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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꺽정 Feb 04. 2019

인간이란 무엇인가

1편. 인간이 존엄하다?


이번에는 인간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질/특징을 모르고는 경제를 논할 수도, 정치를 논할 수도, 하물며 조그만 일상생활도 제대로 잘 해낼 수 없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사실 누구에게도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다.  인간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틀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나의 아이에게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50년이상을 살아 오면서 나 스스로의 삶을 살아왔고 다른 사람의 삶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왜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회의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은 왜 나와 다른지 고민하기도 했다.  다른 이의 삶을 욕하기도 했고 관계를 끊기도 했고 어떤 이에 대해서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된 인간에 대한 인식은 그에 상응하는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50년이라는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가늠하게 된 셈이다.  내 아이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갈 것이다.  내 아이들도 50세가 되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느낄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가 50세보다 더 빨리 인간에 대하여 파악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파악이 빠르면 빠를수록 삶은 더 수월해지고 간결 명료해진다.  그리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가 있고 실수를 줄일 수가 있다.   우리 아이가 50세가 되면 나는 죽고 없겠지만 나보다 더 현명해져 있으면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바이다.


이제 본론을 들어가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보통의 생각은 ‘인간은 다른 존재보다 좀 특별하고, 지능도 높고, 본능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알기에 존엄한 존재이다’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이 존엄하다'라는 말은 중학교 사회시간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이 말은 좀 생뚱맞게 들렸다.  알다시피 나는 1970년대 시골 농촌에서 자랐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존엄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거지들도 많았고 농촌사람들의 삶은 가난한 인생이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엄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다.  잘 산다고 해서 존엄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못 산다고 해서 미천한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에게 웃어주면 좋은 아저씨 아줌마, 나를 막 대하면 나쁜 사람일 뿐 다른 기준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하니 매우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이 존엄하다면 나도 존엄한 존재라는 얘기가 되는데, 그래서 ‘내가 존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지만 나 자신이 그리 존엄한 것 같지는 않았다. 


중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인간이 존엄하다는 근거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여러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였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  문자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사랑할 줄을 안다.  인간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등등 이러한 예를 들어가면서 인간이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우리에게 설명하였다.  공감이 되기도 했지만 그리 마음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을 찾는 것보다는 오히려 같은 점을 찾는 것이 더 쉬워 보였다.  인간도 먹고 자고 똥을 싼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반항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동물이 공포를 느끼듯이 인간도 공포를 느낀다.   동물이 다치면 빨간 피를 흘리듯이 인간도 그렇다.  동물이 입 귀 눈 코 항문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도 입 귀 코 눈 항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3일 굶으면 이성을 잃듯이 동물도 그렇다.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듯이 동물도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소가 우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있듯이 동물들도 초보적인 소통수단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부족들도 인간이지만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에 인간과 동물은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을 차이 나게 하는 점은 있었다.  그것은 지능이다.  동물은 지능은 낮았고 인간의 지능은 동물보다 뛰어나다.   그 지능의 차이로 인하여 인간이 동물과 달라 보일 수 있다.  


지능의 차이로 인해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동물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존엄한 존재라고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지능과 이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성이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철학에서는 이성을 매우 어렵게 표현하고 있는데 나는 이성을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표현하겠다.  서양철학자들이 이성에 대하여 많이 연구를 해서 그들의 책을 조금 읽어보기는 했는데 뜬구름 잡는 얘기가 대부분이고 말만 어렵고 논리 정연하지도 않았다.  내가 이성을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직관적인 수준의 표현이라고 해두고 싶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였다면 인간은 역사를 이렇게 써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이성의 역사가 아니라 본능의 역사였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본능을 현실화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은 이성으로 역사를 만든 적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본능과 본능간의 충돌과 전쟁의 역사였다.  이성이라는 것은 그 본능을 성공시키기 위해 이용되었을 뿐이다.  십자군전쟁이 이성에 의해 발생된 일인가?  프랑스혁명이 이성에 의해 발생된 일인가?  미국의 남북전쟁이 노예해방이라는 이성을 실현하기 위해 발생된 일인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였다면 인간의 역사는 우리가 겪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동물들과 별 차이도 없으면서 동물들과 차이 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이 옷을 입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옷을 입는다라는 차원을 떠나 패션으로 옷을 입을 줄 알기에 더 그런 것 같다.  지구상에 옷을 입는 존재는 인간들 뿐이다.  인간은 옷을 입었을 때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로 보인다.  인간들이 입고 있는 옷을 벗기면 우리는 휠씬 더 쉽게 인간은 동물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내가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벗고 있을 때 내가 생명체, 동물이라는 느낌을 더 받는다.  2차대전때 전쟁수용소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어떤 사진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발가벗겨진 채 수용되어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런 사진들을 볼 때 나는 이들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사육장에 갇혀 있는 개돼지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에 애완용 개에게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은데 옷을 잘 차려 입은 개가 노숙자보다 더 사람답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나의 결론은 이거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지능이 약간 높다는 것 외에는 차이가 없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도 아니고 존엄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존엄하다는 인식은 인간이 지구의 대부분을 지배하다 보니 생겨난 착각이다.  인간과 동물 더 나아가 인간과 다른 존재들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개념은 인간도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 이성으로 본능을 통제할 수 있고 올바른 객관적인 사유와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를 부인하는 셈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고,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본능에 의해 움직이고, 이성이라는 것이 있어도 본능에 의해 통제되고, 설사 이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 이성은 본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따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이용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이성과 지능을 차이를 혼란스러워 한다.  지능이 높으면 이성적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지능과 이성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간은 지능이 높은 존재이다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데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표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점은 인간을 파악하는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다.  만약 인간이 동물과는 다른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그는 방향을 잘못 잡는 것이다.  인간을 연구하고 철학을 하고 기타 다른 어떤 학문을 연구하더라도 출발점은 하나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지 않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개념을 가지고 일상의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이 개념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항상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개념 즉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이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라는 잘못된 편견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들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존엄하다는 인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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