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불황의 기원
분명한 사실은 과거 원시 농경시대에는 호황 불황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시 농경시대에 불황 호황의 개념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급자족 사회이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필요한 식량, 옷, 집을 스스로 생산하여 소비하거나 소량의 일부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대에는 과잉생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필요한 만큼만 생산했기에 불황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필요한 만큼 생산할 능력이 없는 시기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요가 많아도 그 수요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생산능력이 없었기에 호황도 절대 발생할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황이라는 것은 생산능력이 부족했던 초기 경제체제하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산업이 발달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면서 생겨난 셈이다. 호황도 마찬가지다.
아쉽게도 초기의 자급자족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아쉽다고 표현하는 것은 나는 과유불급이란 말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 국가가 생겨나면서 자급자족사회는 붕괴되었다. 그 원인은 자급자족의 원천인 토지를 권력자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자영농은 급격히 사라지고 소작인화 되면서 민생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는 불황의 기원은 이 시점이다. 소작농들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자기가 전부 소비하지 못하고 50% 이상을 지주에게 바쳐야 했다. 이로 인해 이들은 늘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을 불황이라고 본다면 그 당시 그들에게 불황은 매년 사시사철마다 겪는 일이었다. 지독한 수탈로 발생하는 불황이라고 할 것이다.
이들에게 한번 들러붙은 불황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빈곤에 시달리던 빈곤층은 도시로 이주하여 공장에 취직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시작했다. 그들이 공장에 취직했다고 해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은 것은 절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착취당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들은 여전히 저임금에 시달리는 빈곤층이었고 언제든지 노동력이 상실되면 생계를 위협받는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이 시기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종말을 주장했을까! 산업화시대에도 여전히 대다수의 구성원이 빈곤상태에 있는 불황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시기를 절대 불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불황이라고 부르는 시기는 자본가들이 나빠진 경제상황으로 운영하는 사업이 손실을 입을 때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사를 공부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추측하건대 경제학적 의미에서 불황이 최초로 발생한 시기는 서양이 산업화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확보한 생산설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라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제국주의 시대에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기였다. 물건을 생산만 하면 팔려나간다는 말도 안 되는 경제이론이 인정받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식에 어긋나는 경제이론을 믿었는지, 생산설비는 미친 듯이 늘어났고 이는 과잉생산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자본주의 경제의 골칫거리인 불황은 탄생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불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다. 케인즈는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재정정책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밀튼 프리드만은 통화정책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불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불황의 원인은 자본가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과잉생산인데, 경제학자들은 과잉생산을 해결할 방법은 찾지 않고 엉뚱하게 세금으로 해결하려 하고 돈을 찍어내어 해결하려고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