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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미안하다는 말을 안해?!

멋 없는 사람들에게서 배운것들 in 서울

by 기이해

왜! 다들 미안하다는 말을 안해?!


출근길이었다.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계단, 평평하지도 않고 약간은 경사져있는 계단의 끝엔 환승 버스정류장이있다. 중심을 잡고 조심히 오르지 않으면 자칫 넘어질 수 있는 그런 계단이라서 늘 조심히 걷는 길이다.


게다가 나는 거의 한달 전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걷다가 어느 계단 한 곳을 잘못 밟아 발목 안쪽을 접질러 한달째 치료중이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그 계단을 오를때는 단화를 신고 더욱 조심히 걷고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경사진 계단을 걸으려는 입구에서 발을 한 발자욱 떼는 순간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는 버스를 빨리 잡으려고 했는지 한사람만 걸을 수 있는 그 계단에서 나보다 먼저 가기위해 아무런말도 없이 무방비 상태인 나를 뒤에서 밀치고 계단을 올랐다. 무게중심을 잘 못잡아 또 넘어질까하는 두려움에 휘청거리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 (팔을 휘적거리며 몸이 휘청~) 미쳤나봐...ㅠㅠ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라 누구였는지도 몰랐고 나도 너무 당황하여 나도 어른에게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진 못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홱 돌아서서 나를 째려보며 소리를 지른다.


"뭐~라고?!"



"아주머니! 미안하다고 하셔야지요!"




어디서 난 용기였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보였던 그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더니 무안했는지 아무말 없이 다시 계단을 질주하셨다.


물론 미안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있고나서 버스를 타고 나서도 갑자기 일어난 일에 한동안 심장이 쿵쾅거려서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나이로 서열을 따지는 한국에서는 나보다 어른이라면 어떤 경우에서든 무조건 양보를 해주어야하는게 옳기 때문이라는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어째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이가 더 어린사람이 무조건 참아야 하는것일까? 억울해도?!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가 또 있다. 어린시절 주말마다 사촌들과 자전거를 함께 타는것이 좋아 버스를 타고 친척집에 자주 놀러갔던 어느 금요일 저녁 버스 안에서 생긴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 기억하던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동네에서 버스를 탔고 보통 종점인 그곳까지 한시간 반정도가 걸린다.


내가 버스를 탔던 곳에서는 항상 자리가 있었고 어짜피 종점까지 한시간 반을 가야하니 신나게 졸고있었다. 잠이 덜 깨어 눈을 비비고 있던 내 앞에서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내게 '얼마나 눈치를 줬는데 이제서야 눈을 뜨냐'며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었다. 나는 오후 4시쯤 버스를 탔는데 길이 막혀 어느새 퇴근길이었고 버스안은 숨쉴 틈도 없는 만원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졸고 있어서 몰랐어요.

앉으세요.


하며 일어서는 순간



어디 거기 계속 한번 앉아있어봐.




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꾸욱 누르시면서 일어나지도 못하게했다. 당황한 나는 어린 마음에 울음이 터졌고 그 아저씨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놀란 나를 다독여주었다. 사람이 많아서 창피했던 기억에 크게 울지도 못하고 울음을 속으로 삼켰다.



한달 전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릴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앞에 서 있던 남자는 내가 내린 후 앉으려고 했는지 난간 위에있는 자신의 가방꾸러미를 내리려다가 그의 가방이 그만 내 머리위로 쿵! 하고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별이 보이는건 만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너무 너무 아팠다. 만져보니 머리에 혹이 났네! 난 곧 내려야하는데 도무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않는다. 들어야하는 말 대신 내 귀에 들려온건 옆에 함께있던 그 남자의 여자친구의 ㅋㅋㅋ 웃는 소리.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모르는 사람에게 가방을 내 머리위로 떨어뜨린게 아니라는것 정도는 알지만 그래도 미안하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는데 그 상황이 웃겨 죽겠다며 옆에서 웃음을 참지못했던 그 여자친구분이 사실 더 얄밉게 느껴졌다.



미안하다고 말하는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까? 계단에서는 그 아주머니가 나를 밀치기 이전에


"저기, 버스가 와서 먼저 좀 지나갈께요. 미안해요~" 라든지


"아이고, 꼬맹이 많이 피곤했니? 아저씨가 오늘 다리가 무척 아픈데 양보를 해줄 수 있을까? 꼬맹이 지금껏 많이 잔것같은데, 괜찮지?" 라든지


"헉! 일부러 그런게 아닌데 죄.....죄송합니다. 머리는 괜찮으세요?" 혹은 동행자가 당황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 찰나 센스있는 여자친구가 이런 말을 남자친구 대신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몇년 전 청춘 페스티벌이라는 곳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재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제가 젊은 시절에는 원하는 걸 얻으려면 남보다 빨리 가야 하는 요령이 있어야 했어요. 안 되면 새치기를 하고 아쉬우면 뒷거래를 한거죠. 남의 발을 밟았을 때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하면 되는데


눈깔 똑바로 뜨고 다니시오!"


그랬단 말이예요. 우리나라가 빨리 발전을 하며 만들어진 문화, 부족하고 열악하고 치열한 가운데 생긴 정서예요. 이 갈등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선배들의 것입니다. 어른들에게 남아있는 잔재란 말이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선진이라는게 뭔가요? 돈 많다고 선진국인가요?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실천할 때 선진화가 되는 겁니다. 내 지적 능력을 나한테 이로울 때만 활용하는 마음가짐을 다 없애고 선진적 가치관을 가지고 뜻을 모아야 해요.


왜냐? 그것이 함께 사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와 겨뤄야 하는 경쟁은 바로 이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에는 인격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긍정적인 발상을 하면 몸에 배는 거예요. 인성이 바탕이 된 사람들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 있어도 자기 염치, 자기 자존심을 지킵니다. 자존심이 높으면 범법행위도 안하고 남한테 불편을 주지 않습니다.


건강한 인격이 바탕이 된 행복한 사회, 저는 여러분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때까지 여러분의 아름다운 청춘을 응원합니다.


배우 이순재


나이의 많고 적음의 유무를 떠나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도 어른이 된 현재의 '나'도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했던 하나의 인격이다.

'미안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 같은 간단한 말로 세상을 바꿀수는 없지만 이 말들은 우리가 일생동안 인간으로써 기본을 배우는 유치원에서도 배운다. 하물며 어린이도 아는 이 간결하고 쉬운 말을 어른이니까 하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 어짜피 나보다 어리쟎아. 라고 생각한다면 이 사회에 살고있는 내가 너무 슬프다.


다행히 배우 이순재 할아버지 같이 진심으로 어르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셔서 지금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신다. 분명 빠른 경제 발전은 있었지만 그것의 속도와 함께 따라오지 못한 시민의식과 인격의 성장을 높이는 일을 우리가 해야한다. '미안합니다 혹은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 인격에 영향을 주게된다면 그리고 어떤 사람의 하루에 정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나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하고 싶다.


공공장소에서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냄새나는 음식을 열지 않으며, 길가에 침이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마음. 그런 마음가짐이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과 부딪혔을때에는 목례를 하거나 "미안합니다" 라고 말하고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도 존중해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 인격을 만드는 첫 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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