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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이해 Jul 23. 2022

조말자의 낡은 피아노

© 기이해 단편소설

© 기이해 단편소설



  분주한 이사 날 아침 큰 종류의 가구들이 거의 나가고 낡은 피아노 한 대가 거실 모서리에 우두커니 남아있다.


“저기, 사모님! 이 피아노는 어떻게 할까요? 이것도 같이 가는 거죠? ”


“엄마, 저 피아노는 왜 안 팔았어? 이사하기 전에 진작 처분을 했어야지!”


“저걸 왜 팔아~”


“그럼, 아무도 치지도 않는 피아노를 이사할 때마다 왜 가지고 다녀!!!”


“.....”


말자는 난영에게는 대꾸하지 않고 이사를 돕는 직원에게 조심히 옮겨 달라 당부하며 말했다.


“아저씨! 이 피아노 조심히 잘 옮겨 주세요.”



  서른이 훌쩍 넘은 난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난영이는 피아노 학원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3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만둔 이후 피아노 뚜껑조차 열어본 적이 없다. 이 집에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저 피아노를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집에 끼고 사는 말자를 이해할 수 없다.


“엄마! 이사하기 전에 저런 건 제때제때 좋은 가격에 팔았어야지. 무겁게 저걸 이사 때마다 들고 다녀. 난 진짜 이해가 안가네.”


알았으니까 잔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 


  말자는 난영이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상을 받거나 하는 인물이 되는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나 간단한 노래라도 칠 수 있는 정도만, 딱! 그 정도로만 가르치고 싶었다. 난영이가 바이엘을 배울 때 딸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소리가 마냥 좋았다. 하농을 연주할 때에는 그 조그마한 손이 뚱땅거리며 건반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근차근 이동하며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 소리가 좋아 조금만 더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 딸이 초등학교 3학년 중간에 피아노를 그만둔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배우면 체르니 30까지는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만둔다고 하는지. 거금을 들여 산 피아노가 아까웠다.



저놈의 지긋지긋한 피아노,
정말 부숴버리고 싶어…



작은 이동판에 옮겨지는 피아노를 바라보며 난영은 혼잣말을 했다. 동시에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 생각났다. 


"탁!"


"아얏"


피아노 선생피아노를 가르칠 때 박자를 맞출 겸 회초리 대용으로 사용하던 30cm 자의 뾰족한 날이 난영이의 손등 위로 날아왔다. 어떤 날은 모나미 1.53 볼펜으로 날아오기도 했다.


“계란! 계란 모양! 모양 흐트러졌잖아!”


난영이의 작은 눈망울에 눈물이 찔끔 났다.


“네”


“다시! 다시 해봐!"


  피아노 선생이 입을 열어 말을 내뱉을 때마다 박카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난영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난영은 사실 피아노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불친절하고 폭력적이며 박카스 중독자인 피아노 선생님이 싫었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그만둔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난영이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난영이는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말했다. 피아노 선생이 책으로 난영의 머리를 때리고 손등을 꼬집어 멍이 든 날이었다.  


“나 피아노 그만둘 거야.” 


  난영은 끝까지 엄마에게 왜 그만두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말자는 난영이가 갑자기 피아노를 그만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냥 어린 나이에 부리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말자는 큰돈을 들여 산 피아노의 할부금을 몇 년 동안 갚았다. 난영이가 피아노를 그만둔 이후에도 틈틈이 갚았다. 그렇게 마련한 귀중한 피아노를 차마 중고로 팔거나 내다 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도 치지 않는 말자의 피아노는 말자가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마치고 저녁 시간에 식사를 하며 난영이는 낡은 피아노를 바라본다. 피아노 위에 배치된 난영이의 독사진과 난영이 친구들의 자그마한 사진들도 차근히 바라봤다. 


“엄마, 이 피아노 말이야. 이제 너무 낡아서 조율이 될까 모르겠다. 아마 중고시장에서 20만 원을 줘도 안 가져갈걸?!”


“그냥 둘래. 둬. 계속 가지고 있을 거야.”


“엄마, 그러면 차라리 엄마가 피아노를 배워. 나이들어 손가락 열심히 움직이면 치매예방에도 좋대.”


“그럴까?” 


  난영이는 피아노를 이 집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이사 때마다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는 엄마를 보며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의 낡은 피아노는 조말자가 살아온 인생의 자부심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기이해 | 글 그림 기이해

All rights reserved © 기이해 Rights and Use Information Privacy Policy Last updated on July 2022 / 판권 소유 및 개인 이용 정보 취급 방침에 따라 이 글은 작가 © 기이해에게 모든 권리가 있습니다. 2022년 7월 마지막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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