 나오기 전까지 실패작은 있을지언정 그것들의 최종 결과물은 결코 아름다운 쓰레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사용할 사람들을 고려하고 그들을 위한 배려의 마음을 품은 상태에서 무언가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디자이너만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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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 창업을 하려는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 본다면 좋다. '무언가를 왜 만들려고 하는가?', ' 누구를 위한 제품 혹은 상품인가?', '무엇을 위해 만들고 있는가?', '환경 문제는 고려하였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류에게 이로운 것인가?'와 같은 방향성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일 제품 '브라운'사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30년간 일 했던 디터 람스(Dieter Rams)는 우리에게 좋은 디자인에 대한 10가지 주옥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도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팟의 디자인이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진 좋은 디자인에 대한 정신은 다음과 같다.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Good design is innovative

혁신의 가능성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혁신적인 디자인은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나란히 발전한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seful

사람들은 필요하기 때문에 제품을 구입한다. 필요성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제품은 기능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 시각적 만족을 주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필요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무시해야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Good design is aesthetic


제품의 시각적 만족감은 필요성의 일부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제품은 우리 자신과 우리 삶의 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들어진 대상만이 아름답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구조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가장 좋은 것은 제품이 스스로 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5.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Good design is honest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실제보다 더 혁신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하지 않는다.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구매자를 속이려 하지 않는다.


6. 좋은 디자인은 절제한다
Good design is unobtrusive


목적을 달성한 제품은 연장과 같다. 그것은 장식물도 아니고 예술 작품도 아니다. 사용자가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기 위해 제품의 디자인은 중립적이고 절제되어야 한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Good design is long-lasting


좋은 디자인은 유행을 좇지 않는다. 그래서 절대로 구식이 되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요즘 같이 쉽게 쓰고 버리는 시대에도 그렇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어떤 것도 임의로 혹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디자인 과정에서의 배려와 정확성은 구매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
Good design is environmentally friendly


좋은 디자인은 환경 보존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 자원을 보존하고, 제품의 일생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각적 공해를 최소화한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


더 적은 게 더 낫다. 좋은 디자인은 본질적인 것에 집중한다. 따라서 제품은 불필요한 짐을 지지 않는다. 순수함, 단순함으로 되돌아가자!



당신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것을 만들 때 반드시 그것을 사용할 상대방을 배려하고 고려하는 마음을 우선으로 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명품이 된다. 또한, 누구나 무언가를 만들 때 위와 같이 지켜져야 할 10가지만 고려한다면 사람들에게 이로운 좋은 제품이나 발명품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마치 15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언어 발명품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사용되고 있고 해외에도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금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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