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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토 Feb 09. 2022

[올레길] #5. 제주도의 흔한 해장국집 뷰

제주 올레길 위에서의 모든 생각 (2일차, 1코스, 성산일출봉)

지미봉을 내려와 2시간 정도를 걸었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저게 성산일출봉이었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던가? 6월 장마철 비바람이 몰아쳐서 모두 우의를 입었지만 웅장한 성산일출봉이 자태를 뽐내던 게 오래토록 인상에 남았었다. 언젠가 다시 와야지 한 게 어느덧 17년이 지났다. 그렇게 가보고싶었던 성산일출봉에 드디어 걸어서 도착했다.


성산일출봉도 식후경. 어제 먹은 맥주 기운이 남아있어 해장국 한 그릇 하고 싶었다. 산지해장국이란 식당이 네이버 평점이 꽤나 높았다. 아침 6시 30분부터 거의 4시간을 아무것도 안 먹고 걸은 상태라 눈앞에 보이는 여러 해장국집들을 지나치며 많은 유혹을 견뎌내야 했다. 드디어 산지해장에 도착했다. 이게 제주도 해장국집의 흔한 뷰인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7,000원에 파는 카페가 들어서도 무색할 장소에 해장국집 간판이 걸려있었다. 해장국집이랑 성산일출봉이 한 샷에 잡힌다니. 맛이 어떻든 이 입구뷰만으로도 평점 4.5는 먹고 들어갔다.


제주도의 흔한 해장국집 뷰


내장탕이 나왔다. 아재개그를 하는게 아니고 해장국집 이름이 산지해장국이라서 선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심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선지는 없었다.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창문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반찬 삼아 내장탕 한 숟가락했다. 주모 여기 막걸리 아니, 사장님 사이다 한 병 주세요. 


산지해장국엔 선지가 없습니다.


맛있게 먹고 성산일출봉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일출봉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나도 올라가볼까 싶었지만 막상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성산일출봉이 안보일테니 그 뷰는 허전할 것 같았다. 물론 다리가 조금 아픈 이유도 있었지만, 일출봉 등산은 언젠가 다시 올 나 자신에게 맡기고 곧바로 해안가를 걷기로 했다. 


성산일출봉을 등 지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으니 자꾸 방금 전 본 경치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뒤를 돌아봤다. 넌 참 아름답구나. 혹시라도 최고의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적정거리가 있나 싶어 몇 걸음 못 가 다시 뒤돌아 사진을 찍고, 다시 걷다 뒤돌아보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삼보일배가 아니라 삼보일턴.


성산일출봉을 뒤로하고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꾸 머리 속에 일출봉이 아른거린다.


그래서 뒤돌아보면 일출봉이 까꿍! 한다


서른 번 정도 삼보일턴을 하니 이 정도 와 있었다.  이 사진, 제주도엽서 같은 데서 본 듯한 구도다.


모래 위에서 축구하면 엄청 힘든데, 말은 모래 위에서 뛰면 안 힘든가? 


나는 어렸을 때 제주도 19년 가까이 살며 이 좋은 곳도 안 와보고 뭐했나 몰라. 중고등학교 스타크래프트 할 시간에 이 곳에 왔어야 했다. 계속해서 뒤돌아보기를 반복하다 이래서는 오늘 가야 할 거리를 다 못 갈 수 있단 사실을 자각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한다. 마음속에 담아두면 걸을 때마다 한 장씩 꺼내볼 수 있겠지.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금 나한테 무척이나 화가 나 계실테지. 나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어린 아들 손잡고 한 번쯤은 이런 곳을 와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말이 보이면 말 한 번 태워서 기념사진을 찍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다음 명절엔 가족과 함께 이 곳에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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